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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11.01. 새벽예배 - 네 독자까지라도 아끼지 아니하였으니(창세기 75)



창2205to12 - 네 독자까지라도 아까지 아니하였으니(창75).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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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창세기 22장 05-12절

이제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산 어귀에 도착한 아브라함 따라온 종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는 이삭과 둘만 산으로 오릅니다. 아마도 종들이 자신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방해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정말 자기 아들을, 그것도 이삭처럼 귀한 아들을 자기 손으로 죽여 제물로 드리는 일은 그 누가 보아도 미친 짓일 수 밖에 없으니까요. 아브라함은 이제 자신의 쓰디쓴 순종을 방해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사실 가장 크게 방해할 수 있는 방해물은 아직 남아있었습니다. 바로 제물이 될 이삭이었습니다. 이삭은 굉장히 이상했습니다. 이제까지 아버지가 제사를 드리는 일을 여러 번 보았지만 제물이 없이 드리는 제사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아버지 불하고 나무는 있는데 제물은 어디 있죠?” 세상에 이것보다 더 가슴 내려앉는 질문이 또 있을까요? 이것보다 더 가혹한 시험이 또 있을 수 있을까요? 이 한 마디는 겨우 겨우 버텨온 아브라함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기에 충분합니다. 아브라함은 달리 둘러댈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으응. 번제 드릴 어린 양은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실거야.” 그러는 사이에 두 사람은 결국 이 세상에 없었으면 좋았을 그런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장작을 올려 놓았습니다. 이제 제물이 올라갈 차례인데 이삭이 보기에 아무리 보아도 제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 때 아버지 아브라함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얘야, 제물은 바로 너란다.” 이삭은 분명이 이 말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삭은 그저 아버지가 하자는 대로 합니다. 순순히 결박을 당하고, 또 제단 위에 쌓아올려 진 나무 위로 올라갑니다. 자기 아들을 진짜로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려는 아브라함도 그렇지만 그 아브라함에게 순종하여 순순히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지려고 하는 이삭도 놀랍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더욱 더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삭은 그만큼 하나님을 신뢰하고 또 아브라함을 신뢰했던 것입니다. 목숨을 내놓고 순종할 정도로 말입니다. 우리는 이삭이 어리지만 얼마나 큰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나고 있었는지 볼 수 있습니다. 그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아브라함 뿐만 아니라 이삭의 믿음도 성장시켜 가고 계셨던 것입니다.


아무튼 이제 아브라함은 그렇게 제단 위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는 이삭을 제물로 드리기 위해서 칼을 치켜 듭니다. 아마도 그 짧은 순간이 아브라함에게는 수억년 보다도 길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 하늘에서 하나님의 다급한 음성이 들려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이제 급한 것은 아브라함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그 짧은 순간, 아브라함을 말리지 못하면 이삭이 진짜로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독자라도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시험은 모두 끝이 났고 아브라함은 이 시험에서 하나님을 다급하게 만들만큼 기적적인 점수를 얻고 합격증을 받았습니다.


아직 이야기가 다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이 이야기는 분명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개인에게 주셨던 가장 어렵고 고통스러운 시험, 그래서 통과하기가 그만큼 어려운 시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 속에는 또 하나의 더 중요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아브라함과 이삭처럼, 그 누구보다도 서로를 사랑하고 또 신뢰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인데, 그 그림자는 처음부터 이 아브라함의 이야기 속에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마치 우리에게 이 이야기 자체가 아니라 그 이야기에 집중하라는 것처럼 말입니다. 처음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 번제로 드리라” 그리고 진짜로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는 찰나 하나님께서는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아끼지 아니하였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첫번째 그림자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그림자는 이삭이 뗄감을 지고 아브라함은 손에 칼과 불을 들고  산 위로 오르는 모습, 그리고 아브라함이 직접 그 뗄감으로 제단을 쌓는 모습 속에도 진하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과 이삭, 두 사람의 모습 위로 겹쳐 보이는 또 다른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그 아버지와 아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애초부터 이 일을 통해서 우리에게 두 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그저 비슷한 것을 억지로 끼워맞춘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증거가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올라갔던 산은 모리아 산입니다. 그런데 이 모리아 산은 바로 예루살렘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던 곳, 하나님께서 그 외아들을 손수 십자가의 제물로 내어주신 곳 말입니다. 뗄감을 등에 지고 그 언덕을 오르는 이삭과 불과 칼을 쥐고 함께 가는 아브라함의 모습은, 후일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오르실 예수님과 그 예수님을 죽음에 내어주시기 위해서 묵묵히 예수님과 함께 하실 하나님의 모습이었다고 한다면 지나친 억지일까요? 


아브라함에게 이삭이 하나 밖에 없는 독자였듯이 하나님께는 예수님이 그런 존재입니다. 아니, 그 이상 사람의 독자와는 비교할 수 없이 귀한 존재입니다. 그 아들은 아들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기도 하니까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하나 밖에 없는 독자를 아끼지 않았듯이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의 하나 밖에 없는 독자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이삭이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뜻에 따라 순순히 제단 위에 올라갔듯이 예수님께서는 도살장의 어린 양처럼 묵묵히 십자가 제단 위로 올라가셨습니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아브라함에게는 아들을 제물로 드리는 것을 막아줄 하나님이 계셨지만 하나님께는 예수님을 죽음에 내어주시는 것을 막아줄 그 누구도 없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삭은 살았지만, 예수님은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브라함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귀한 아들이 천천히 십자가 제단 위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 보셔야 했다는 것입니다. 


모리아 사건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참된 믿음이라는 것이 증명된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먼 훗날 똑같은 자리에서 벌어진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이 확증된 사건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리아 사건을 지켜보면서 정말 대단한 아브라함의 믿음과 이삭의 순종에 놀랄 수 있지만,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바로 그 산 위에서 보여진 아버지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사랑과 그 아버지 하나님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입니다. 거듭 말씀드리거니와 이 이야기는 분명히 아브라함이 통과했던 시험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순종을 통해 믿음을 증명해 보인 사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이야기 속에 십자가 이야기를 그대로 넣어놓으셨습니다. 오랜 세월을 지나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이 이 이야기를 통해 십자가에 드러난 아버지의 마음과 아들의 마음을 보라고, 그 신실하신 사랑과 순종을 보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그야 말로 시험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 그런 시험들 중에서는 정말 통과하기 어려운 시험, 하나님의 뜻에 따르기 어려운 시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시험 속에서도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그렇게 해서 우리의 믿음을 확인하고 성장시키며 또 증명해 보이라는 뜻도 들어있지만, 우리의 순종 이야기 속에 십자가 이야기를 담고 싶으시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결코 개인으로 살아갈 수 없는 아주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도의 삶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드러내는 도구입니다. 특별히 고난과 역경은 하나님의 영광을 담는 그릇입니다. 우리가 그 시험 속에서 하나님의 뜻에 믿음으로 순종할 때, 우리 삶의 작은 이야기들은 놀랍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게 해주는 증거가 됩니다. 그렇게 놀라운 은혜의 통로가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귀하게 쓰임받게 됩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을 통해서 십자가를 만나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나게 되듯이 우리의 삶의 한 자락도 다른 이들에게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겉으로 보여지는 화려함과 상관없이 얼마나 가치있고 영광스러운 삶이 되겠습니까? 그런 성도들은 분명히 나중에 주님을 만나는 날, 주님으로부터 “너도 나처럼 살다 왔구나. 그래서 너는 나를 참 많이 닮아있구나.”하는 영원한 칭찬을 얻게 될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믿음으로 순종하는 일을 포기하지 마시고 게을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가치있게 만들며 또 영광스럽게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담는 그릇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