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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10.30. 새벽예배 - 아비멜렉과 그 군대장관 비골이(창세기 73)


     

창2122to34 - 아비멜렉과 그 군대장관 비골이(창73).pdf


20131030D (#1).mp3.zip



본   문 : 창세기 21장 22-34절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 전서 2장 9절의 말씀인데, 얼마나 은혜롭고 영광스러운 말씀인지 모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구원을 받았을 때, 그 때 우리에게 일어난 변화가 무엇 인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 참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둘째,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구원을 받은 후 우리는 세상에 대해서 왕 노릇도 하고 제사장 노릇도 하는 그런 사람들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왕 노릇이라는 것은 단순히 이 세상을 다스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복되게 하는 역할을 말합니다. 이것은 원래 아담의 역할이었습니다. 제사장 노릇이라는 것은 이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 서서 중재자의 역할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셨던 역할을 우리가 세상을 향해서 하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거룩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여 거룩한 성품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루어진 나라가 되었습니다. 넷째, 우리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세상에 속하고, 사탄에게 속한 그의 종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분과 역할을 이렇게 영광스럽게 바꿔주신 것은 목적 없이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위의 구절의 뒷부분에서는 그 목적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면서 우리에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영광스러운 신분을 주시고, 또 다른 역할을 우리에게 맡기신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드러내시고 싶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지를 선전하는 간판이 되게 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사실 아브라함도 그래서 선택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많은 사람들을 위한 복으로 세우시고 그를 가나안 땅 한 가운데로 보내신 이유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지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특히 가나안은 그 지역의 우상 박람회들과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온갖 잡신을 다 섬기던 곳이었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그 한가운데로 보내신 것은 그들에게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라는 것을 보여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 근처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 땅은 원래는 아비멜렉의 땅이었는데, 사라 사건 때부터 아브라함이 머물게 된 그런 곳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땅에서 한 사람의 생활인으로 그저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이미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온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서 사용하고 계신 하나님의 도구였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사람들이 그를 주시하게 된다는 뜻이고, 또 그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게 된다는 뜻이 됩니다. 아브라함은 그냥 살았지만, 아브라함을 계속해서 주시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아비멜렉이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비멜렉과 그의 군대장관인 비골이 아브라함을 찾아왔습니다. 아비멜렉이 군대장관을 대동하고 아브라함을 찾아온 것은 그런 식으로라도 자신의 위엄을 과시하고 싶었기 때문이겠지만 사실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나라를 건드리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어 달라는 부탁을 하려고 아브라함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아비멜렉은 이미 사라를 잘못 대했다가 된통 당한 적이 있기 때문에 아브라함을 함부로 건드릴 수가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저 거기 사는 아브라함을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아브라함의 세력이 커지는 것이나 사는 모습이 그냥 사람이 혼자 힘으로 사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꿈속에 찾아왔던 그 여호와라는 신이 그를 특별하게 보살펴 주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아브라함의 세력이 확장되는 것이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게 할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아브라함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아비멜렉은 이렇게 운을 뗍니다.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정말 멋진 고백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역할을 제대로 감당했습니다. 그의 삶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어떤 삶을 살게 되는 지를 드러내는 게시판 역할을 제대로 해냈던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어떤 환경에서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 답게 존재하면 그 때는 항상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먼저 그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알아보고서 인정해 주며 존중해 주었습니다. 다니엘이 그랬고, 사도행전의 첫 성도들이 그랬습니다. 물론 이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서 일어난 일들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그들과 함께 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갈 수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이 이 정도로 하나님을 드러내게 되려면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사는 당사자도 그 은혜 안에서 그 은혜를 모르는 사람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그저 특별한 복을 누리며 요즘 말로 잘 나가는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아비멜렉이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비멜렉이 찾아와 조약을 맺자고 청하자 아브라함은 두 말하지 않고서 그 청을 승낙했습니다. 그런 후에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의 부하들이 자신이 판 우물을 빼앗은 일로 아비멜렉에게 정식으로 항의했습니다. 그러자 아비멜렉은 금시초문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이야기를 그냥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는 양과 소를 언약의 징표로 주고서 요즘 말로 하면 상호불가침조약을 맺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아브라함은 새끼 암양 일곱마리를 따로 떼어 놓았습니다. 이것은 아비멜렉을 조금 의아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미 조약이 끝났으니까요. 그래서 아비멜렉은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너는 내 손에서 이 암양 새끼 일곱을 받아 내가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원래 피해는 알건 모르건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끼쳤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당연히 아비멜렉이 보상을 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약속을 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자신이 아비멜렉에게 선물을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쪽에서 그 우물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우위에 서서 조약을 채결한 마당에 과거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지 않고서 오히려 선물을 주면서 그 일을 원만하게 해결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요즘 ‘대인배’니 ‘소인배’니 하는 말들이 유행하고 있는데, 아브라함은 그 당시 적어도 그만큼 대인배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이것만 보면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이전에 어떻게든 살아남겠다고 바로 그 아비멜렉에게 거짓말을 하고 또 그것을 합리화 하기 위해 말도 안되는 핑계를 늘어놓았던 아브라함의 모습과 비교해 보면 정말 놀라운 변화일 수 밖에 없습니다. 


교회에서 보면 스스로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다른 이들을 향해서 마음이 넓어지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전히 자기 중심적이고 여전히 이기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상식적으로만 보아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적어도 진짜로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또 그 은혜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은 그 마음이 넓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은혜가 그 사람을 만족시켜주니까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은혜로 하나님이 얼마나 자신을 신실하고 또 넉넉하게 돌보시는 지를 알았고, 그래서 그는 그 마음이 변했습니다. 다른 이에게 덕과 유익을 끼치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되었고, 그래서 온 세상을 위한 복으로, 복의 근원으로 부름 받은 사람다워져 갔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은 다른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지를 드러내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은혜로 변화되는 사람, 더 이상 자기 중심적이거나 이기적이지 않고 다른 이에게 넓은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는 그런 모습으로 변화되는 사람이 이 세상에 하나님을 드러내며 그들을 위한 복의 통로답게 영광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항상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를 주시며 맡기신 복의 통로가 되는 소명을 잊지 마시고 이 세상에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온전하게 드러내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