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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5.16. 새벽예배 - 요셉과 함께 즐거워 하였더라(창세기 144)


창4325to34 - 요셉과 함께 즐거워 하였더라(창144).pdf


20140516D (#1).mp3.zip





본   문 : 창세기 43장 25-34절




어제의 이야기가 요셉에 대한 형제들의 반응이었다면 오늘 이야기는 형제들에 대한 요셉의 반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식사가 준비되었다는 소리를 들은 형제들은 요셉에게 주려고 가지고 온 예물들을 정돈하고 요셉이 오기로 되어 있는 정오까지 기다렸습니다. 형제들도 그야 말로 오만가지 생각을 했겠지만 요셉의 마음은 또 얼마나 복잡했겠습니까? 드디어 시간이 되어서 요셉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요셉이 집으로 들어서자 형제들도 그 뒤를 따라 들어가서 요셉에게 절을 했습니다. 요셉은 그저 아버지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여전히 안녕하신지, 건강하신지, 혹시 돌아가시지는 않으셨는지 말입니다. 아마 꼭 한 번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겠죠. 형제들은 여전히 평안하고 건강하게 지내고 계시다고 대답합니다. 그 다음 요셉의 눈길이 머문 곳은 바로 자신과 한 배에서 나온 동생 베냐민이었습니다. 요셉은 다 알면서도 묻습니다. 너희가 말하던 너희 막내 동생이 바로 이 아이냐고 그러다가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베냐민을 향해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기를 원한다고 축복했습니다. 요셉은 더 이상 북받쳐 오르는 동생을 향한 사랑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급하게 내실로 뛰어 들어가서 소리를 죽여가며 통곡한 후 다시 바깥으로 나왔습니다. 


드디어 잔치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또 한번 요셉의 형제들이 생각하기에는 정말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집니다. 말도 해 주지 않았는데, 요셉의 수하들이 자신들을 차서에 따라서 앉혔던 것입니다. 그 자리에는 요셉과 요셉의 형제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애굽사람들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형제들과 다른 손님들을 함께 앉히지 않았습니다. 따로 앉히고 음식도 따로 제공해 주었습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애굽 사람은 히브리 사람과 같이 먹으면 부정을 입음이었더라” 이것은 후에도 나오지만 그 당시 요셉의 가족들, 그러니까 히브리인들의 직업 때문이었는데요. 애굽 사람들은 목축을 하는 사람들을 천하고 부정하게 여겼습니다. 만약 요셉이 그냥 함께 섞여 음식을 먹게 했다면 아마도 요셉의 형제들은 굉장히 모욕적인 취급을 당했을 것입니다. 요셉이 초청한 손님이니 대놓고 그렇게 하기는 힘들었을지 몰라도 그 자리는 적어도 요셉의 형제들에게는 굉장히 불편한 자리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요셉의 이런 배려 덕분에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과 더불어 아주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참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모든 상황을 다 무시하더라도 애굽의 총리가 천한 히브리인들을 충분히 배려하여 자신과 더불어 편안하고 기쁘게 식사를 즐길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있으니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물론 애굽의 총리가 요셉이 아니었다면 이런 일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은 이 일은 그 총리가 요셉이었기 때문에 더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요셉과 나머지 히브리인들은 모두 요셉의 형제들입니다. 그러나 보통 형제가 아니죠. 출생과 성장과정에서 전혀 가족이라고 할 수 없는 관계로 자라났고 결국 마지막에는 이유야 어쨋든 요셉은 나머지 형제들의 손에 팔려서 이방 땅의 종이 되었던 사람입니다. 게다가 지금은 말 그대로 그 형제들의 생사여탈권까지 쥐고 있는 그런 권력자가 되어 있습니다. 힘이 없다면야, 여전히 약자라면야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요셉은 형제들을 이렇게 대접할 이유가 없습니다. 용서할 때 용서하더라도 자기가 누구인지를 밝히고 형제들을 호되게 꾸짖고 혼내주고 응분의 댓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 아마도 일반적인 반응일 것입니다. 더 심한 경우라면 심하게 복수라도 해 주겠지요. 그렇지만 요셉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은 채로 그저 넌지시 무언가 알고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면서 형제들을 최선을 다해서 배려하고 융숭하게 대접합니다. 일개 히브리 목동들이 애굽의 총리대신과 함께 즐거워 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저는 요셉의 이런 모습 속에서 하나님을 믿는 자가 힘과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을 때, 그것을 어떤 태도로 어디에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모범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힘이 생기면 사람들은 그 힘을 마음껏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 힘으로 그동안 혹시 자신을 해꼬지하거나 자신에게 손해를 입힌 사람이 있으면 그것을 되갚아 주려고 합니다. 힘이 없을 때 당했으니 힘을 가지면 그런 식으로 되갚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인간의 역사란 이런 일들이 반복되고 또 반복되는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사람들이 복수극을 좋아하는 것을 보면 이렇게 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그렇게 사용하면 안됩니다. 우선 그 힘은 자신의 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힘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힘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대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람들을 돕고 섬기기 위해 리더십을 발휘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것처럼, 자기를 위해서, 개인적인 복수를 하거나 하는 일에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참 쉽지 않죠. 손에 힘이 있는데 그 힘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 말입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자기 힘을 그렇게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사용하는 대신에 사람들을 세우고 돌보며 제 자리로 돌아오도록 돕는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일에 사용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비록 자신을 종으로 팔아넘긴 형제들이지만 그 사람들을 제 자리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그들과 함께 어울려 함께 즐거워 했던 요셉처럼 말입니다. 쉬워서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어렵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힘의 사용에 대한 세속적인 사고방식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도들의 입에서도 한국은 민주주의가 안되고 독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들이 심심치 않게 나오곤 하는데, 저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정말 이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이며 그 사람들은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들이 맞는지, 그리고 우리가 성도들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힘과 리더십에 대한 생각은 얼마나 잘못되어 있습니까? 우리가 세속적인 권력이나 리더십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진실로 믿고 인정한다면 절대로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힘과 리더십의 목적은 그들이 돌보고 함께 하는 사람들의 참된 유익을 위한 것이고 섬김을 위한 것입니다. 약한 이들을 섬기기 위한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권력이 자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그 막강한 힘을 결코 자기의 권위를 내세우고 자기 목적을 이루는 일에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온 세상의 왕이셨지만 그 세상을 유익하게 하시기 위해서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가셨고 거기서 섬기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에게 구원과 은혜, 그리고 하늘의 기쁨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우리는 힘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죠. 그렇지만 우리 자신이 그렇지 않다는 것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른 리더십을 생각할 때도 그런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조금 능력은 떨어져 보이고 효율은 없어 보여도 정말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교회와 나라를 다스려줄 수 있는 사람을 좋은 지도자로 생각할 줄 알아야 하며, 그런 지도자를 지지해야 합니다. 카리스마 넘치고 욕망이 큰 사람은 지도자로 적절하지 못합니다. 


항상 크든 작든 나에게 힘이 있을 때, 그 힘이 왜 나에게 주어졌는지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요셉을 기억하시고 또 예수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두 분을 모델로 삼아서 여러분에게 있는 크고 작은 힘을 사용하시고 또 위에 있는 권위를 선택할 때, 그  두 사람을 보면서 선택하시기를 바랍니다. 힘을 잘 사용하시고, 또 잘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을 잘 분별해서 세상을 유익하게 하는 크고 작은 역할을 잘 감당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