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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4.24. 새벽예배 - 요셉이 그에게 이르되(창세기 133)



창4008to19 - 요셉이 그에게 이르되(창132).pdf


20140424D (#1).mp3.zip





본   문 : 창세기 40장 08-19절



얼굴에 서린 근심의 이유를 묻는 요셉에게 관원들은 꿈을 꾸었는데 해석이 되지 않아서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요셉은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내게 이르소서”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두 사람은 요셉에게 자신의 꿈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이야기를 했는데, 그 이야기가 그 사람들에게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졌던 것입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요셉이 참 부러웠습니다. 목사로서 나도 저럴 수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생각했습니다. 그런 영향력은 곧 삶이 말을 뒷받침해 주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작은 결단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어떻게든 아주 조금씩이라도 그런 삶을 향해서 나아가야 하겠다고 말입니다. 그래야 나의 말이 우리 성도들에게라도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니 그래야 하겠다고 말입니다. 저 자신을 보면 자신이 없습니다만, 위해서 꼭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목사가 목사다운 목사가 되도록 꼭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요셉에게 먼저 자기 꿈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은 왕의 술을 담당하던 관리였습니다. 그의 꿈은 이랬습니다. 그가 꿈에 보니 자기 앞에 포도나무가 있더랍니다. 그 포도나무에는 세개의 가지가 있었는데, 갑자기 싹이 나더니 입이 생겨나고 꽃이 피더니 이내 포도송이가 익길래, 그 포도를 따서 즙을 짜서는 바로에게 가져다 주었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이 꿈의 해석을 이렇게 들려줍니다. 세 개의 가지는 사흘을 의미하는 것이고 사흘이 지나면 결국 복직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꿈 자체도 색깔이 굉장히 밝은 꿈이었지만, 그 해석은 더 밝고 희망적입니다. 그러나, 이 해석은 그저 그럴 수도 있다고, 책임을 질 수는 없지만 위로나 받으라고 말해 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요셉의 말대로 하나님께서 꿈에 대해서  내려주신 해석이었고 예언이었으며 또 약속이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듣는 사람이나 또 말해 주는 사람이나 얼마나 기분이 좋았겠습니까? 삼 년도 아니고 삼일만 더 고생하면 예전의 상태로 복직된다는 이야기이니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얼마나 마음이 가볍고 부담이 없었겠습니까? 듣는 사람이나 그 이야기를 해 주는 사람 모두 기쁨과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을 것입니다. 


술 담당 관리의 꿈에 대한 해석이 너무 좋은 해석이었으니 조금 찝찝하고 불길한 생각이 들었어도 빵을 담당하는 관리도 용기를 냈습니다. 아마 그 꿈 때문에 마치 중병이 의심되는 증상이 나타난 상태에서 병원에 진단을 받으러 간 사람과 같은 심정이었겠죠. 빵을 담당하는 관리의 꿈은 이랬습니다. 자신이 꿈에 흰 떡 세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있었고, 맨 위의 광주리에는 자신이 바로를 위해서 만든 여러가지 구운 음식이 있었는데 새들이 날아와서 그 음식들을 먹어 버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꿈 이야기만 들어보아도 절대로 좋은 내용일 것 같지가 않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요셉은 그것보다 더 나쁘고 절망적일 수 없는 해석을 들려 주었습니다. 광주리 세 개가 삼일을 뜻한다는 것은 똑같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다음에 들려진 해석은 그야 말로 청천병력과도 같은 이야기 였습니다. 해석인 즉, 옥에서 나가기는 하겠지만 그 날 나무에 달아 죽일텐데 새들이 자신의 시체를 뜯어먹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절망적인 이야기입니까? 정말 괜히 물어 보았다 싶었겠지요. 그 앞에 다가오는 삼일이 그에게는 정말 지옥에 들어앉아 있는 것처럼 여겨졌을 것입니다. 두려움과 절망에 몸서리를 쳤을 것입니다.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하는 요셉인들 그 이야기를 쉽게 해 주었을 리가 없습니다. 그래도 그 동안 마음을 다해서 섬기고 돌봐주었던 사람의 마지막에 대한 처참하고 절망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요 성도 여러분,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술 담당 관원의 꿈에 대한 해석이야 밝고 희망적인 이야기이니 그대로 들려주었다고 쳐도 굳이 떡 담당 관원의 꿈에 대한 해석을 그렇게 있는 그대로 전해 주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어차피 3일 뒤면 죽을텐데 그 동안이라도 마음 편히 살도록 적당히 누그러뜨린 이야기를 전해줄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요?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 사람 사이에 오고 간 꿈이 대한 이야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면서도 또한 개인적인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요셉은 그들의 꿈에 대한 하나님의 해석을 들려주겠다고 했고, 그 두 사람 또한 요셉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들의 꿈에 대한 하나님의 해석을 듣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의 중심에는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 같은 설교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려고 애써야 하고 여러분들 같은 청중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애써야 합니다. 물론 설교자는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청중들도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들이 있겠지요. 그러나, 설교자는 자신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만 전해 주어서는 안되고, 성도들 또한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들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운데 놓고 신앙생활 하는 목사와 성도들이 힘들어도 잃어버려서는 안되는 태도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이 요셉이 술 담당 관원에게 들려 준 꿈의 해석처럼 밝고 소망 넘치는 말씀도 목사는 그 말씀을 전해야 하고, 성도들은 그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떡 담당 관원에게 들려진 꿈의 해석과 같은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목사는 그 말씀을 전해야 하고 성도들은 그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설교자가, 그리고 성도들이 하나님의 종과 백성으로서 지녀야 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의 겸손이며, 또 놓치지 말아야 할 복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말씀으로 인해서 빚어져 가려고 한다면, 그리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이 정말로 중요하다면, 음식을 편식하듯이 진리를 편식해서는 안됩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영광스러운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시는 분이시니까요. 그런데, 그런 예수님의 영광은 은혜를 통해서만 표현되지 않습니다. 그 분 안에 충만한 진리를 통해서도 표현됩니다. 그래서 진실로 주님의 영광을 보려면 은혜만 받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진리도 있는 그대로 대면해야 하고 또 그 안에 거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영혼은 온전하신 주님의 영광을 보고 그 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참된 성도가 되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절대로 시류를 좇아서는 안됩니다. 가볍고 밝고 부담 없고 위로만 되는 그런 이야기들만 들으려고 하는 시류를 좇아서는 안됩니다. 그게 어떤 이야기이든 그저 있는 그대로의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원하셔야 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를 향한 소원이 하나 있습니다. 정말 우리 교회를 은혜와 진리 위에 세워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진리를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전할 용기는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믿음이 부족해서 이겠지요. 그래서 여러분에게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용기를 가지고 항상 하나님 편에 서서 불편하더라도 온전한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는 일에 헌신할 수 있도록,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림으로써 여러분의 영혼을 진정으로 유익하게 하는 참 목사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우리 교회가 성도는 성도의 자리에서, 목사는 목사의 자리에서 들어야 하고 전해야 할 말씀을 중심에 놓고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은혜와 진리 안에서 충만한 주님의 영광을 보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아름답게 빚어져 가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