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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분문 : 시편 26편




시편을 읽다가 보면 가끔씩 시편 기자들이 지금 우리들로서는 도저히 하기 힘든 이야기들을 굉장히 당연하다는 듯이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들 중에서도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이 있다면 바로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로움을 너무나 당당하게 주장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나는 순결했다, 나는 순수했다, 나는 죄를 짓지 않았다, 나는 바른 길로만 걸었다… 정말 어떻게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그것도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당당하고 확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질 않지요. 오늘 다윗도 시편 26편에서 그렇게 하고 있는데요. 그런 점에서 시편 26편 또한 우리의 마음을 조금 불편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다윗이 지금  자기 평생에 단 한 번도 잘못된 일을 하고 죄를 지은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지금 자신이 당하고 있는 어렵고 고통스러운 상황을 놓고 볼 때, 이 상황과 관련해서는 그렇게 나쁜 일을 하지 않았고 또 의로운 삶을 살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법정에서 자기 변호를 하고 있는 피고와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 사람은 지금 죄인으로 잡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재판이 끝나면 형을 받고서 감옥에 들어가게 될 형편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런 벌을 받을만한 죄를 지은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피고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나는 죄를 지은 적이 없습니다. 내가 이런 형벌을 받는 것은 부당합니다. 정확하게 다시 한 번 조사해 보십시오.”라고 큰 소리로 항변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시편에서 다윗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했다. 내가 주의 진리 중에 행했다, 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않았고 간사한 자와 동행하지도 않았다, 나는 무죄하다 그러니 나를 시험하고 살펴봐 달라… 다윗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중입니다. 지금 자신이 당하고 있는 힘든 상황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 잘못이 아니니 이 어려움에서 건져 달라고 간절히 구합니다. 이렇게 보면 이런 기도는 이상한 기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당연히 할 수 있는 기도이고 또 드려야  마땅한 기도입니다. 


사실 이 시편 중에서 우리를 가장 당황스럽게 만드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다”는 말일 것입니다. 힘든 일을 당할 때, 알 수 없는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 저 정말 죄 없어요 할 수는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하나님 저 완전하게 행했어요라고 말하기는 정말 쉽지 않을테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 보면요. 다윗은 지금 하나님의 완전함을 기준으로 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의를 기준으로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의 말은 “하나님, 그래도 저 그래도 제 삶의 온전함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서 애썼습니다.”라는 정도의 뜻으로 보아야 합니다. 


또 한 가지 다윗은 지금 자기 자신의 의로움이나 올바름을 내세우면서 이런 말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바로 그 다음인데요.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흔들리지 않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지금 다윗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나 이만큼 잘 했습니다 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이 이리 저리 마음을 바꾸지 않고 심지굳게 하나님을 의지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앞에서 ‘나의 온전함’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구체적으로 이것을 말합니다. 그가 말한 온전함이란 그의 행동과 삶의 온전함이라기 보다는 다윗이 올곧게 하나님을 의지했던 태도의 온전함이었던 것입니다. 지금 다윗이 하나님께 자신을 살피고 판단하라고 하면서 스스로 제시한 기준이 바로 그것입니다. 3절을 보아도 그것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는 자신을 살피고 뜻과 양심을 연단하라고 말씀드리면서 “주의 인자하심이 내 목전에 있나이다”라고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여기 무슨 말이 나옵니까? ‘인자하심’라는 정말 은혜로운 말이 나옵니다. 그러면 인자가 무엇이지요? 인자란 전혀 자격 없는 사람에게 베푸는 호의와 사랑을 말합니다. 그러니 다윗은 지금 하나님의 율법을 기준으로 자신을 냉정하게 평가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자하신 성품에 따라 자신을 평가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살지도 않았고 함부로 악한 일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거룩한 삶을 살려고 애썼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만약 자신이 하나님의 거룩한 눈 앞에 있는 그대로 선다면 자신은 할 말이 없는 죄인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 고난과 관련해서는 죄가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호소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분명히 다윗이 이런 기도를 하게 된 것은 그가 자신의 잘못과 상관 없는 고난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번에 당하는 어려움이 이런 종류의 고난이었기 때문에 다윗에게는 문제가 하나 더 생겼습니다. 그것은 만약 자신이 죄를 지은 악한 사람들과 똑같이 어려움을 당한다면 하나님이 오해를 받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그 동안 자신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다르게 산다고 살아왔는데, 다른 사람들이 다윗의 대적들이 그것을 다 알고 있는데, 만약 악한 사람들처럼 취급받는다면 하나님은 악한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똑같이 다루시는 불의한 분으로 생각될 수 밖에 없고, 잘못하면 의롭게 살아가려는 사람들까지도 그런 오해에 빠져 낙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요. 이것 때문에 다윗은 마음이 훨씬 더 급했습니다. 그래서 더 간절하게 기도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의 이런 기도 속에서 성도의 기도를 불신자들의 기도와 다른 기도가 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우선 자기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의지해서 기도했습니다. 그가 아는 하나님은 자격 없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용서를 한 없이 베푸시는 그런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는 가망 없는 죄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엄하신 기준으로 보면 잘 했다, 잘 못했다는 따지기 전에 이미 용납될 수 없고,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무언가를 구하고 또 요청할 때는, 내가 보기에는 아무리 그럴 듯하게 잘 살고 있다고 해도 그것만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다시 나아가고 기도하며 무언가를 구할 수 있는 길은 딱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한 없이 인자하신 분이라는 사실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격 없는 죄인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은혜와 사랑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에 의지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다윗의 기도 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마음이 들어 있었습니다.  다윗은 고난때문에 기도하면서도 하나님의 명예를 걱정했습니다. 자신의 고난 때문에  악한 자들이나 믿음 약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오해하게 될까봐 그것을 걱정했습니다. 이 두 가지가 그의 기도를 성도의 기도답게 만드는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지요. 그렇지만 이 믿음은 어떤 사실을 믿는 지식이 아닙니다. 이 믿음은 관계입니다. 하나님의 풍성하시고 선하신 성품을 이해하며 거기 의지해서 살고, 그런 좋으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걱정해 드리는 마음. 이것이 바로 참된 신앙의 본질입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에서 나온 믿음이 진짜배기 기도가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과의 진짜 교제가 되는 것입니다. 관계도 교제도 참된 것이 되려면 반드시 주고 받는 마음이 있어야 하니까요. 


다윗은 마지막 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발이 평탄한 데에 섰사오니 무리 가운데서 여호와를 송축하리이다” 기도를 드리고 난 다윗은 이미 평탄한 데에 서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고난이 끝난 것일까요? 아닙니다. 고난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이제 자신은 평탄한 데 서 있다고 말합니다. 그가 말하는 평탄한 곳은 고난이 끝났기 때문에 나타난 땅이 아니었습니다. 그 평탄한 곳은 다름 아닌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다윗은 기도를 통해 다시 한 번 자격 없는 자신에게 베풀어 주시는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게 되었고, 자신이 그런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비록 현실이라는 땅은 여전히 울퉁불퉁하고 흔들리고 있었지만 그의 영혼은 이미 세상 가장 평탄한 곳, 하나님 위에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안에 있고, 또 그 안에서 하나님과 마음과 마음을 주고 받을 때, 우리는 항상 평탄한 데 서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언제나 우리 영혼의 흔들림을 붙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기도하실 때, 무엇을 기도하시든지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의 은혜로운 관계 안에서,그리고 하나님을 생각하는 여러분의 진심을 더하여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너무 여러분의 상황과 기도제목에 붙들려 계시지만 마시구요. 그러면 우리의 기도는 우리 발을 다시 한 번 평탄한데 세워주는 능력있는 기도가 될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의 기도 중에 우리의 발을 다시 평탄한 데 세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항상 주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잘 지키고 그 안에서 살아가게 하소서. 형식적인 신앙생활이 되지 않게 하시고, 부족해도 하나님과 마음을 통하는 신앙생활이 되게 하소서. 


2. 언제나 내 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의지하며 사는 은혜를 아는 겸손한 성도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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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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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환 2017.05.31 11: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샬롬~~목사님~말씀에 은혜가 됩니다 위로를 받습니다 "내 발이 평탄한데 섰사오니"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