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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5.15. 새벽예배 -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 하지 말라(창세기 143)



창4316to24 -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창143).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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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창세기 43장 16-24절



하나님과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다시 회복된 정말 귀하디 귀한 관계 안에 있습니다. 이 관계회복이 바로 우리가 삶 속에서 경험하는 ‘구원’이죠. 우리가 구원 받았기 때문에 얻는 참된 복들은 모두가 다 이 관계가 회복되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이 관계가 어떤가에 따라 신앙생활을 하면서 누릴 수 있는 것들도 말 그대로 천차만별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그래서 그 관계에 따라 우리에게 주어지는 풍성한 복들에 영향을 주는 것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강하게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죄’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죄가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 문제를 만들면 그게 우리가 누리는 은혜의 풍성함을 조금씩 조금씩 갉아 먹어서 심지어는 우리의 삶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끌어내리기도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요셉의 형제들은 다시 애굽으로 돌아왔고 요셉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드디어 형제들과 제대로 재회를 할 준비를 합니다. 청지기를 시켜서 형제들은 자신의 집으로 인도해 들였고 잔치준비를 하게 했습니다. 청지기는 요셉이 시키는 대로 요셉의 형제들을 집으로 인도해 들였습니다. 그런데 형제들은 자신들이 요셉의 집으로 가게 된다는 소리를 듣고는 두려워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그야 말로 그 두려움에서 시작된 소설을 한 편 쓰기 시작합니다. “아마 지난 번에 우리 자루에 있던 돈 때문에 우리를 끌어들이려고 하는 것 같다. 우리를 억지로 잡아서 노예로 삼고 우리의 나귀를 빼앗으려고 하는게 분명해.” 이것이 형제들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도달하게된 결론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건 정말 말도 안되는 앞뒤가 맞지 않는 상상입니다. 만약 요셉이 그렇게 하려고 했다면 돌아오는 그들을 잡아서 옥에 집어넣고 가지고 온 모든 것들을 몰수하고서 나중에 종으로 삼아 버리면 그만입니다. 굳이 요셉의 집으로 데리고 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렇게 생각했고 그 생각을 그대고 믿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집으로 가는 도중에 주절이 주절이 돈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습니다. 우리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고, 그래서 이렇게 다시 가지고 왔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이야기 하기는 했지만 그들이 그 이야기가 먹혀 들어갈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냥 한 번 호소해 본 것이죠. 그런데, 그 이야기 끝에 그들이 듣게 된 이야기는 정말 그들의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이야기 였습니다. 청지기는 이렇게 말합니다. “안심하라 두려워 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다. 너희 돈은 내가 이미 받았느니라” 그 이야기를 듣고 어리둥절해 있는 그들에게 더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청지기는 갇혀있던  시므온까지 데리고 나옵니다. 그리고는 요셉의 집으로 들어가자 마자 발 씻을 물을 내오고 나귀에게 까지 먹이를 주었습니다. 그 가뭄에 발 씻을 물이라니 정말 융숭한 대접이죠. 그렇지만 여전히 그들은 불안에 떨고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여전히 애굽의 총리가 요셉이라는 것을 모르고, 또 자신들을 적대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본문의 이야기를 읽다가 이런 비슷한 일이 우리들과 하나님 사이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잘 해주시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행동들을 선하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자꾸 우리 마음대로 생각하고 또 마음대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마음대로 해석하고 마음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느라고 주님이 주시는 선한 것들을 제대로 누리지 못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이러한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지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본다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이상이 생기면 반드시 그 때 끼어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상대방의 선함을 믿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혀 그렇게 생각할 수 없는 일도 이상하게 나쁜 쪽으로만 생각해서 스스로는 그렇게 믿어 버립니다. 이럴 때는 오히려 친절을 베풀려고 하다가 오해를 받고 공격을 받게 되기도 합니다. 


우리들과 하나님 사이에 관계가 생길 때에도 똑같은 일이 발생합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 이상이 생기면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고 선대하시려고 어떤 일을 하시는 데도 우리는 하나님을 의심하는 나머지 그 선하심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 요셉의 집으로 인도받으면서도 계속해서 자신들이 입을 피해만 생각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그래서 마음에 분노를 품고 있었을 것이 분명한 요셉의 형제들처럼 되어 버리기가 쉽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을 그렇게 의심할 수 있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요셉인 줄을 몰랐고 설사 요셉인 줄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인도될 때는 겁을 집어 먹고 지레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요셉이 자기들에게 어떻게 대할 줄 전혀 예측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그러나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애굽의 총리나 요셉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예측 불허의 인물이 아닙니다. 우리를 억울하게 죄인으로 몰아 팔아먹을 분도 아니시고, 우리에게 보복하시는 분도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변함 없이 선하신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그래서 그 분은 항상 우리를 선대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 만큼은 변함이 없습니다. 물론 살다보면 우리 경험으로는 전혀 그렇게 여겨지지 않는 일들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그래서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변함 없이 선하신 분이시라는 ‘사실’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고 또 그 믿음으로 우리 자신을 설득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죄를 피하십시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었더라도 그게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점점 더 커다란 골을 만들도록 그냥 내버려 두지 마십시오. 그러면 그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방해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한 의심을 만들어 내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주시는 은혜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게 만듭니다. 죄가 있을 때에라도 빨리 하나님께 내놓고 처리하시구요. 빨리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셔서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누리는 일에 실패하지 않는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