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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2.11.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레위기 7-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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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5년 2월 11일 수요일



계속해서 7장에서는 구약의 제사들에 대한 말씀들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구약의 제사제도는 참 다양합니다. 우선 그 제사의 성격에 따라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로 나뉘고, 제사를 드리는 방법에 따라서 번제, 소제, 화제, 거제, 요제로 나뉩니다. 속죄제는 죄 자체를 용서받고 다시 거룩해 지기 위해서, 속건제는 죄가 만들어 낸 손해를 배상하기 위해서 드리는 제사이고, 화목제는 죄와 상관 없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래서 화목제는 다른 제사와 드리는 방식이 다릅니다. 번제는 통째로 태워드리는 제사이고, 소제는 곡식가루를 기름과 유향과 섞어서 태워드리는 제사이고, 거제는 들어서 드리는 제사, 그리고 요제는 흔들어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요제와 거제는 그것이 분명히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도 제물의 일부를 레위인들에게 음식물로 주기 위해서 행하는 절차인 듯합니다. 


우선 속죄제와 속건제는 죄와 관련된 제사이기 때문에 제물은 태워야 하며, 그 일부는 레위인들에게만 주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화목제물은 달랐습니다. 화목제물로 드려지는 것은 제사가 드려진 후 그 제물을 서로 나누어 먹었습니다. 갑작스럽게 하나님께 감사를 표시하고 싶어서 드리는 화목제의 제물은 그 날 다 먹어야 했고, 미리 서원이나 자원하여 드린 화목제의 제물은 제사가 드려진 그 다음날까지 먹을 수 있었습니다. 남은 것은 태워버려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만약 이 규정을 어기는 경우에는 그 제사가 화목제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 제사가 분명히 자발적인 마음으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해서 드리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 조건만큼은 분명히 지켜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죄와 상관없는 제사였던 화목제에 이런 조건이 붙여졌을까요? 그저 추측해 볼 수 있을 뿐이지만 그것은 아마도 화목제가 가지고 있는 성격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화목제는 태워서 드리지 않습니다. 다 먹고 남은 것만 태우게 되어 있구요. 그렇다면 제사를 드리고 남은 것 또한 그 양이 꽤 많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화목제는 마치 잔치처럼 행해졌습니다. 전혀 죄와 상관 없이 하나님을 향한 감사를 표시하고, 또 자발적인 서원을 지키기 위해서 드리는 제사였다는 점에서 이 제사는 기쁜 제사가 될 수 밖에 없었고, 하루나 이틀 안에 많은 양의 제물을 다 먹어야 했기 때문에 더욱 더 그랬습니다. 만약 하루나 이틀안에 다 먹으라는 규정이 없었다면 이 제사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분명히 그 안에는 인색한 마음과 욕심, 그리고 사람들을 편가르는 마음이 끼어들었을 것입니다. 고기가 귀했던 시대에 두고 두고 아껴 먹으려는 마음이 끼어들어 많은 사람들과 나누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고, 또 욕심이 끼어들어 자기가 많이 가지고 가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급하게 소진할 필요가 없으니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줄 필요가 없어져서 함께 나눌 사람들을 골라서 교제했겠지요. 이렇게 되면 하나님과 기쁜 마음으로 교제하기 위해서 드려지는 제사가 사람의 욕심과 인색함, 그리고 교만 때문에 더럽혀 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제사를 기쁘게 받으실 리가 없죠. 그래서, 하나님과의 교제라는 참된 의미를 살리려면 이 제사에는 이 단서가 반드시 필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이 다 이렇습니다. 율법은 하나님께만 잘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너희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이웃들과 어찌 보면 상관 없는 사람들에게도 잘 하고 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사람들을 향한 사랑으로 표현해 보라고 말합니다. 


8장에는 제사장 위임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위임식은 온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모세의 손으로 행해졌는데요. 이 때부터 모세는 제사장으로서의 임무를 레위인들에게 위임하게 됩니다. 정치적인 지도력과 종교적인 지도력이 여기서 부터 나눠지게 되었습니다. 이 위임식은 우선 이들이 하나님을 섬길 성막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일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런 후에 속죄제의 숫송아지가 제물로 드려졌고, 번제의 숫양이 드려졌으며, 그다음에 위임식의 숫양이 제물로 드려졌습니다. 속죄제물과 번제물이 아론과 아들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 드려진 것이라면, 마지막 위임식의 숫양은 그렇게 속죄함을 받은 아론과 아들들에게 피를 발라 거룩하게 구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일종의 중보자로 일했던 이들은 단순히 죄를 용서받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적극적으로 거룩해 질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을 직접 섬기는 사람들에게는 단순히 죄를 용서받는 것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신을 성결하고 거룩하게 구별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베드로 전서 2장 9절을 보면 모든 예수 믿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여기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제사장들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께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스스로 자신의 제사장이 되어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께로 나아가고 있으며 또 다른 이들을 위해서 사람들과 하나님을 연결해 주는 제사장이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두 가지 모두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죄 용서를 받아야 하고 또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구별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전에 우리는 절대로 신약성경이 말하는 참되고 영광스러운 성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너무 은혜롭게도 우리는 이미 이 두 가지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이 두 가지 은혜를 모두, 그리고 영원히 받았습니다. 그 분이 내어주신 목숨으로 우리는 완전한 죄 용서를 받았고, 우리에게 뿌려진 그 분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거룩하게 구별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용서받기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 꼭 제사를 드려야만 했고, 그것도 제사장들을 통해서만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우리가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단 한 번으로 충분한 영원히 효력있는 제물이 되어 주셔서 우리는 영원히 죄용서를 받았으며, 또한 거룩하게 구별되어 우리 자신과 이 시대를 위한 거룩한 제사장들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은혜 가운데서 이 부르심에 따라 살 때, 우리는 우리의 거룩함과 영광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내가 어느 자리에 있든 하나님께서 보내신 제사장으로 항상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며, 다른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섬기는 삶을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 영광스러운 부르심을 따라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기쁨과 감사를 나누는 화목제물과 같아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항상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하나님과 사람들을 섬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