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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4.15. 새벽예배 -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사순절 7-2)



19. 막1525to32 -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pdf


20140415D (#1).mp3.zip





성경본문 : 마가복음 15장 25-32절



 

사람들이 입으로 똑같은 것을 원한다고 말하거나 혹은 속으로 똑같은 것을 생각한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모두들 똑같은 것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의 정상적인 국민들은 전부가 다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한 민주주의 국가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예만 생각해 보아도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다 같은 것을 생각하고 또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서울 사람입니다. 대구에 와서 살고 있지만 저는 어쩔 수 없이 서울 사람입니다. 서울 사람 중에서도 아직은 평균적이라고 할 수 있는 40대 중반의 남자입니다. 저도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가 되기를 원하고 또 대구에서 태어나신 70대 어르신도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 분도 자유를 원하고 저도 자유를 원합니다. 그렇지만 저와 그 어르신이 원하는 민주주의 국가의 모습과 자유는 제가 생각하기에는 달라도 굉장히 많이 다를 것입니다. 물론 다르다는 것이 그 둘의 하나는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만약 이 다름이 허용되는 범위를 넘어가게 되면, 그 둘 중의 하나는 틀렸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모두들 메시야, 그러니까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수 백년 동안 소망했습니다. 그 기다림 끝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가 왔구요. 그런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이지고 맙니다. 수 백년 동안 그렇게 메시야를 기다리던 사람들, 아니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메시야라는 분이 오실 것이라는 것을 알았던 그들이 막상 그 분이 오시자 그 분을 등지고 핍박하고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던 것입니다. 아침 아홉시가 되자 예수님은 그들의 손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리고 죄목을 알려주는 명패에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조롱이 쓰여졌고 보란 듯이 강도, 그러니까 로마에 대해서 반역을 저지른 정치범 두 사람의 중간에 매달았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경멸하는 표시로 머리를 흔들며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라고 말하며 비웃었습니다. 대제사장들도 똑같이 했습니다. 그들은 서로 서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라고 말하면서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라면 당장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자신들을 믿게 해 보라고 조롱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런 이상한 일을 저지른 것일까요? 왜 그들은 수 백년 동안 목이 빠져라 대를 이어가며 기다리던 그 메시야가 왔는데, 바로 그 메시야를 이런 식으로 대하고 또 이런 식으로 죽일 수 밖에 없었을까요? 그 이유는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시기로 한 메시야가 아닌 다른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 메시야를 기다리지 않고 자신들이 필요한 모양대로 만들어 낸 메시야 아닌 메시야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구약성경은 끊임없이 하나님이 보내실 메시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구약성경에 나온 메시야에 대한 설명에 귀를 기울이기 보다는 그저 메시야, 그러니까 왕과 구원자라는 뜻만 가져와서 그 말 위에다 자신들이 원하는 색깔의 옷을 입히기 시작했습니다. 그 옷은 정치력과 군사력으로 이스라엘을 세계 최고의 국가로 만들어 줄 위대한 왕이라는 옷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구약에 약속된 메시야가 입고 있던 옷은 벗겨 버렸습니다. 죄를 용서해 주시는 메시야, 자신들 대신 고난을 당하는 메시야, 그리고 인간일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이신 메시야라는 진짜 메시야의 옷을 다 벗겨 버렸습니다. 그들의 메시야는 이렇게 그들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 낸 메시야가 되어 버렸고, 그래서 진짜 메시야가 왔을 때, 그 진짜를 가짜라고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저 메시야를 사칭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사람으로 몰아서 죽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오해 때문에 저지른 일들과 예수님을 향하여 쏟아부은 모욕과 조롱 속에는 예수님이 약속된 메시야라는 진리가 모두 들어 있었습니다. 첫째, 그들이 죄패를 붙여 기록한 대로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무너진 성전을 사흘 만에 다시 지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남은 구원하시지만 정작 자신은 구원하실 수가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만약 그들의 말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려오셨다면 우리는 구원하실 수가 없으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은 다른 사람들은 구원하셔도 스스로는 구원하실 수가 없으셨던 것입니다. 그들의 오해에서 나온 예수님께 대한 비난과 조롱은 오히려 거꾸로 예수님이 누구신지, 무슨 일을 하시는 분이신지를 가장 정확하게 선포하는 말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진리가 진리로 여겨지지 않고 진리가 아닌 것이 진리처럼 여겨질 때, 그 진리는 오히려 비난을 받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비난이 바로 진리가 진리라는 사실을 드러내게 됩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저는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 또한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의 잘못과 비슷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으며 또한 앞으로도 저지를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언젠가 교보문고에 갔다가 정말 깜짝 놀라면서도 웃을 수 밖에 없었던 씁쓸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종교서적 베스트 셀러 코너에 1위는 “잘 되는 나”라는 책이 놓여져 있었고, 2위에는 “내려놓음”이라는 책이 놓여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두 책을 보면서 이것이 지금 한국 기독교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물론 한 사람이 이 두 책을 다 좋다고 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두 책이 이야기 하는 바는 정반대이니까요. 그렇지만 둘 다 기독교 서적이기 때문에 이 두 책은 모두 기독교인들이 구입을 했을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성도들이 사서 읽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첫번째 책을 사서 읽으신 분들도 예수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두번째 책을 사서 읽은 분들도 예수를 믿는 분들이구요. 다들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신앙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그렇게 정반대입니다. 둘 중에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릇된 것인지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이 이미 알고 계실 테니까요. 


우리는 모두 예수님을 구세주라고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고백의 의미는 다 같지 않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고백이 다행히 성경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 있는 고백이라면 괜찮겠지만 그 범위를 넘어간다면 그것은 그저 그럴 수도 있는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우리의 믿음이 오히려 우리를 예수님으로 부터 멀어지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실제로 사역을 하면서 그런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성도들이 좋다고 좋다고 하시는 설교자들의 메세지는 진리라는 것을 기준으로 보면 전혀 좋다고 해서는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정말 있는 그대로의 말씀을 전하면 그것에는 관심이 별로 없고, 얼굴 표정에는 오히려 불쾌한 감정이 역력합니다. 내가 필요로 하는 메세지가 아니기 때문에, 위로를 주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지적하고 회개와 헌신을 요구하기 때문에 싫어하고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꼭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과 비슷한 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분들의 마음 속에는 “꼭 그런 식으로 해야만 예수를 믿을 수 있나?”라는 불만 섞인 질문이 있지만 이미 그 질문 속에 답이 들어있습니다. 꼭 그런 식으로 해야만 예수를 믿을 수 있습니다. 아니, 그 이상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스럽게도 어떤 목회자이건 정말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그대로의 말씀을 전하지는 못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 원래 성경이 요구하는 것보다 더 과하게 진리를 가르치는 설교자는 없는 듯합니다. 


우리가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과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100퍼센트 일치하는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 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내가 기준에 맞추지 못한다고 해서 기준을 바꿀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일단은 기준은 기준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거기 순종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저 내가 필요로 하는 예수님, 그렇지만 진짜 예수님은 아닌 예수님을 예수님이라고 믿게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 제가 보기에는 이미 한국 교회 안에는 그렇게 신앙생활 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더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저 내 입맛대로 내가 편안한 범위 안에서만 예수를 믿는 그런 분들이 많고 또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실로 예수를 믿으려면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를 왕좌로 삼으시고 백성들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으신 섬김의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분을 믿고 있고, 또 그런 분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오늘 이 아침에는 기도하시면서 정말 내가 믿고 있는 예수님은 성경이 말하는 그 예수님이 맞는지, 내 신앙의 중심에는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 계신지를 한 번 정직하게 돌아보시고, 다시 한 번 신앙의 중심을 제대로 세우는 귀한 시간을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나름대로의 예수가 아닌 참된 예수를 믿는 참 이스라엘로 예수님을 섬기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