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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4.23. 새벽예배 -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창세기 131)



창4008 -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창13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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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창세기 40장 08절




어릴 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생전 처음 가보는 곳인데 이상하게도 길이 낯이 익어서 길을 걸어가면서도 “어?”하고 의아하게 생각할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길 뿐만이 아닙니다. 처음 겪는 일인데도 언젠가 이전에 겪었던 상황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같은 생각이 들어서 등골이 오싹 했을 때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런 경험을 하게 되는 이유는 대가 꿈 때문입니다. 저희 집 둘째가 가끔씩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이상하게 자기는 꿈을 꾼 것이 그 다음 날 그대로 나타나는 때가 있다고 말입니다. 꿈이란 예로 부터 영혼의 활동이라고 설명될 정도로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꿈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꿈에 얼마나 큰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또 꿈을 얼마나 신뢰할 것인가 하는 것은 굉장히 조심스럽게 생각해야 하겠지만, 때로는 사람들에게 꿈이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만큼은 틀림이 없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도 사람들의 꿈을 이용해서 자신의 뜻을 나타내시고 보여주시는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요셉은 말 그대로 ‘꿈의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그의 전체 삶은 꿈을 통해서 인도되어진 삶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요셉의 삶은 그가 어릴 때 꾼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지요. 그런 점에서 요셉의 꿈은 그저 미래의 일을 보여주는 정도가 아닌 하나님의 약속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다른 사람들의 꿈을 해석해 주면서 그 과정에서 자신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는 애굽 사람들의 꿈을 해석해 주면서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일들을 이루어 갈 수 있었습니다. 요셉이 이런 삶을 살았던 이유는 요셉에게는 일종의 선지자적인 역할이 맡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의 선택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류 역사에서 특별한 위치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우리는 요셉이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애굽, 나아가서 그 당시 그 지역 전체를 기근에서 살렸던 일을 그런 시각에서 보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요셉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개인이기 이전에 그 당시 이스라엘 전체와 그 주변의 나라들 전체를 위한 선지자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꿈과 관련해서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선 중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했던 것은 정말 뜻 밖의 작은 일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자신이 돌보는 죄수들의 얼굴표정에 나타난 근심을 알아차리고 그 근심을 해결해 주려고 했던 정말 지극히 사소한 친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 한 사람의 행동은 우리 생각보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에서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을 위해서도 그렇구요.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또한 자녀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저 개인이 아니라 공인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도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맡기셨던 역할이 어느 정도는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항상 인식하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역할입니다. 


요셉은 왕의 죄수들의 얼굴에서 근심을 읽고 그 연유를 물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간밤에 꾼 꿈이 있는데 이것을 해석할 수가 없어서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때 요셉은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제가 해석해 드리지요.”가 아니라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데 내게 이르소서.” 꿈은 사람이 꿉니다. 그러나 그 모든 꿈이 가지는 뜻이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또 이 세상에 수많은 사건들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런 사건들 중에서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 사건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사건들 자체가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그런 일들에 이런 저런 의미를 부여하기도 합니다만 진짜 의미는 사람들이 알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모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고 그래서 그 사건들이 하나님의 행하심에 의한 것이건, 혹은 허용하심에 의한 것이건 그런 일들의 진짜 의미는 하나님이 알고 계시고, 또한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는 사람들만이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말대로 “해석은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해석은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들이 알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적어도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중요한 일들의 깊은 의미는 바로 성도들만이 알 수 있는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오늘 날에는 애석하게도 성도들 조차, 그리고 목회자들조차 그런 능력을 잃어버린 듯합니다. 남들이 다 하는 이야기 밖에 하지 못합니다. 세상을 향해서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지면 이 일을 어떻게 해석하고 또 받아들여야 할지 스스로도 우왕좌왕 합니다. 그 이유는 성도건 목회자건 성경과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생각하고 판단하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고 상식과 세속적인 가치관에 따라서 생각하는 일에만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힘들어 할 때, 교회와 성도가 해야할 역할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함께 아파하고 돕는 일이며, 나머지 하나는 그 일에 대한 바른 해석을 내놓는 것입니다. 세상도 귀 기울여 경청할 수 있는 성경적인 원리에 따른 해석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도 앞의 역할은 조금이나마 감당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 교회는 두번째 역할을 전혀 감당하고 있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어느 정도는 그 어려움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부분은 세상의 신뢰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신뢰를 잃어버리면 아무리 옳은 이야기를 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법입니다. 만약 요셉이 두 사람의 관리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다면 그들이 요셉에게 꿈 이야기를 했겠고 또 요셉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을까요? 요셉은 비록 그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낮은 위치에 있었지만 그들 보기에 신뢰할 만했고 분명히 하나님께서 요셉과 특별하게 함께 하신다는 것을 볼 수 있을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 낮은 종에게 그 높은 양반들이 자기 꿈 이야기를 하고 또 해석에 경청했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성도와 교회가 하나님께서 맡기신 세상을 위한 소명을 제대로 감당하려면 교회와 성도는 실력과 신뢰성을 모두 갖추어야 합니다. 정말 자신은 믿지 않더라도 우리를 볼 때 자신들과는 뭔가 다르다고 느낄만한 무언가가 있어야 합니다. 흔히 목회자나 성도들은 사회를 위한 마지막 희망은 교회에 있다고 말합니다. 사실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교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맡겼으니까요. 그러나 이번 일이 일어나고 사회는 교회는 물론이고 그 어떤 종교에도 의견을 묻거나 조언을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말할까요? 지금 한국 사회는 그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그들이 의지하고 신뢰할만한 신뢰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종교들 중에서 기독교가 가장 신뢰성이 떨어지는 종교가 되어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결코 혼자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죄송합니다만 나만 괜찮으면 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싫든 좋든 하늘나라를 대표하는 공인입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것 또한 우리의 삶이 가지고 있는 공적인 성격 때문입니다. 우리가 불교도라면 남묘호랭개교를 믿는 사람들이라면 우리가 어떻게 살든 그들은 우리를 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예수 믿는 사람들이 삶의 모습이나 천박한 가치관 때문에 욕을 먹는다면 그것은 사람들의 책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책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무관심은 곧 하나님의 무관심일 수도 있습니다. 


이 새벽에 기도하러 오신 여러분에게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여러분 자신의 삶의 작은 부분의 가치와 역할을 절대로 무시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이 세상의 요셉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신뢰를 받고 그 신뢰를 통해 그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게 하시기 위해서 보내신 작은 선지자들입니다. 세상을 위한 빛과 소금으로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자신과 한국교회를 위해서 꼭 기도해 주십시오. 작은 일에 진실하고 신실한 한국교회가 되게 해 달라고, 이 세상을 세속적인 가치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한국교회 성도들이 되게 해 달라고, 여러분 자신이 그런 사람들이 되게 해 달라고 잊지 말고 기도해 주십시오. 그래서 한국 사회가 신뢰할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이 땅의 성도들, 이 땅의 교회가 이 땅을 위한 요셉과 같은 역할을 회복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