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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11.13. 새벽예배 -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창세기 81)



창2410to14 -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창8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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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창세기 24장 10-14절


목회를 하다 보면 수많은 성도들을 만나게 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그런 성도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저에게도 그런 분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처음 전임으로 일했던 교회에서 만났던 한 여집사님은 두고 두고 제 기억에 남습니다. 그 분이 제 기억에 오래도록 남아있는 이유는 그 분이 특별히 다른 분들보다 열심이 있으셨거나 혹은 헌신적이어서가 아닙니다. 물론 그런 점에서도 부족함이 없었지만 그 보다는 그 분의 가정에서 있었던 일화 때문입니다. 


그 집사님의 남편은 교회에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자기가 믿지 않을 뿐 아니라 집사님께서 교회 오시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셨죠. 그래서 집사님은 항상 안타까움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큰 아들이 결혼을 하게 되어서 양가의 부모들이 상견례를 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결혼날짜를 잡기 위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상대 부모님들이 주일날로 날짜를 잡으려고 하자 놀랍게도 그 집사님의 남편께서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안됩니다. 일요일 날은 이 사람이 교회에 가야 합니다. 그래서 일요일날은 안됩니다.”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끝에 상대 부모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몰라도 제가 보기에 우리 집사람은 진짜로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라고 말입니다. 예수 믿는 것을 싫어하던 남편의 입을 통해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다니 그 동안 힘들게 신앙생활 해 온 그 모든 수고가 그 말 한마디로 보상된 것 같아 너무 기쁘고 감사해서 그 이야기를 저에게 전해주시는 집사님 얼굴에 있었던 그 미소는 아직도 기억이 나곤 합니다. 


아브라함의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의 종은 낙타 열 마리에 아브라함이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들을 전부 싣고서 메소보다미아에 있는 나홀의 성으로 갔습니다. 거기 도착한 종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는 이 기도를 통해서 아브라함 뿐만 아니라 아브하람의 종까지도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전도라는 개념조차 없었던 당시로서 종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는 것은 자발적이고 자연적인 변화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그가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의 내용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신부감을 순조롭게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자신이 자신의 임무를 잘 수행하도록 해 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서 주인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도란 가장 내밀한 일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이 기도에는 아브라함의 종이 아브라함을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이 녹아들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종이 주인이 믿는 신을 믿게 되었고 그 신에게 기도하면서 자기 주인에게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진심을 담아 기도하고 있다는 것은 그 동안 하나님을 섬기면서 지내온 오랜 세월동안 아브라함의 믿음과 삶이 그 종이 보기에도 하나님을 드러낼 만큼 향기로운 삶이었고, 인간적으로 보더라도 매력적인 삶이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여행을 할 때, 그리고 두번째로 아비멜렉에게 거짓말을 하고 목숨을 부지하려고 할 때 까지는 종은 아마도 말은 못했어도 주인인 아브라함에 대해서 굉장한 실망과 환멸마저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믿었던 하나님에 대해서도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구요. 그 때나 지금이나 그 신을 믿는 사람들이 그 신의 어떠함을 드러내 주는 가장 명확한 증거이니까요. 그러나 아브라함의 삶은 그 전체를 놓고 볼 때는 하나님을 드러내고 또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의 참된 모습을 드러내기에 충분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결국 아브라함의 종은 그러한 아브라함의 부족함과 완악함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특별한 은혜를 부어주시는 하나님과 그 은혜 안에서 아들을 제물로 바칠 만큼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이 되고, 또 크고 아름다운 성품을 지닌 사람으로 변해가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자신도 하나님도 믿게 되었고, 또 아브라함도 진심으로 사랑하며 섬기게 되는 그런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사람은 원래 길게 볼수록 실망하기 쉽고 알면 알수록 별로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 점에서 아브라함의 변화는 참 이례적이고 놀라운 변화로 여겨집니다. 그렇지만 긴 시간을 놓고 볼 때, 실은 이것이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사람의 삶 속에서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변화 중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성도의 삶이란 결국 하나님의 변함 없는 은혜를 경험하면서 완전한 성품을 지닌 하나님과 더불어 걸어가는 긴 도보여행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부족할 때는, 하나님을 제대로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힘으로 살아보려고 끙끙대게 됩니다. 바로 이럴 때, 성도는 성도로서 보여서 안되는 모습을 보이게 되죠. 그렇지만, 그러느라고 저질러진 불신앙과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이해할 수 없는 은혜가 계속되면 점점 자신이 사는 것이 자기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살아간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래서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삶에서 그런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 쪽으로 움직여 가게 됩니다. 그리고, 처음에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형성되지 않았거나 혹은 그 관계가 깊지 않았을 때는 하나님을 닮아가기 보다는 원래의 자기 모습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삶 속에서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성품을 계속해서 경험하게 되면 자신도 그 성품을 닮고 싶어지게 되고, 그래서 결국 그 사람 안에서는 하나님을 닮은 모습이 하나님 하나씩 싹을 틔우게 됩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을 소유하게 되며, 그 사람의 삶과 됨됨이 속에서 향기로는 하나님의 향기가 흘러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우리를 통해서 이런 것들을 목격하게 되고 그래서 우리를 사랑하게 되고, 또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밟아야 할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또 그 과정 속에서 맺어야 할 열매들이지만 사실 정직하게 생각해 보면, 우리들은 예수를 믿으면서도 오히려 이전보다 더 악해지고 이기적으로 변할 때가 많습니다.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사람이 되기 보다는 그 반대의 모습을 지닌 사람이 될 때가 많습니다. 물론 사람은 세월이 흐르면 나빠지가 쉽지 좋아지기는 정말 힘듭니다. 그래서 믿는 우리들 까지도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더 악해지고 좋지 않은 방향으로 변해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이것은 예수 밖에 있을 때, 하나님을 믿지 않고서 살아갈 때 그런 것이지 우리가 예수 안에 있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 있을 때는 그 이야기가 달라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다함 없는 은혜 속에서, 하나님의 그 아름다운 성품을 보고 경험하면서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그 아름다운 성품으로 우리를 대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살아가면서도 우리가 아름답게 변화되지 않고, 우리를 통해서 전혀 하나님의 모습이 보여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신앙 때문에 우리 자신이 아름답게 변화되지 않고 또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영광스러운 복을 놓치는 셈이 될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믿을 수록 더욱 더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를 믿으면 믿을 수록 더 매력적이고 하나님의 성품을 더욱 더 많이 드러내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알면 알수록 더 매력적이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아름다운 사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