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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11.27. 새벽예배 -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세기 89)



창2519to26 -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89).pdf


20131127D (#01).mp3.zip




본   문 : 창세기 25장 19-26절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눈에 보이는 현실만을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훨씬 못하게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이 믿는 사람들의 기준을 중심으로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도 그렇지만, 실제로 하나님께서도 믿는 사람들을 특별대우하신다기 보다는 우리가 느끼기에는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도 박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상하게 들리시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대하신다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 보시면 이해가 가실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 집 아이와 옆집 아이가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내가 어떤 아이를 이리 저리 참견하고 잘 되게 하려고 매도 들고 또 가지고 싶은 것 당장 손에 쥐어주지 않으면서 절제도 배우게 합니까? 우리 집 아이이지 옆집 아이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옆집 아이는 물론 친절하게 대해주고 또 예뻐해주기도 하지만 그 아이에게는 왠만해서는 그 아이가 무엇을 하든 참견하지 않습니다. 너무 많이 먹어서 비만이 되든, 욕심을 부리며 남의 것을 빼앗든 공부를 열심히 하든 말든 정말 왠만해서는 별로 참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께는 옆집 아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옆 집 아이처럼 대하지 않으십니다. 자녀로 기르십니다. 정확하게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믿음을 따라 사는 자녀로 만들어 가십니다. 신앙생활의 과정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워가고 또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법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되는 순간부터 우리 마음대로, 그리고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살래야 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만 보아도 그게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어제 살펴보았듯이 사라의 여종 애굽인 하갈이 아브라함에게 낳은 아들인 이스마엘은 결혼을 하지 마자 아들을 열 두 명씩이나 쑥쑥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들은 저마다 한 자리씩 차지하고 세상을 호령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족보는 이러하니라’라고 시작하지만 그런 그는 40세가 되어서 겨우 결혼하게 되고, 성경은 그 이후의 이야기를 이렇게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아니었던 이스마엘은 아이를 낳기 위해서 기도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언약의 계승자인 이삭은 결혼을 한 후에도 20년 동안이나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간절히 기도해야만 했습니다. 20년 동안 아이가 생기질 않는데, 이삭이 한 번만 기도했겠습니까?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굉장히 오랜 세월을 정말 의심과 절망과 싸우면서 기도하고 또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 세월이 무려 20년입니다. 정말 이상하지 않습니까? 만민을 위한 복이 되는 언약의 계승자가 이삭이라면 이삭은 이스마엘보다 훨씬 더 빨리 자녀를 낳아야 할 뿐만 아니라 12명이 아니라 수 십명을 낳아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족보가 시작되자 마자 불임의 이야기가 등장하며 20년이 걸려서야 겨우 아이를 낳았다니 말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통해서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실 것이고, 그래서 언제 주시든 분명히 이삭에게 자녀를 주실 것이 분명합니다. 또 어느 때건 주실 수 있고요. 그렇지만 그 일을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20년이라는 세월은 참 인내하기 힘들고 고통스러운 세월임에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삭을 이런 식으로 다루셨을까요? 이삭에게 무엇을 가르치기 위해서 이렇게 하셨을까요? 또 우리는 이런 이삭의 경험 속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성도 여러분, 내 맘대로 안되다가 기도와 인내 끝에 해결된 일과 그저 너무 쉽게 이루어진 일을 경험하게 될 때,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그 두 가지의 경우를 어떻게 다르게 경험하게 될까요? 이삭이 20년이 걸려서 기도와 인내,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 생겨나는 의심과 싸운 끝에 자녀들을 얻었을 때 이삭은 과연 무엇을 깨닫게 되었을까요? “아, 정말 인생이라는 것이 내 맘대로 안되는 구나. 너무 당연한 것 같은 일들도 하나님께서 닫아놓으시면 절대로 열 수 없는 것이구나.”하는 것을 깨닫지 않았을까요? 또 “아무리 굳게 닫힌 일도 하나님께서 여시면 열리는 것이구나.”하는 것을 배우지 않았을까요? 


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인데도 다른 사람들은 너무 쉽게 얻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좀처럼 주시지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렇게 하심으로써 우리에게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살아가는 방법이 달라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라고 믿습니다. 그러면 그 방법이 무엇일까요? 바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해서 그리고 그 은혜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저 자기 노력이나 운 밖에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실패하거나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운이 없거나 노력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하고 그게 전부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운이 나쁘다는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인생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고 그 분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을 적어도 눈에 보이는 복들에 대해서는 오히려 역차별하는 것처럼 여겨지게 대우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인식하고 또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믿음과 은혜 가운데 살아가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우연이나 운의 좋고 나쁨에 따라서 주어지는 것들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되시는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섭리하시고 또 역사하시는 결과라는 것을 알고 믿으며 살아가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항상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라고 말입니다. 


어떤 분들은 성도의 삶은 스릴이 넘친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저도 거기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도저히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불허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나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이 그저 되는 대로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신다면 그렇지 않겠지만 우리가 일단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우리가 우리 삶을 그런 식으로 살아가게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어떻게든 믿음을 따라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가도록 하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믿음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연습을 시키는 환경과 과정이 예측불허의 삶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 20년이나 걸려서 리브가는 꿈에도 그리던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아들 쌍둥이를 말입니다. 그런데, 뱃속이 날마다 전쟁터입니다. 뱃속에서  쌍둥이가 동생은 형이 되려고, 형은 형의 자리를 지키려고 싸우는 통에 리브가는 심한 고통과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태아가 뱃속에서 싸운다? 정말 상식적으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두 아이는 그랬습니다. 그게 이 두 아이의 특별함이었고 또 앞으로 가게 될 길의 예고편이기도 했습니다. 이 일로 리브가는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대답은 두 민족이 뱃속에 있는데, 그 두 민족이 뱃속에서부터 서로 나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결론이 의미심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는 것은 당시 그 지역의 문화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항시 큰 아들이 집안의 모든 권한을 가지고 나머지 자녀들은 그 권위 아래에 속해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이 두 아이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이 두 아이의 경우에는 그런 자연적인 이치가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 상식과 자연적인 이치를 거스르고 큰 아이가 작은 아이를 섬기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 아이들에게는 이런 상식과 반대되는 일들이 일어날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선택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첫째가 아니라 둘째를 선택하셨기 때문에 그 선택에 따라서 결국 첫째가 둘째를 섬기게 되는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는 상식도 중요하고 자연적인 이치도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과 의지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의지는 우리 삶을 이루어 가고 또 움직여 가는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것들이 다 달려들어도 그 방향을 바꿀 수가 없죠.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뜻과 의지가 성도의 삶을 이끌어 가기 때문에 우리가 느끼기에는 성도의 삶은 예측불허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불안하기 보다는 너무나 확실하고 견고한 삶의 조건입니다. 따를 의양만 있다면 순종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과 의지가 만들어 내는 삶의 변수들을 두려워하거나 거북해 하지 않고 오히려 즐깁니다. 다음에는 또 어떤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 자신의 노력이나 운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섭리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 길에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변화되어져 가고 또 하나니의 자녀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다릅니다. 우리는 이삭이지 에서가 아닙니다. 그래서 에서를 부러워하며 에서처럼 살아가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삶을 순적하고 풍성하게 흘러가지 못하게 방해하는 가장 커다란 이유입니다. 


항상 내가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나를 하나님의 자녀답게 만들어 가시고 또 자녀의 방식으로 살게하시는 하나님의 인도와 섭리에 순종하며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뜻과 의지 안에서 가장 빛나고 아름다우며 또 풍성한 삶으로 빚어져 가게 될 것입니다. 항상 우리 모두가 내가 하나님 앞에서 누구인지를 잊지 말아서 제대로 우리다운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