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린도전서 3장 8-15절
기초와 건축재료, 그리고 건축방법이라는 세가지는 하나의 건물을 세우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세 가지 모두 중요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고르라면 아무래도 기초가 될 것입니다. 기초를 잘못 선택하면, 원하는 건물을 세우지 못할 것이고, 세운다고 하여도 결국을 잘못된 기초 때문에 큰 어려움을 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원래 어떤 땅을 선택하고 거기에 기초를 닦는 것은 그 위에 건축물을 세우려는 목적 때문임을 생각한다면, 기초가 중요한만큼 그 위에 세워지는 건축물은 더 중요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건축물이라는 목적의 질과 미래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건축재료와 건축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실한 재료로는 견고한 건물을 지을 수 없습니다. 또 재료가 아무리 좋다고 하여도 적절한 설계와 공법과 그리고 성실한 시공이 없다면 지어놓은 건물은 겉모습은 그럴듯하더라도 해도 결국 부실건물이 되고, 언젠가 외부의 큰 충격이 주어지면 무너져 내릴 가능성을 안고 있는 건물이 될 것입니다. 기초와 건축방법, 그리고 건축재료.... 이 세 가지는 좋은 건물, 제대로 된 건물을 세우려는 사람들이라면 하나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건축의 필수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그렇게 세워진 건물의 전체적인 완성도가 그 건축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3장 1절부터 8절까지 바울은 특정 사람에 집착하여 서로 다투는 고린도의 성도들을 나무라면서 자신을 포함한 사역자들은 각자 다른 역할을 맡은 농부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자라게 하는 것은 농부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니 신앙에서 가장 결정적인 것은 하나님이시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들 모두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교회의 분열과 갈등은 대개 서로 다른 것을 바라보면서 그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생겨납니다. 해결책은 그 모든 시각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되고, 그래서 정말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다면, 차이점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거의 모든 차이점들은 생각보다 쉽게 넘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 모든 것을 진정으로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건축자와 건축물의 관계를 통해서 또 한 번 사역자들과 교회, 사역자들과 성도들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그는 유일한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교회나 성도 개인이나 그 어떤 경우에라도 기초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건물을 세우는 건축자나 세워지는 건축물 모두 다른 기초를 선택할 자유가 없습니다.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안됩니다. 남의 땅에, 다른 땅에 세워진 건물이 내 건물이 될 수 없듯이, 그리스도가 아닌 기초 위에 세워진 건축물이라면 결코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집이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전부는 아니어도 이것만큼은 양보되거나 변경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아얘 그 건축물의 소유를 다르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뒤에 보면 하나님께서 지어진 건축물들을 평가하고 검증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다른 기초 위에 세워진 집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쳐다보지도 않으실 것입니다. 남의 집이니 쳐다볼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부족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쳐다라도 보실 건물이 되려면 그 건물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라는 기초 위에 세워져야만 합니다.
바울이 감당했던 역할은 바로 그 기초를 잘 닦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고린도 교회에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로만, 복음으로만 기초를 닦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으며, 또 그렇게 했습니다. 오히려 투박하고 어리석게 보일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방법을 택하지 않고 일부러 피묻은 십자가의 복음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닦은 기초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만큼 자신의 일에 대해서 하나님과 성도들 앞에서 당당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바울이 참 부러웠습니다. 나도 내가 하나님 앞에서 한 일들에 대해서,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저렇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당당한가를 생각해 보았지만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말은 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어서 인간적인 부족함들이 있었겠지만,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일의 본질을 이렇게 저렇게 바꾸거나 변형시키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가 눈에 보이는 일의 결과를 보지 않고 그 일을 시키신 하나님을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효율을 먼저 생각하고, 결과를 먼저 생각했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이것이 그가 확신했던 것이고, 기대했던 것이고 또 두려워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만족이라는 상을 바라보지 않았으며, 사람들의 칭찬이라는 상을 바라보지 않았고, 일의 결과가 주는 성취감이라는 상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그는 하나님께서 주실 상을 바라보았으며, 그것을 받지 못할까봐 두려워했습니다. 어떤 것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은 하나입니다. 주어질 것을 기대한다면, 받지 못할 것이 두려워지게 되어 있습니다. 한쪽이 크면 다른 한쪽도 커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변함없는 하나님 앞에서의 삶의 원동력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으로 부터 받을 상을 기대하며 바라보았고, 그것을 받지 못할까 두려워했습니다. 그것이 그에게 하나를 향한 열정과 긴장을 가져다 준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 아닌가 합니다. 하늘의 상을 받으려는 기대, 그리고 그것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말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늘의 상을 기대한다면 그 상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그만큼 클 것입니다. 지금 각자 자신의 속을 한 번 들여다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안에는 그 기대감과 그 두려움이 있습니까? 그 기대감과 두려움이 나의 에너지가 되며 나를 긴장하게 하는 이유가 되고 있습니까? 내가 올곧게 살아가며 이리 저리 휘둘리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이유가 되고 있습니까? 제가 누누히 말씀드리지만, 하늘에 속한 것과 땅에 속한 것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 속한 것들에 대한 감각이 없으면 이 땅에서 그것들이 주는 능력과 유익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를 이 땅에서 성도답게 당당하게 살게 하는 것은 바로 하늘의 상입니다. 그 상을 바라볼 때, 그리고 빼앗길 것을 두려워할 때 우리의 이 땅 위에서의 삶은 바울의 삶처럼 교만해 보일 정도로 당당하고 거리낌 없는 삶이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이 기초를 닦았듯이 바울 이후의 사역자들은 집을 세우는 임무를 맡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들을 향해서 이렇게 충고합니다.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건축의 기초는 정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들이라면 분명히 그 기초 위에만 건축할 것입니다. 건축주 되시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가장 중요하게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남는 문제는 무엇으로 어떻게 지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건축자가 다양하듯이 건축재료는 각자가 정할 수 있습니다. 또 건축방법도 정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시공의 성실성까지도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해야만 하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함을 시험할 것임이니라”라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생각해야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준공검사입니다. 하나님의 준공검사는 엄격할 것입니다. 그것은 완전하신 분의 준공검사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재료로 삼건, 어떤 방법으로, 어떤 태도로 세우건 전적으로 건축자의 자유이지만 세워진 건축물 만큼은 하나님의 불시험, 그 엄격한 준공검사를 거쳐야만 합니다.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터가 그리스도이기만 하다면 세워진 것이 준공검사를 통과하지 못한다고 해서 세운 사람의 구원까지 취소되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 구원은 결코 영광스러운 구원이 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불에 타고 남은 폐허더미 속에서 건져진 타다만 목재같이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세우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세워진 것이 끝까지 남아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불로 하시는 그 염격하고 무시무시한 준공검사를 통과하고 건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남아있으면 나에게 상이 될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상이 아니라 해가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분명히 일차적으로는 교회를 섬기는 저와 같은 사역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특히 양육의 책임을 맡은 목회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어떤 면에서 보면 건축자인 동시에 건축물이며, 세우는 자인 동시에 세워지는 사람들입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는 사역자와 성도로, 그리고 성도와 성도로 교회 안에 있고, 나무와 벽돌처럼 그저 아무 생각과 느낌없이 수동적으로 사용되기만 하는 재료들이 아니라 그 교회의 살아있는 일부로써 적극적으로 함께 그리고 스스로를 세워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사역자와 성도는 어쩔 수 없이 하나로 묶여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건축자는 건축물을 세웁니다. 그러나, 건축주는 건물로 그 건축자를 평가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검증을 거쳐야 하는 것은 바로 건축물입니다. 그리스도라는 기초 위에 교회의 신앙을 세우는 것은 사역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교회의 신앙으로 사역자를 평가하십니다. 그 과정에서 불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교회이고 그 교회의 성도들의 신앙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세워지는 과정 중에 자기 자신을 준비해야 합니다. 준비시키고 세우는 사역자들의 노력에 성실히 스스로를 세우는 일로 반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게 되고, 그러면 사역자는 물론이고 자기 자신도 큰 해를 입게 됩니다. 이렇게 사역자와 성도에게 있어서 서로가 하는 일은 서로에게 강하게 묶여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는 성도들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세워지는 동시에 세우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성도로 교회 안에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관계를 만들고 교회 안에서 신앙을 키워갑니다. 그러는 가운데 우리는 서로 서로 어떤 모양으로건 영향을 주고 또 받습니다. 이 영향은 나를 세우고 다른 이들을 세우거나, 나를 허물고 다른 이들을 허무는 방향으로 주어집니다. 나는 다른 이들을 세우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무너뜨리는 사람도 될 수 있으며 반대로 다른 사람으로 인해 무너질 수도 있고 세워질 수도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의 내 행동 하나하나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다른 이들을 위한 작은 건축자이며, 동시에 다른 이들이 세우는 교회라는 건물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세우거나 허물거나 한 나의 행동은 결국 하나님 앞에서 최종적인 검증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고, 그것에 따라서 상과 벌이 결정되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개인적으로, 혹은 교회 안에서 어떤 상황에 있든지 간에 스스로를 세우고 또 다른 이들을 세우는 자로써 무엇으로 어떻게 세우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게 세운 것들이 끝까지 하나님의 준공검사를 통과할 수 있을 것인지, 그래서 나에게 영원한 영광이라는 상을 안겨줄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가 될 것인지를 항상 살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 있는 한, 우리 모두는 각자 각자 서로 상관없는 개인이 될 수 없습니다. 싫든 좋든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들은 운명공동체입니다. 내가 목회자이든 성도이든 스스로를 바로 세워가며, 서로 서로를 세워줌으로써 서로의 영원한 상에 참여하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제가 여러분과 함께 하는 이유, 그리고 하나님께서 저를 이곳에 보낸 목적은 바로 그렇게 여러분을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으로, 그 분이 마음 놓고 거하실 만한 곳으로 여러분 하나 하나를 그리고, 장년 2부라는 공동체를 건축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장년 2부와 관련된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소명임을 믿습니다. 저는 이 일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그리고 주님께서 전체 건축과정 중에서 어느 공정까지를 저에게 맡기셨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바울이 기초를 닦고 고린도 교회를 떠났듯이, 제가 장년 2부를 떠날 때까지는 계속 열심히 이미 닦아놓은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 여러분을 세워가려고 합니다. 회원 여러분, 저에게 다른 것이 아닌 그것을 기대해 주십시오. 다른 시각이 아니라 그런 시각으로 저를 바라봐 주시고, 저에게 그것을 요구해 주십시오. 다른 것은 몰라도 그런 요구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한, 들어드릴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돕고 세워가는 과정에서 바울과 같은 당당함을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제가 여러분 속에 세워놓은 부분들이 마지막 날 여러분이 주님의 불시험을 통과할 때, 여러분을 더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는 것을 본다면, 저에게 그보다 더 큰 보람과 영광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여러분을 예수 그리스도라는 기초 위에만 든든히 세워갈 수 있도록, 그래서 그런 즐거움과 영원한 영광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서로를 위해서 그렇게 기도하며 애쓰시기 바랍니다. 스스로를 잘 세워가는 건축자가 되기 위해서, 또 다른 이들을 허물지 않고 세워지도록 돕는 조력자로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애쓰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하늘의 상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에 마음과 생각을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하늘의 상이 나에게 정말 중요해 지도록, 이 땅의 영광과 인정, 그리고 자기만족보다도 훨씬 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해 지도록 묵상하고 묵상하며 또 묵상하십시오. 지금 눈에 보이는 것들보다도 훨씬 더 명확해질 때까지 집중해서 생각하고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늘의 상을 빼앗길까봐 두려워할 정도로 귀하게 여기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이 소망과 기대, 그리고 두려움이 회복되어야 우리는 모두 모두를 위한 지혜로운 건축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 날,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그 날,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눈에 지혜로운 건축자로 인정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세운 건축물들이 불시험을 통과하고, 그 엄중한 하나님의 준공검사를 마치고 주님께서 마음껏 거하실 만한 거처로 인정받는 영광을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지혜로운 건축자와 건축물에게 주시는 상에 대한 기대를 새롭게 하셔서, 우리 교회가, 교회의 목회자들이, 그리고 각자가 교회를, 그리고 서로서로를 그리고 자신을 가장 든든한 하나님의 집으로 세워가는 상받는 건축자, 끝까지 남아있는 건축물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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