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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6.06.30.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마태복음 27장 1-4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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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6년 6월 30일 목요일


 



악인들 일수록 죄를 저지르는데 있어서는 교묘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저지르는 죄악은 죄질이 훨씬 더 나쁘고 중합니다. 대제사장들 백성들의 장로들. 이들은 유대인들의 지도자들입니다. 이 말은 이들은 실제로 하나님을 섬기는 그 어떤 일반백성들보다도 더 정직하고 더 선해야 하며 언제나 바른 길을 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그 길을 가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악인이 되는 것을 선택했고, 자신들의 힘을 자신들의 악한 계획을 이루고 지키는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이들은 자기들 멋대로 불법적인 재판을 열고 예수님을 정죄했습니다. 그러면, 자신들이 직접 예수님을 처치하면 될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예수님을 그 당시 로마의 총독으로 파견되어 있었던 빌라도에게로 데리고 갑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 손 안대고 코 풀겠다는 심산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직접 예수님을 처형하면 예수님을 따르는 군중들이 난리가 날테니까 그렇게 하는 대신에 예수님을 빌라도의 손에 넘겨 그의 손으로 죽이게 만들어서 예수님의 죽음을 불명예스럽게 만들고 또 동시에 자신들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게 일을 꾸민 것입니다. 


빌라도는 이미 예수님에 대해서 들어왔기 때문에 오히려 예수님을 살려주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심문해 보니 이 사람에게는 사형을 당할만한 죄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군중들에게 타협안도 제시했지요. 명절이니까 내가 이 사람을 살려주어도 되겠느냐고 말이지요. 그렇지만 이미 군중들은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사주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 또한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했던 이야기를 반복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막무가내로 졸라댑니다. 


이 때,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를 그 어떤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던 빌라도는 자기 아내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합니다. 군중들과 지도자들의 지지를 유지하기 위해서 죄없는 사람을 죽이는 철저히 정치적인 선택을 한 것입니다. 그것을 공표할 때 대야에 물을 떠서 군중들 앞에서 손을 씻으며 자신은 이 죽음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 말이지요. 그렇게 해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악인들의 손에 넘겨졌고 또 그렇게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죄가 우리와 별로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누구에게나 이런 모습은 있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지키겠다는 생각에 빠지면 우리도 언제든지 그 정도는 달라도 대제사장과 장로들 그리고 빌라도처럼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지키려는 마음이 너무 강하면 그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선택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도 그렇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절대로 이런 모습이 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목적은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어떤 것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목적으로 삼으면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그 당시 예수님의 죽음을 둘러싼 힘있는 자들은 그런 의미에서 다 우상숭배자들이었습니다. 다른 것을 하나님 자리에 놓고 그것을 섬겼으니까요.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그런 상태였다는 것은 굉장히 충격적이지만 이것이 바로 형식과 내용의 차이입니다. 형식은 전혀 내용을 보장해 주지 못합니다. 대제사장이라는 신분, 장로라는 위치가 그를 저절로 하나님을 목적으로 삼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지는 않고, 그것이 그의 신앙의 크기와 깊이를 이야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을 둘러싼 권력자들의 모습에서 바로 이 교훈을 읽어야 할 것입니다. 


관정으로 끌려오신 후부터 십자가에 달리시고 숨을 거두시기 전까지 십자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을 ‘모독’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독 받을만한 일을 하신 적이 전혀 없으십니다. 그런 심한 모욕을 당할 이유는 더더욱 없으시지요. 그러나 죄인들, 실제로 그런 모욕을 당해야 마땅한 죄인들이 오히려 예수님을 모욕했습니다. 심지어는 그렇게 무죄한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았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던 사형수들까지 그렇게 했습니다. 죄 있는 사람들이 죄 없는 사람을 모독하면 그 모독은 더욱 악한 것이 되고 견디기 힘든 것이 됩니다. 그런 상황을 당해보신 분들은 다 알 것입니다. 지켜 보는 것만으로도 화가 나서 견디기 힘들 지경이 됩니다. 물론 이 모독은 우리가, 아니 죄인들이 당해야 할 것을 예수님 스스로 뒤집어 쓴 것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또한 우리와 전혀 상관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의인놀이’를 많이 합니다. 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위에 서서 손가락질을 해대며 마치 그 사람의 재판관이라도 된 양, 마치 자신을 검은 색 앞에 있는 백색처럼 여기면서 그렇게 평가하고 판단하는 일을 너무 쉽게 하곤 합니다. 자신보다 더 검다고 생각되는 사람 덕분에 스스로를 더 희다고 생각하면서 그 일을 즐기는 것입니다. 물론 옳고 그름은 분별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른 사람들을 향한 모독과 비아냥 거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물론 자기 의를 사랑하는 우리들에게 이 일이 참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 일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때 예수님의 십자가 주변의 사람들처럼 되어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목적으로 삼으려는 우상숭배와 스스로를 높이려는 자기 의는 죄성을 가진 인간의 뿌리깊은 죄악입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또 그렇게 못 박히신 예수님을 모독한 사람들의 가장 큰 죄악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언제나 이 두 가지, 가장 근본적이고 뿌리 깊은 죄가 여전히 우리 안에 있음을 잊지 말고, 겸손하게 죄와 싸우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