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3.26. 새벽예배 -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사순절 4-3)



10. 요1220to26 -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pdf


20140326D (#1).mp3.zip





성경본문 : 요한복음 12장 20-26절



예수님의 말씀 중에는 선문답 같은 말씀들이 참 많습니다. 이런 말씀들은 그런 말씀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모르면 그런 말씀들 앞에서는 마치 글을 모르는 사람처럼 아무 것도 발견하거나 깨달을 수가 없어집니다. 오늘 함께 묵상할 본문도 그런 말씀들 중의 하나입니다. 유월절이었습니다. 원래 유대교는 유대인들만의 종교였지만 유대인들이 로마 영토 여기 저기로 흩어져 가기 시작하면서 그 곳의 이방인들 중에서 유대교에 관심을 가지고 유대교를 믿기 시작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라고 불렀는데 정식 유대교인들은 아닌 유대교의 준회원쯤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 중에서 유대교에 심취한 사람들이 생겨났고 이런 사람들은 유월절 같은 명절이면 성지순례를 하듯이 예루살렘으로 찾아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빌립에게 자신들이 예수님을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빌립은 예수님에게 그렇게 예루살렘을 찾아온 헬라인들 중 몇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왔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듣고는 예수님께서 굉장히 이상한 말씀을 하십니다.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과 예수님께서 영광을 얻을 때가 된 것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 예수님께서는 그 두 가지를 곧바로 연결시키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다음에 주님이 말씀하신 ‘영광’과는 전혀 상관 없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바로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생명을 얻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세 가지 상관없어 보이는 말씀들 사이에는 과연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왕으로 오셨습니다. 유대인들의 왕일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과 온 세상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렇지만 그 동안 예수님은 그게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간에 유대 땅에서만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마지막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순례를 왔던 이방인들의 대표격인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만나겠다고 찾아온 것입니다. 이것은 이제 예수님께서 단지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곧 왕이신 예수님의 이름이 온 세상에 알려질 준비가 끝났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뒤에 이어지는 밀알 비유는 또 다시 예수님의 영광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야기입니다. 아마 이 밀알의 비유가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는 다 알고 계실 겁니다. 하나의 생명이 죽어서 많은 생명으로 열매맺게 되는 것. 이것은 바로 십자가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광에 대한 말씀과 밀알 비유를 연결시켜 보면 주님은 십자가를 자신의 영광으로 여기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물론 그 십자가가 고통스럽지 않은 것도 아니고 고민스럽지 않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 세상에 그 누가 그 어떤 것을 피하고 싶어하는 것보다 예수님께서는 더욱 더 십자가를 피하고 싶어하셨습니다. 그것은 그토록 사랑하는 아버지의 버림을 받고 저주와 진노를 뒤집어 쓰는 자리였으니까요.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 십자가를 자신의 영광으로 삼으셨고 그 십자가를 향해서 다가가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십자가는 결국 온 세상을 회복시키고 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구원과 새 생명을 가져다 줄 예수님의 왕좌였기 때문입니다. 한 생명이 죽고 썩어서 수많은 생명이 새 생명을 얻게 되는 그런 영광스러운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영광스럽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고사하고 십자가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마음을 품었던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로마인들은 그 십자가를 정치범들을 본보기로 처형하는 형틀로 이해했습니다. 그 처형방법이 너무 끔찍했기 때문에 로마인들 조차도 그 처형방법을 방해할 정도로 십자가라는 말만 들어도 치를 떠는 그런 형틀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십자가를 하나님의 저주의 상징으로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가장 커다란 저주의 형벌이 바로 십자가에 달리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그렇게 예수님을 고통스럽고 수치스럽게 십자가에 달아 죽이면서 이제 메시야가 죽었으니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끝이 났다고 쾌재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놀랍게도 하나님의 모든 지혜가 집약된 장소였고, 한 사람의 죽음을 통해서 그 십자가를 바라보는 수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새 생명을 주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게 만드는 장소였습니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도 못했지만 그 십자가가 바로 예수님이 왕으로 오르시는 자리였고 그렇기 때문에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생명이 가지고 있는 아주 기본적인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은 안으로 움츠러 들지 않고 바깥으로 퍼져 나갈 때, 비로소 더 풍성해 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당장은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 같고 낭비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 생명은 다른 생명을 살리는 것은 물론이고 더 풍성하게 되어 생명을 나눈 사람에게로 다시 되돌아 옵니다. 그래서 그 사람 또한 더 풍성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항상 혼자만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보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나누며 살아가고 또 때로는 손해를 보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훨씬 더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사실 우리가 사용하는 물질은 우리의 시간, 그러니까 인생과 생명을 내어주고 얻은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우리의 생명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 정말 목숨을 내어주지 않을지라도 나에게 있는 것들을 나누고 내어주는 삶은 이미 자신의 생명을 나눠주면서 살아가는 삶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가 나누는 모든 것들은 우리의 생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십자가를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지혜가 총 집약된 곳이 십자가라고 말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십자가만큼 불합리하고 불공평하며 또한 어리석어 보이는 것이 없지만 실제로는 십자가만큼 하나님의 모든 지혜가 완벽하게 들어가 있는 것은 없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단순히 구원에 있어서 뿐만이 아니라 실제적인 삶에 있어서도 십자가의 원리를 따르는 삶이 가장 풍성하고 영광스러운 삶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리라’ 주님이 십자가에 계셨으니 주님을 따르려는 사람들은 십자가를 흉내내면서 살아야 합니다. 내어주며 나눠주며 살아야 합니다. 손해일까요? 아닙니다. 그 곳이 주님께서 가장 큰 영광을 얻으신 곳이니 그 곳에 있어 십자가를 흉내내며 사는 사람들 또한 가장 영광 큰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리라’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귀히 여기신다면, 영원히 귀하게 여기신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완전한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의 귀히 여겨주심 속에서 영원히 살아간다는 것! 피조물인 인간에게 있어서 이것보다 더 크고 영원한 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 땅에서의 편하고 부유한 삶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그 복과 감히 비교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자가로의 초대는 고난으로의 초대가 아니라 영광으로의 초대입니다. 그 이유는 십자가야 말로 가장 철저하게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는, 주님을 가장 많이 닮은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조금씩 조금씩이라도 십자가를 흉내 내며 사시기 바랍니다. 나의 시간, 나의 소유를 다른 이들을 위해서 내어 주고 나눠 주시면서 그렇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이 귀히 여겨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처럼 영원히 영광스러운 성도들이 될 것입니다. 날마다 날마다 삶 속에 십자가의 흔적이 더 진해지고 강해지는 복과 영광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