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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예배

2014.06.22. 주일오전 -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기독교 역사관)



창5015to21 -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pdf


20140622SM (#1).mp3.zip





설교본문 : 창세기 50장 15-21절



오늘 부터는 룻기를 설교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아무래도 룻기는 다음 주일부터 살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여러분과의 약속을 깨뜨린 이유는 요즘 나라 안팎을 아주 시끄럽게 만들고 있는, 우리의 신앙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주제 하나를 꼭 다루어야 하겠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기독교 역사관’이라는 주제입니다. 기독교 역사관, 그러니까 기독교 신앙이 역사를 어떻게 생각하고 이해하는가 하는 문제는 단순히 학문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이 주제 안에는 넓게 생각하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들, 그리고 좁게 생각하면 우리 인생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과연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리고 하나님과 뜻과 계획이라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과연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신 역사 속에서 우리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 직접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우리에게는 굉장히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갑자기 세상은 물론이고 사실 교회까지도 거의 관심이 없던 ‘기독교 역사관’이라는 주제가 세상의 구설수에 오르게 된 것은 다 아시다 시피 이번에 총리 후보로 지명된 교인 한 분 때문입니다. 이 분이 역사를 전공한 분이어서 교회에서 한국 역사를 신앙적으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강의했는데 이게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고 그래서 정말 난리가 났습니다. 그 강의 안에는 일제침략도 육이오 동란도 다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일반 국민들은 대부분 그 이야기들이 말도 안된다는 입장입니다. 그 안에는 절대로 인정할 수 없는 역사관이 들어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분의 강의가 기독교 안에서도 논쟁을 일으켰습니다. 물론 다수의 성도들은 이 이야기에 대해서 정말 어이 없어 하고 있는 입장이지만 몇몇 큰 교회 목사님들이 이 분의 이야기에 찬성표를 던졌기 때문에 아직도 설왕설래 말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정리해야 할까요?


먼저 이 문제와 관련된 우리의 잘못된 사고방식 하나를 다루고 넘어가겠습니다. 우리가 흔히 우리나라나 혹은 다른 나라들의 역사 속에 일어난 사건들을 이해할 때, 너무도 쉽게 그것을 하나님의 복이나 혹은 벌주심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런 생각이 만들어 내는 대표적인 오류가 ‘예수 잘 믿으면 나라가 잘 된다, 한 나라가 큰 재앙을 당하는 것은 다 죄악 때문이다’라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너무 쉽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그렇게 믿어 버리는 이유는 우리가 이스라엘과 이 세상에 있는 다른 나라들은 똑같이 취급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분명히 그렇게 다루셨습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잘 믿으면 복을 주셨고,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 징계를 내리셨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런 방식을 이스라엘이 아닌 다른 나라에도 그대로 적용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 잘 믿으면 현실적으로 복된 나라가 된다고 생각하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하나님의 벌을 받게 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죠. 이스라엘에 적용하는 역사적인 법칙은 다른 나라에는 절대로 적용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나라 전체가 교회였던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약 이스라엘이 흥하고 망한 법칙을 굳이 적용하려고 한다면 교회에 적용해야지 세속 국가들에게 적용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신 다음에는 이 법칙도 깨지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오신 후에 어떤 의미로 그 동안은 숨겨져 있었던 진짜 복과 최고의 복이 무엇인지가 드러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땅의 복은 진짜 복의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진짜 복은 영적인 복이고 또 하늘의 복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는 어떤 교회가 진짜로 복받은 교회인지 조차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 한 가지는 꼭 기억해 놓으시구요. 앞으로는 눈에 보이는 모습만으로 한 나라나 교회, 혹은 개인의 영적인 복을 판단하는 실수를 피하시기 바랍니다. 


기독교 역사관을 이해함에 있어서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은 기독교는 역사가 돌고 도는 원이 아니라 시작과 끝이 분명한 직선이라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역사가 시작이 있다고 믿는다는 것은 그것을 시작하신 분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는 뜻이고, 끝이 있다는 것은 그 역사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시작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역사의 끝, 그러니까 목적을 정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어 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반드시 그 목적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 목적이란 온 세상을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이 충만한 하나님 나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목적은 언제 이루어 질까요? 바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입니다. 그 때 온 세상은 완전한 천국이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되고 세상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후에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이어질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가 이해하는 역사의 끝이란 역사가 끝나는 시간이 아니라 완전한 역사가 시작되는 첫 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역사만 이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개인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어머니의 태에서 나올 때 한 번,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실 때 또 한 번. 예수를 믿는 우리들의 개인적인 역사는 두 번 시작됩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우리 개인의 역사가 진짜로 시작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거듭나게 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때부터 우리의 인생은 우리 구원의 완성이라는 목적을 향해서 진행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목적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그렇다면 이 목적은 언제 이루어질까요? 가깝게는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이고 멀게는 주님이 다시 오실 때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역사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에도 분명한 시작과 목적이 있으며 그 목적이 이루어질 때까지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들을 붙들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얼마나 든든한 일입니까? 처음과 마지막 사이, 그 목적이 이루어질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도, 우리 성도들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시작과 끝 사이에서 만나게 되는 모든 일들은 그저 과정 중에 만나는 일들에 불과합니다. 그것 자체가 최종적인 답이 될 수 없습니다. 


제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답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답이 아니라 진짜 답으로 가기 위한 또 하나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제가 우리 교회에 오기 전에 담임목회지를 위해서 정말 많이 기도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러신 줄 압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 교회에 왔습니다. 그렇게 보면 이것은 저와 여러분의 기도의 응답입니다. 그러나 그게 전부일까요? 이게 마지막 답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또 하나의 질문입니다. 내가 이렇게 너희의 기도를 들어 주었고 그래서 너희들이 만나 하나의 교회를 이루게 해 주었는데, 그러면 이제부터 너희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으시는 하나님의 질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다 진짜 답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삶 속에서 만나는 답처럼 보이는 모든 것은 최종적인 답이 아닙니다. 좋아 보여도 그렇고 나빠 보여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실패를 경험하고 힘든 일을 만날 때, 너무 심하게 좌절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게 마지막 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우리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일들은 진짜 답으로 나아가는 중에 만나는 질문들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가지고 계신 그 목적을 다 이루시기 전까지 그래서 우리에게 끝은 없고 마지막도 없습니다. 이것이 역사가 목적이 분명한 직선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인생관입니다. 


둘째, 기독교가 믿는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지극히 선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 분이 역사에 대해서 가지고 계신 목적도 선합니다. 그 속에 악한 것이라고는 전혀 섞여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10장 11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약속합니다.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이것은 하나님을 믿다가 마지막에 낭패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항상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실 뿐만 아니라 그 모든 약속들이 선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과 우리를 이끌어 가시고자 하는 곳에는 악한 것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절대로 마지막이 실망스럽거나 비참하지 않습니다. 그 마지막에서 그는 하나님께서 그 동안 만들어 가셨던 가장 선한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세상이 아무리 어두워 보여도 끝까지 소망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성도 여러분, 기독교의 역사관, 그리고 인생관은 결코 어둡지 않습니다. 인간은 죄인이고, 이 세상은 그런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죄악들이 가득 쌓여 있어도 결국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일들 끝에 하나님의 가장 선하신 목적을 이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하나님은 지극히 선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선한 목적을 이루어 가시는 과정에서 직접 악한 일을 행하시는 경우는 절대로 없습니다. 제가 여기서 악한 일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직접 그릇된 일을 하지는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악을 행하는 것은 사람이지 하나님이 아닙니다. 역사를 이끌어 가실 때나 혹은 우리 개인의 삶을 움직여 가실 때,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스스로 악한 일을 행하시시는 않습니다. 앞에 등장했던 그 분이 그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했던 것은 “하나님은 지극히 선하시다”는 하나님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진리를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저질러 놓은 악을 수습하시고 가장 해가 적은 모습으로 바꾸시며 때로는 그것을 재료로 최선을 만들어 가시기도 하시지만 절대로 직접 악한 일을 행하지는 않으십니다. 일본으로 하여금 우리나라를 정복하게 만드시거나 인간의 교만과 이기심을 부추겨서 전쟁을 일으키시지는 않습니다. 구약에는 그런 것 같은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까지 말씀드리려면 너무 복잡해 지니까 일단 오늘은 이렇게 이해해 놓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을 지극히 선하신 분으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 분은 절대로 스스로 악한 씨앗을 뿌려서 선한 열매를 거두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옳지 않은 방법으로 얻은 좋은 것들은 절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 아니라 악의 열매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 아니라 겉으로 보기에는 좋지만 속은 썩어 있는 것들로 자기 인생을 채우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하고 참된 복, 정말 부작용 없는 복으로 채우려면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바르고 정직하게 하나님의 뜻에 맞는 선택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이루어 갈 때, 계획과 섭리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계획이 목적을 이루어 가시는 과정에 대한 하나 하나의 정해 놓은 절차를 의미한다면 섭리는 그 절차에 따라 목적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우리가 분명히 해 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다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즉흥적인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과 끝,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셀 수 없이 많은 일들과 그것 때문에 생겨나는 모든 변수들을 한 번에 모두 보시면서 계획을 세우시고 또 그 계획을 섭리해 가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이러한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가기 위한 과정이며 섭리는 그 모든 중간 목표들과 마지막 목적을 실제로 이루시는 하나님의 행동인 것입니다. 그러니, 내일 일도 모르고, 자신의 마음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우리가 하나님의 이런 계획과 섭리를 다 이해한다는 것은 아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불안합니까? 그래서 두려워 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지극히 선하시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몰라도 불안해 하지 않을 수 있고 또 두려워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 분의 계획과 섭리도 분명히 선할 것이며, 그 마지막에 우리가 만나는 진짜 대답 또한 가장 선한 것이 될 것이 분명하니까요. 여러분은 이 세상의 역사와 여러분의 인생이 이런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가운데 있음을 꼭 믿으시고 그 믿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제 악의 문제로 넘어 가겠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악의 문제는 사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믿는 우리의 믿음을 자주 자주 흔들어 놓습니다. 사람들이 저질러 놓은 악한 일들은 마치 하나님이 실패하시고 심지어는 계시지 않은 것 같이 여겨지게 만들기도 하니까요. 인간의 악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방해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섭리가 완전히 실패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하나님의 섭리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요.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보기에 그런 것이지 사실이 아닙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무엇일까요? 바로 십자가입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십자가만큼 하나님의 계획이 완전히 실패한 듯이 보여지는 곳이 없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장 끔찍하게 못 박혀 죽은 자리이니까요. 예수님을 거기 못 박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얼마나 많은 악행들이 행해졌는지 모릅니다. 그 모든 인간의 악함이 하나로 모아진 결과가 바로 십자가였지요. 그렇지만 놀랍게도 십자가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안에서 그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이 가장 온전하게 이루어지는 자리 였습니다. 거기서 우리의 죄가 용서 되었고, 죽음이 정복 되었으며,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의 왕이 되셨으니까요. 하나님의 섭리는 아무런 방해와 악이 없다는 조건 하에서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안에는 인간의 모든 악행과 사탄의 모든 방해가 이미 계산되어 포함되어 있고, 하나님의 섭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때로는 그것을 이용해서 더 효과적으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이루어 갑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계획을 망쳐놓거나 하나님의 섭리를 능가하는 악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보다 지혜로우신 분도, 하나님보다 능력 있는 존재도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의 역사관에 대해서 살펴 보았는데요. 기독교의 역사관은 결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역사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과 성품을 펼쳐 가시고 보여주시는 무대와도 같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목적과 그 목적이 이루어져 가는 과정,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행동은 절대로 하나님의 성품과 어긋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제대로 알고 또 믿기만 한다면, 이 세상의 역사와 우리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과 일하심을 확실하게 믿을 수 있고, 그 믿음 안에서 우리는 든든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아무리 어둡더라도 우리가 경험하는 인간의 현실이 아무리 절망적이더라도 결국 그 모든 것을 선하게 인도하시고 또한 끝나게 하실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지극히 선하신 하나님은 또한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또한 불가능한 일이 전혀 없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요셉의 말보다 더 적절하게 이러한 기독교의 역사관과 인생관을 표현한 구절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아버지 야곱이 죽자, 예전에 자기들이 한 일 때문에 갑자기 두려워 졌습니다. 자기들이 요셉을 애굽에 팔아먹은 일로 요셉이 보복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부탁이라고 하면서 자신들을 살려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러자 그 이야기를 들은 요셉은 슬퍼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먼저 요셉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요셉은 형제들이 자신을 애굽에 팔아넘긴 일은 자신에게 해를 입히려고 그렇게 한 것이기 때문에 악한 일이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물론 요셉은 자신이 그 일 때문에 애굽으로 왔고 우여곡절 끝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결국에는 자기 가족들 뿐 아니라 그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살리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결국 모두가 유익한 일이 된 것이죠. 그렇지만 요셉은 그렇다고 해서 형제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합리화해 주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나를 해하려고 한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우리가 저지르기 쉬운 실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선한 목이 이루어 졌다면 그 과정 중에 이루어진 악한 일들은 봐 주어야 하고 또 용납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악한 일은 악한 일입니다. 결과가 선하다고 해서 악한 일이 선한 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사리를 제대로 판단하려면 우리는 항상 이 두 가지를 분리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꿩 잡는 게 매다’라는 사고방식은 신앙 안에 끼어들 자리가 전혀 없습니다. 


오늘 주제와 관련해서 그 다음에 나오는 요셉의 말은 무척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선하게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형제들에게 요셉을 팔아먹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악한 일을 시키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따로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악한 일을 선하게 바꾸시고 그것을 수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도구로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가 하는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사람들의 모든 죄악에도 불구하고, 그 죄악을 선으로 바꾸셔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계획을 이루어 갑니다. 더러운 옷이 세탁기에 들어가면 깨끗한 옷이 되어 나오듯이 인간의 악한 행동들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오히려 선한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일제의 침략도 한국동란도 인간이 저지른 악행입니다. 백 번 양보해서 그것이 아주 미세하게 나마 어떤 유익한 결과를 남겼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악한 일이라는 사실은 변할 수가 없고, 그래서 그것은 절대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악행의 피해를  최소화 하고 또 그것을 사용하셔서 그 가운데서 선한 일을 만들어 내시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섭리 가운데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 지독한 일제의 침략과 수탈, 그리고 그 처참한 전쟁을 경험했으면서도, 그리고  여전히 그 잔재가 다 청산된 것이 아닌데도 이 나라가 이나마 건재할 수 있는 것은 악을 선케 만드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덕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역사의 주인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는 결코 악이나 죄와는 상관 없는 방식으로, 그 악과 죄를 사용하시고 선하게 바꾸시면서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향해 모든 역사를 섭리해 가십니다. 그 강하고 거대한 섭리의 흐름 속에서 선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악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것은 철저히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그 안에서 우리가 행한 악한 일은 아무리 선한 결과를 낼 지라도 여전히 악한 것으로 남습니다. 반대로 악한 결과로 이어진 것처럼 보이는 나의 선하고 올바른 선택 또한 선한 것으로 남습니다. 그 선과 악이 하나님께는 답이 아닙니다. 심지어는 그 결과도 답이 아닙니다. 인간이 선택한 선과 악, 그리고 그 선과 악이 만들어 낸 결과들은 하나님께서 선한 목적을 이뤄 가시는 도구요 재료에 불과합니다. 


결국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게 온 세상의 역사이든 우리 개인의 역사이든 결국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사실에 여러분의 소망을 두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선한 것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흔들리지 마시고 하나님의 성품에 합당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시고 그것을 취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악이라도 선케 바꾸셔서 사용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한 조각 조각을 우리의 인생과 이 세상의 역사를 위한 최고의 재료로 기쁘게 사용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선하신 목적을 향해 선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으로 선하고 정직한 삶을 살아서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그 날이 부끄러움의 날이 아니라 칭찬과 영광의 날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이 세상의 역사, 그리고 나의 인생을 선하신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섭리하심을 진실로 믿게 하소서.
  2.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악이 아니라 선을 선택하며 살게 하소서. 이 세상과 나의 삶을 위해서 좋은 씨앗을 뿌리며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