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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6.01.19.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예레미야 3-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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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6년 1월 19일 화요일





그게 사람이 가지는 한계이기도 하겠고 저 역시 누군가에게는 그런 역할을 하겠지만, 저는 때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굉장히 답답해지고 좌절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가 언제인가 하면 바로 저는 마음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이야기를 자꾸 머리로 들으려고만 하는 분들을 만날 때입니다. 그럴 때면 정말 괜히 마음을 털어 놓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고 그런 느낌이 드는 순간부터 입을 다물게 됩니다. 계속 이야기 해보았자 저 자신이 더 큰 상처만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마 저도 누군가에는 자주 그런 역할을 하고 있겠지요. 마음을 알아달라고 하는데, 머리로만 생각하려고 하고, 평가하고 분석하려고 하는 그런 실수를 아마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주 하고 있을 것입니다. 


문득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께도 이런 답답함과 아픔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만 하더라도 성경을 읽을 때, 그런 실수를 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으로, 그러니까 뜨거운 가슴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가슴 없이, 마음 없이 그 말씀을 듣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마음을 알아달라고, 하나님의 진심을 알아달라고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인데, 저는 그 말씀을 그저 1+1=2라는 식으로 생각하고서 그 마음 자체를 헤아리려고 하지 않는 것이지요. 제가 그럴 때마다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답답하고 안타까우셨을까 선지서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됩니다. 성경에서 선지서들만큼 하나님께서 마음으로 하신 말씀을 기록한 부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예레미야서만큼 하나님의 마음이 절절하게 표현되어 있는 성경도 드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라는 변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전하라고 하신 예언의 말씀을 전하는 내내 그는 전혀 그 말씀들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백성들을 보면 눈물을 흘렸을 것이고, 또 애석하게도 결국 그렇게 해서 패망의 길을 가는 자기 동족들을 보면서 통곡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예레미야서는 예레미야가 흘린 눈물이 묻어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그 눈물은 예레미야의 눈물이기도 했지만 또 하나님의 눈물이기도 했습니다. 예레미야가 울 때 하나님도 예레미야와 함께 우셨고 또 함께 눈물 흘리셨습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속에서 그를 통해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레미야서를 읽을 때, 그러한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슬픔을 염두에 두고서 읽어내려가야 합니다. 그렇게 마음을 헤아리며 읽어내려가야 이 말씀들을 오해하지 않고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조금은 이랬다 저랬다 하시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언제는 유다와 이스라엘을 호되게 꾸짖고 신랄하게 정죄하시며, 또 가차 없이 혼을 내겠다고 말씀하시다가 그 다음에는 정반대로 태도를 바꾸셔서 돌아와라, 돌아오기만 해라, 내가 용서하고 고쳐줄 것이다, 나는 너를 정말로 사랑한다, 나는 여전히 네 아버지고 네 남편이라고 그들을 설득하고 달래며, 애원하시기까지 하니까요. 그렇다면 어떤 것이 하나님의 진짜 마음일까요? 화내고 정죄하시고 징계를 선고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진짜 일까요, 아니면 돌아오라고 내가 용서하고 고쳐줄 것이라고 애원하시듯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진짜 하나님의 마음일까요? 물론 둘 중의 하나만 100퍼센트이고 나머지 하나는 0퍼센트이고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진심은 그들을 벌 주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어디 그런 짓을 하고서도 너희가 나에게 돌아오려고 하느냐’고 말씀하십니다. 말만 보면 돌아와도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지요. 물론 그렇습니다. 죄의 양과 질만 보면 그들이 저지른 죄는 너무 크고 깊어서 돌이킨다고 해도 도저히 용서가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곧 ‘너희가 이만큼 잘못했어도…”라는 뜻입니다. 진짜로 하고 싶어하시는 말씀은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돌아오라”라는 말씀입니다.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의 남편임이라 내가 너희의 배역을 고치리라”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에 잘못을 깨닫지 않은 상태에서 돌이킬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커다란 잘못을 저질렀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진심으로 뉘우치고 용서를 구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신랄하게 하나님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시고 말씀하시며 그 죄의 심각성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물론 그 백성들이 그래도 끝까지 고집을 부리고 돌이키지 않으면, 정말 끝까지 끝까지 기다려도 죄를 뉘우칠 기미조차 보이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 백성에게 매를 드실 것입니다. 호되게 때를 것입니다. 그러나 그건 하나님의 진짜 의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진짜로 바라시는 것은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빨리 돌이키는 것입니다. 빨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면, 그 분의 호된 꾸중과 거친 정죄하심도 오히려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게 들릴 것입니다. 그래서 더 쉽게 자신의 잘못을 되돌아보고 더 쉽게 돌이킬 수 있게 될 것이구요. 


우리는 완벽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죄를 짓기도 하고, 그 죄를 자기도 모르게 합리화하며 또 그러다가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서 무감각해 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서 우리의 마음만 열려 있다면, 하나님의 진심을 헤아릴만큼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만 굳어지지 않는다면 됩니다. 호된 꾸중을 듣고 때로는 철없는 아이처럼 그 꾸중에 화가 나더라도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됩니다. 


우리를 꾸짖고 나무라실 때도 그 품을 열어놓으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잊지 마시고 언제나 그 품으로 달려가기를 주저하지 않는 우리 모두, 그렇게 주님의 마음으로 다가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