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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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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 영혼은 예수 그리스도로만 만족해야 할까? 왜 우리 영혼은 예수 그리스도로만 만족해야 할까? 우리의 영혼은 참된 미덕으로만 만족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덕이 체화되는 것을 볼 때 그토록 감동하며 기뻐하는 것일 것이다. 사랑, 명예, 소망, 완전함, 진리 등… 인간은 이러한 미덕들을 볼 때 진실로 만족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미덕들을 가장 완전하게 갖추고 있는 존재는 누구일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분 말이다. 그 분 안에는 모든 미덕이 가장 완전한 형태로 존재할 뿐만 아니라 그 모든 미덕들이 그 분을 통해서 완전한 형태로 이루어 졌다. 그 분의 존재, 삶, 가르침, 죽음과 부활… 그 모든 것이 완전한 미덕 그 자체이다. 그래서 우리 영혼은 예수 그리스도로만 만족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
"만 명 교회를 주소서." 신대원에 다닐 때부터 아주 크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소래교회에서 목이 터져라하고 기도했다. "하나님, 만명 교회를 주시옵소서. 이 만명 교회를 주시옵소서." 난 그 때 생각했다. '과연 만명은, 이 만명은 누가 정한 것인가? 그 숫자가 과연 하나님께 무슨 의미가 있는 숫자인가?' 하고 말이다. 그런데, 요즘 그 만명 소리를 또 듣는다. 내가 생각하기에는지금도 지나치게 큰데....그리고 어떤 교회는 스무 명도 채우지 못해서 힘들어 하는데... 만 명이라......요즘 아이들 말로 정말 "헐!"이다. 교회가 필요이상으로 커지는 것을 원하는 것은그야 말로 그것을 원하는 사람의 탐욕이다. 그 사람은 정말로 그 숫자가 왜 어떻게 나온 숫자인지 설명할 수 있는가?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유래한 숫자..
하나님 한 분으로 충분하다. 나는하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다고 고백하며진실로 충분한 삶을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 왔다. 이 믿음만 있으면 모든 것이 충분할 수 있기에 계속 기도하는 중에문득 깨달음 한 가지를 주셨다. 그 동안은 이 기도가나 개인의 삶에 국한되어서 이루어졌다. 그런데,하나님은나의 개인적인 삶 뿐만이 아니라고 하셨다. 너의 목회도너희 교회도나하나면 충분하다고 말씀하셨다. 하늘이 열렸다. 그렇다. 하나님 한 분이면 충분하다는 것은'완전한 진리'다. 영혼만?개인적인 삶만? 아니다.목회라는 엄연한 현실도교회라는 부족한 모임도 그저하나님한 분이면족하다. 하나님은 무한한 현실이요 실재이시므로.
아브라함의 믿음 요즘 문득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히브리서에 의하면 아브라함은자기 몸의 죽은 것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고 더욱 굳건하여져서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으며결국 약속의 성취를 보았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죽음이라는 무능과사라의 죽음이라는 절망스런 현실에도계속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했다.그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신뢰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전능하심을 믿는 믿음은 자신과 환경에 좌우되지 않는다. 나는 무능하고내가 있는 환경은 거의 죽은 것 같은 환경이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약속을 본다. 믿음 안에서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나에게 주신 약속이므로나는 그 약속을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붙든다. 하나님은믿음 안에서나에게 주신 아..
믿음이 사랑이게 하소서. “오직 하나님께만 달라붙겠다는 결심을 가져라. 비록 그 분이 당신을 죽이거나 당신의 믿음을 죽인다고 하더라도 당신이 당신의 믿음을 잃게되거든 믿음이 없는 채로 하나님의 것으로 남아 있어라” 20대 후반에 회심한 후, 감옥에서 대부분의 젊은 시절을 말할 수 없는 학대와 고문, 질병 가운데 보냈던 리차드 범브란트라는 루마니아 목사님의 신앙에 대한 충고이다. 어떤 사람에게 이런 신앙이 가능할까? 믿음만 가진 사람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일 것이다. 정해진 틀이 단단한 사람에게는 이런 이야기는 심지어는 불경스럽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신앙이 단지 ‘믿음’이 아니라 ‘사랑’이라면, ‘죽음보다 강한 사랑’이라면 그런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는 이런 신앙은 이상한 것도 아니고 충분히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믿..
함께 할 수 없는 것 - 성찬에 관하여 전부와 일부는 공존할 수 없다. 전부와 공존할 수 있는 것은 '없다(無)' 하나님이 나의 전부가 되신다면 나는 '없는 것'이어야 한다. 그럴 때라야 나는 하나님과 공존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신앙의 진실이다. 그리고 참된 신앙의 비결이다. 하나님이 나의 전부가 되시기 전에는 나는 결코 그 분으로 충만하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비워지고 그 분으로 가득 채워져야 한다. 그러기 전에는 그러기 전에는 결코 충만함이 무엇인지 알 수도 누릴 수도 없다. 그러면 그 분은 내 배에서 솟아나는 생수의 강이 될 수 없고 그러면 나는 언제나 갈증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참된 성찬은 그 분을 먹고 마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 분으로 나를 가득 채우는 것이다. 그 분으로 목마름을 해결하고 ..
많은 것이 필요없다고 생각한다면... * '예수가 바라본 하나님 나라' 중에서... ....사회과학자들은 재물이 있다고 해서 저절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실제로 어떤 심리학자는 미국을 휘감고 있는 이 뿌리깊은 역설을 다음과 같은 물음으로 표현했다. "차고 넘치는 풍요 한가운데서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슬퍼할까?" 우리는 우리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만큼 자원을 소유했다고 느낄 때에야 만족하게 된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가 결정된다. 우리의 필요, 다시 말해 우리의 행복은 어떤 절대적인 기준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은근히 비교하는 일에 의해 정해진다. 만일 우리가 많은 것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면 적은 것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 상류층에 속한 동료를 따라..
마음이 가난한 자는...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5:1) 왜 마음이 가난할까?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가난한 마음은 채워지지 않는 마음이다. 그래서 가난한 마음은 비어있는 마음이다. 사람들은 마음조차도 가난한 채로 남겨두려 하질 않는다. 그래서 무언가로 그 마음을 가득 채워보려고 애쓴다. 그러나 마음은 아무래도 채워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것만 이것만 하면서 하나 둘씩 늘어가는 '소유'로 마음을 채워보려고 하지만 결국 마음에는 '허무'만이 남는다. '하나'를 더 늘려 그 허무를 채워보려고 하지만 그 '하나'는 더 큰 공간을 만들어 낼 뿐이다. 오히려 그 '마음'이 얼마나 크게 비어있는지를 드러낼 뿐이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자신의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