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동부교회 설교/설교듣기

2010년 매일성경설교 34. 이 일을 돌아보옵소서

[사용법]


방문하시는 중에서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 적어봅니다


1. 읽기는 그냥 사이트에서 읽으시거나 마우스로 클릭하시면 다운로드 되는데, 그렇게 읽으시면 됩니다

2. 설교를 들으시려면 첨부되어 있는 mp3파일(zip파일)을 위의 방법으로 다운로드 하셔서 들으시거나

    네번째 회색상자의 작은 화살표를 클릭하시면 들으실 있습니다. , 경우에는 중간에 스톱하시면 처음부터     시작합니다. 사이트의 서비스가 거기까지 밖에 안됩니다. 죄송합니다.

3. 다녀가실 때는 짧은 댓글 부탁드립니다. ) 누구 누구 다녀갑니다. 댓글은 저만 있도록도 저장할 있습니다





본문 : 열왕기상 8장 44-53절




믿음의 사람들은 왜 기도했는가?

성경에서 이야기 해주는 이스라엘의 역사, 특히 이스라엘이 자신이 범한 죄악들 때문에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다른 나라의 포로로 잡혀갔을 때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거기에는 그 때에 나타났던 하나님의 사람들, 믿음의 영웅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그러한 어려운 시기에 자신의 믿음을 지켜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란하게 빛나게 한 인물들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이런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하면서 꼭 기록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들이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이들은 한 사람의 탁월한 인물이기 이전에,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엄청난 일을 한 사람들이기 이전에 그 무엇보다도 기도의 사람들이었고 또 기도에 헌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은 이들에 대해서 기록할 때에 그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들이 기도에 전념하고 또 때로는 목숨을 걸면서까지 기도에 헌신한 이유는 그렇게 포로로 잡혀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것 밖에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사실 거기에는 더 적극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그런 기도는 막연히 고난과 아픔을 호소하고 그러한 상황을 해결해 달라는 요청을 넘어서서 기도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는 것이고 또 그들 편에서 그 약속의 성취를 위해서 해야할 어찌보면 그 약속의 반쪽이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성전봉헌에서 드린 기도, 우리의 기도

오늘 본문은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고 제단 앞에서 손을 들고 백성들을 위해 축복하며 하나님 앞에서 드린 기도의 일부입니다. 전체 본문은 8장 22절부터 53절이고 거기에는 모두 일곱 개의 기도가 기록되어 있는데, 오늘 본문은 그 중에서 마지막 두 가지의 기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기도는 하나님께서 다윗과 했던 언약을 다시 확인하면서 하나님께서 다윗 왕조를 견고히 지켜달라는 기도이고, 나머지 기도는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들으시고 응답해 달라는 요청으로 되어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이 기도를 흔쾌히 받아주셨습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 때부터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성전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 개인이, 그리고 나라 전체가 바라보고 기도해야 하며 또 기도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 되었던 것입니다. 포로시대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예루살렘쪽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일에 그렇게 헌신하고 또 집착했던 이유는 바로 예루살렘 성전에는 그러한 하나님의 언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믿었던 것은 단순한 기도의 힘이 아니었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최악의 상황에서 그들이 붙들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언약이었고 그러한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그러한 언약을 담고 있는 그릇이었고, 또 거기에 그 언약을 이루어 주실 하나님의 이름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기도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기도생활을 하는 우리들에게도 기도할 때마다 기억하고 또 되새겨야 할, 기도에 관한 아주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특히 현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의 기도는 무척 감성적인 측면이 강해졌습니다. 쉽게 말하면 그저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왜 기도할 수 있는지, 내가 내 기도의 응답을 믿을 수 있는지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기도하면 다 된다”는 생각만 가지고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도는 일종의 청구서가 되기 쉽습니다. 거기에는 기도를 하는 나도 없습니다. 그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도 없습니다. 그저 기도의 내용, 내가 원하는 소원만 있습니다. 흔히들 기도에는 ‘믿음’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기도에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성경이 분명히 말하고 있듯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기도는 그 분이 들어주실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 ‘믿음’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거기서 말하는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저도 어렸을 때 그렇게 많이 배웠지만 그 믿음은 그저 ‘하나님께서 내가 기도한 대로 다 들어주실 것이다’라는 믿음일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믿지 않는 것은 믿음이 부족한 것입니다. 저만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래서 저는 기도를 드려 놓고도 항상 죄의식에 시달릴 때가 많았습니다. 기도를 드려놓고도 도무지 하나님께서 그걸 그대로 이루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나중에 성경을 통해서 알게된 믿음, 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더 깊이 알게 되면서 비로소 알게 된 ‘기도에 필요한 믿음’이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도에 필요한 믿음이란 기도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그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사랑에 대한 믿음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기도에 필요한 믿음은 그 기도의 내용과 성취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과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많은 경우, 기도를 하시는 분들이 빠지는 함정이 바로 기도 자체에 집착하게 된다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그 기도 자체로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기도하기만 하면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기도에 주신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하는 것이며, 그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기도에 대한 확신은 바로 거기서 나오는 것이지 내 마음의 신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끈질긴 기도, 낙심하고 절망하지 않는 기도를 드릴 수 없게 됩니다. 기도했는데 내가 원하는 것이 주어지지 않으면 절망하거나 심한 경우 화가 나기도 합니다. 혹은 기도하는데도 내가 원하는 만큼 응답이 빨리 주어지지 않을 때는 실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실망하지 않으려면, 기도를 하다가 하나님을 향한 분노에 빠지지 않으려면 기도는 기도에 대해 약속을 주신 신실하신 하나님과 그 변함없는 기도의 약속을 붙들고 드리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솔로몬의 기도는 그런 점에서 그 이후의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결코 절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소망 가운데 기도할 수 있었던 아주 중요한 영적인 보호막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들은 신실하신 하나님과 그 하나님의 변함없는 기도에 대한 약속을 붙들었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약속에도 조건이 있다

위에서도 잠시 말씀드렸지만 기도에 대한 뿌리깊은 오해 중의 하나는 바로 기도를 청구서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그저 달라고 하는 행위를 기도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항상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로서는 그런 기도를 드릴 수 밖에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기도가 언제나 그래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솔로몬의 기도는 처음에는 솔로몬이 하나님께 드린 요청이었지만 그것을 하나님께서 받아들여 주셨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 그것은 하나의 언약이 되었습니다. 제가 약속이 아니라 언약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이 두 가지가 비슷한 것 같지만 일반적으로는 다르게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요약하면 약속은 종종 일방적일 수 있지만 언약은 일방적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약속은 이런 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내일 너에게 100만원을 줄께.” 그러나 언약은 그렇지 않습니다. 언약은 엄밀하게 말하면 일종의 계약입니다. 그 언약의 당사자들 모두에게 의무를 지우는 행위 말입니다. 그래서 언약은 항상 “내가 지금 내 부탁을 들어주면, 내가 내일 너에게 100만원을 줄께.”라는 형식이 된다는 것입니다. 뒤의 것을 받으려면 앞의 조건을 만족시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됩니다. 물론 사랑과 너그러움으로 상대방이 그 조건을 만족시키지 않은 경우에도 그렇게 해 주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은 예외적인 경우이지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솔로몬의 기도를 살펴보면 그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복주심의 약속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하나님과 자신, 그리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사이의 언약을 맺자고 제안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곱 개의 기도 모두가 그렇지만 오늘 본문만 보더라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여섯 번째 기도는 전쟁에 관한 기도입니다. 다른 나라와 전쟁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께서 그 일을 돌아보아 달라고 부탁하는 기도입니다. 그런데, 그러면서 솔로몬은 “저희가 주의 빼신 성과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전이 있는 편을 향하여 여호와께 기도하거든” 무조건 전쟁이 나면 도와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기도해야만 합니다. 진심으로 도움을 구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구하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이 조건을 만족시키면 하나님께서 그 전쟁을 책임져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일곱번째 기도는 만약 이스라엘이 심각한 범죄에 빠지게 되고 그래서 나라는 망하고 자신들이 포로로 잡혀가게 된다면 그 때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회복시켜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런 은혜를 구하면서 솔로몬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희가 사로잡혀 간 땅에서 스스로 깨닫고 그 사로 잡은 자의 땅에서 돌이켜 주께 간구하기를 우리가 범죄하여 패역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니다 하며 자기를 잡아간 적국의 땅에서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주께 돌아와서 주께서 열조에게 주신 땅 곧 주의 빼신 성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전 있는 편을 향하여 주께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저희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저희의 일을 돌아보옵시며...” 이 두 가지 경우 뿐만이 아닙니다. 앞의 기도를 보면 모두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가지 하나님의 징계가 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러 저러한 마음과 태도로 하나님께 돌이키고 기도하면 그 기도를 들어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스스로 제시한 조건들은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는 것, 죄를 버리는 것,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아오는 것, 그리고 나서 진심으로 기도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솔로몬은 그저 이스라엘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어떻게든 기도하기만 하면 그 기도를 들어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 자신들이 먼저 잘못을 깨닫고 버리고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게 될 때, 기도를 듣고 구원해 달라고, 상황을 해결해 달라고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 조건을 수락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아니다. 너희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 내가 무조건 너희의 기도대로 해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해 주신 기도응답의 약속은 그렇게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쌍방적인 것,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의 계약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에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무척 중요합니다. 제가 예전에 구원과 거듭남을 제외한 모든 은혜에는 조건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기도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기도, 듣고 행하시는 기도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간혹 예외도 있지만 그것은 단지 하나님의 풍성하신 성품 덕분에 일어나는 예외이지 그것이 일반적인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정상적이고 더욱 풍성한 신앙생활이 되려면 예외적인 것을 붙들고 그것을 기대하면서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일반적인 것, 그러니까 항상 그럴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붙들고 살아가야 합니다. 일반적인 법칙은 “모든 은혜에는 조건이 있다”는 것입니다. “응답되는 기도에도 조건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만약 고난과 고통 중에 있다면, 먼저 자신의 범죄와 잘못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고난이 다 100퍼센트 우리 자신의 죄 때문에 생겨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통을 주시는 데에는 여러가지 복잡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고통과 고난이 어떤 것이냐를 불문하고 고난이 성도에게 주는 커다란 유익 중의 하나는 그것이 우리 자신의 지나온 삶과 행동을 돌아보게 한다는데 있습니다. 무시하고 있었던 자신의 잘못, 알면서도 용서를 빌지 않았던 자신의 죄, 부족함과 교만함... 어려움과 고통은 우리에게 이런 것들을 살필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당하는 어려움의 전부가 무조건 다 자신의 잘못때문에 받는 징계나 벌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이런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너무나 큰 유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억지로 쥐어 짜 내거나 이미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며 용서를 구한 것들까지 들춰내지는 마십시오. 그러나, 그 때 그 어려움에 함몰되거나 혹은 집착하지 마시고 자신을 살피시며 발견되는 잘못과 범죄에 대해서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돌이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회개라는 말과 죄 고백이라는 말을 혼동해서 사용합니다. 그래서, 회개기도를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기도라고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회개는 기도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로 할 수 있는 것은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일 밖에 없습니다. 회개는 행동으로 하는 것입니다. 물론 돌이킬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죄를 버릴 수 있는 힘과 은혜를 달라고 기도드릴 수는 있지만 그것이 회개는 아닙니다. 기도자가 죄를 버리고, 죄에서 돌이켜야 하는 이유는 죄는 기도를 드리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기 때문입니다. 죄를 고백하며 그 죄에서 돌이키는 것, 그래서 그것은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는 기도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셋째는 주의 이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주인의 이름을 여호와이십니다. 참된 기도자가 되려면 거기까지 가야합니다. 기도는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그 죄악에서 돌이킨 사람이 하나님만이 자신의 주인되신다는 것을 온전히 인정했을 때 그 입술에서 터져나올 수 밖에 없는 신앙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인되신다는 것은 우리가 그 분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도 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분의 온전한 소유로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가 더 강하고 본질적입니다. 우리가 범죄하고 하나님을 떠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꾸 내가 나의 주인 노릇을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보다는 내가 원하는 것을 우선시 하게 되고, 그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을 넘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단순히 그러한 하나 하나의 욕망과 하나 하나의 죄와 싸워서는 안됩니다. 뿌리부터 바꿔야 합니다. 죄의 뿌리가 내가 나를 주인삼아 살아가는 삶의 태도에 있다면 그것을 손봐야 합니다. 하나님을 내 모든 것의 주인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렇게 주의 이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빌며 간구하는 것은 이 세 가지가 이루어진 후 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전을 향해 기도하면 무조건 들어달라고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난과 고통 중에서 이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킨 후에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향해서 빌며 간구하면 그 모든 곤경에서 건져 달라고 하나님께 요청했고, 하나님은 그것을 아주 기쁘게 받아주셨습니다. 그 때부터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은 기도응답의 언약이 있는 신앙의 고향이 되고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소망을 주는 믿는 자의 소망의 근거가 되었던 것입니다. 


결론 : 참으로 능력있는 기도

사랑하는 회원 여러분, 우리는 기도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부족하고 연약하며 또 넘어지기 쉬운 자들이어서 하나님의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뻔뻔한 자의 언어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든지 기도하기만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밑도 끝도 없는 청구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비록 때로는 잘못하고 어긋나가며 그래서 어려움에 처해지기도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사람, 그 잘못에서 돌이킬 줄 아는 사람, 그리고 다시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온전히 인정하려는 사람들의 언어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는 그렇게 하나님을 향한 가장 깊은 신뢰와 의지의 표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기도는 하나님의 흔들림 없는 언약 위에 세워진 언제나 응답되어지는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기쁘게 들으시는 기도, 그래서 가장 능력있는 기도는 가장 겸손한 자가 드리는 기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 장년부의 기도회의 날입니다. 기도회 날 이런 본문을 묵상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기도드리실 때, 내 기도의 내용보다, 내가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보다 그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에 대한 신실한 언약을 주신 하나님께 여러분의 믿음을 묶어 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먼저 여러분 자신을 살피시기 바랍니다. 교만하고 뻔뻔한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의 기도를 기뻐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잘못이 있다면 깨달으시고 돌이키시며 하나님을 하나님의 자리에 모신 후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실 것입니다. 그러면 온전히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기도가 하나님께서 주신 신실하신 언약 위에 세워진 견고한 기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