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11.26. 새벽예배 - 이스마엘의 족보는 이러하고(창세기 88)



창2512to18 - 이스마엘의 족보는 이러하고(창88).pdf


20131126D (#01).mp3.zip




본   문 : 창세기 25장 12-18절


의인의 고난과 악인의 번영, 선택받은 사람의 어려움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승승장구는 사실 적어도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가 참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그래도 내가 그다지 어렵지 않고 또 잘 살 때는 이런 문제가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내가 힘든 환경 속에 놓여지게 될 때는 그 어려움과 더불어서 우리들의 마음을 굉장히 힘들게 할 때가 많습니다. 나는 정직하고 바르게 살아가려고 하는데도 되는 일 없이 힘들기만 하고, 옆에 있는 사람들은 대충 대충 타협하면서 죄도 지으면서 그렇게 쉽게 쉽게 살아가는데도 일사천리,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면 자괴감과 실망감은 실제로 굉장히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비록 완벽하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이 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은 적어도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정직하고 바르게 살아가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는 꽤 중요합니다. 그것은 적어도 그런 일들 때문에 생겨나는 불필요한 고민과 낙심을 막아주는 방패 역할은 충분히 해 줄 수 있으니까요.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형식적으로만 보면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기 직전에 기록되어 있는 11장의 아브라함의 조상들의 족보와 더불어서 아브라함 이야기를 둘러싸고 있는 보자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이전 이야기는 조상들의 족보로 정리가 되었다면 아브라함 시대를 완전히 마감하는 역할은 이스마엘의 족보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아브라함의 죽음과 장례 이야기도 그런 역할을 하지만 그 이야기까지가 봉투 안에 들어가 있는 내용이라면 이스마엘의 족보는 이제 그 봉투의 뚜껑을 완전히 닫아버리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의 족보는 그것 자체로도 아주 중요한 의미를 들려줍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스마엘의 자녀들은 비교적 빠른 속도로 크게 번창해서 큰 복을 누렸습니다. 하윌라 그러니까 지금의 아라비아 서쪽 해안 지역부터 이집트 입구까지 엄청나게 넓은 지역에 흩어져서 그 지역을 호령했습니다. 그 반면에 이삭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겨우 하나의 나라만을 이루었을 뿐이고, 가나안 땅이라는 좁은 지역을 차지하는데도 수 백년의 세월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삭의 후손과 이스마엘의 후손과의 관계는 마치 오늘날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 같습니다. 모든 복 중의 복이신 하나님을 믿는 것은 우리인데 겉으로 보기에 더 많은 복을, 그것도 더 빨리 누리는 사람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는다고 핍박을 당하고 손해를 입는 사람들은 있어도 반대로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 핍박을 당하고 손해를 보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이렇게 보면 뭔가가 잘못된 것이죠.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복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개념이 조금은 편향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복 속에는 분명히 물질적인 복을 포함한 세속적인 성공이 포함되어 있지만 성경이 말하는 복은 그게 다도 아니고 또 그게 가장 중요하거나 가장 복된 것도 아닙니다. 성경이 가장 큰 복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그 언약의 성취 과정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언약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복이나 세속적인 성공은 그 과정 중에서 하나님께서 주실 수도 있고 또 주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이스마엘 족속들은 큰 복을 그것도 굉장히 신속하게 받았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런 이스마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라의 여종 애굽인 하갈이 아브라함에게 낳은 아들 이스마엘” 분명히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이스마엘은 사라가 낳은 아들이 아닙니다. 사라의 여종, 그것도 이집트 사람인 하갈이 낳은 아들입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이스마엘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의 상속자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마엘과 그 후손이 받은 복이 겉으로 보기에는 얼마나 크고 대단해 보인다고 해도, 그리고 현실 속에서는 그 복이 정말 커다란 힘과 자랑거리가 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언약 밖에서 받은 복이라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마엘의 후손의 숫자를 세어보면 열 두 명입니다. 그 열 두명이 받은 복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복은 하나님께서 창세기 17장 20절에서 “이스마엘에 대해서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매우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할지라 그가 열두 두령을 낳으리니 내가 그를 큰 나라게 되게 하려니와…”라고 하셨던 약속이 성취된 것입니다. 이 약속이 참 복된 약속이었고 그 약속은 오늘 본문처럼 이루어졌지만, 그 복이 아무리 큰 복이라고 하더라도, 그리고 아무리 빠르게 얻은 복이라고 하더라도 그 복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받은 복은 아닙니다. 


이것이 우리가 받는 복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받는 복의 차이점입니다. 우리가 받는 복은 그 복이 작고 더디게 주어져도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서 받는 복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들의 복은 그게 아무리 크고 빠르게 주어지더라도 하나님의 언약 밖에서 받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 복이 전부도 아니고 또 가장 중요한 복도 아니지만 그들에게는 그 복이 전부입니다. 우리에게는 진짜 복이 남아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절대로 알지도 못하고 받지도 못하는 복이 남아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는 복이고 또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 되어 주시는 복입니다. 이 복을 누리며 또 소망하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진짜 복입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영적인 복이 없습니다. 하늘의 소망도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이 땅이 전부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복이란 여기 이 땅 위에서 살아가는 시간 동안, 그것도 눈에 보이고 손에 잡혀지게 누리는 복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들에게 어쩌면 눈에 보이는 복을 더 크고 빠르게 허락하시는 지도 모릅니다. 이 복이 중요하지 않다는 증거는 이런 복들은 놀랍게도 죄와 편법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얻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땅에서 누리는 복들과 눈에 보이는 복들이 참된 복, 진짜 복이라면 하나님께서는 그 복을 절대로 그런 식으로 함부로 얻게 내버려 두실 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부로 아무에게나 허락하실 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의 이 땅에서의 삶이 어떤 모양이든지 간에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또 영원한 복을 향해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땅에서는 아무런 유익이 없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을 아버지 삼아 확실한 소망 속에서 살아갑니다. 믿음을 통해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진짜로 필요한 은혜들을 공급받고 살아갑니다. 참된 마음의 평안과 만족, 근심과 걱정에서 벗어난 삶 등은 하나님의 언약 속에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언약백성들만이 누릴 수 있는 복입니다. 우리가 믿지 않는 사람, 정직하게 살지 않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빠르게 원하는 것을 얻으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속상해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백성이며 그래서 우리가 진짜 복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고, 알더라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크고 귀한 복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사람들에게도 눈에 보이는 복을 주시지만, 적어도 우리에게는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언약백성이라는 증거는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 다 누리는 복이니까요. 우리는 그런 것으로 우리의 삶이 복된지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만이 누릴 수 있는 복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삶이 얼마나 복된 지를 평가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의 보장을 받고 있다는 것, 우리가 다른 것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에게는 세상은 알 수 없는 영적이고 내면적인 복들이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며 바로 그것을 우리 인생의 성공기준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는 참된 복의 기준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이미 바꿔놓으셨다면 더욱 더 견고하게 만드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항상 내가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서 얼마나 복된 삶을 살고 있는지를 확신하시며 땅에 살지만 하늘의 복 가운데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