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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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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단과 제물 난 교회 건물을 성전이라 부르고 강단을 제단이라 부르는 것을 싫어한다. 엄밀하게 그 말들은 틀린 말이기 때문이다.(그건 시대착오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강단이 제단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어 온다. 강단은 제단이다. 무엇을 제물로 드리는 제단인가? 제물은 무엇인가? 그 제물은 설교자가 아닐까? 말씀이 설교자의 마음을 찢고 그 심령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할 때, 그 제단의 제사는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성령을 주심의 의미 - 부활과 관련하여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성도들의 부활의 첫 열매라고 배우고 또 그렇게 부른다. 이 말은 예수님의 부활이 성도들의 부활을 보증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구약성경을 보면 첫 열매를 거두고 그것을 제물로 드리며 지키는 절기가 있는데, 그 날이 바로 초실절이다. 그리고 이 초실절 이후 50일째 되는 날을 맥추절부른다. 초실절부터 보리를 거두는 날까지 하나님께서 신실하신 은혜를 주셨음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날이 바로 맥추절이었다. 그러니까 맥추절은 하나님께서 초실절에 첫 열매로 주셨던 언약을 지키셔서 온전한 추수가 이루어졌음을 기념하며 감사하는 날이었다. 풍성한 추수를 향한 보증을 실재가 되게 했던 날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예수님의 부활은 '첫 열매'였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 부활의 초실절이었던 것이다...
믿음이 가져다 주는 것 믿음은 우리에게 하늘의 보화를 소망하게 해 준다. 그렇지만, 믿음은 이 땅에서도 그에 못지 않은 보화를 소유하게 해 준다. 그 보화는 바로 하나님의 은혜다. 그래서 믿음은 신앙에 속해 있는 모든 보물상자를 여는 열쇠가 된다. 하늘의 소망이라는 보물상자와 땅의 은혜라는 보물상자는 믿음으로만 열고 또 소유할 수 있다. 그러나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고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소망 또한 현실이 되게 한다. 믿음이 있는 한 소망은 소망에 그치지 않고 현실이 된다는 이야기다. 현실보다 더 확실한 실재... 믿음은 얼마나 복된 사건인가!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하나님을 맛보기 믿음의 기초는 언약이어야만 한다. 언약은 믿음을 가능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안전하게 한다.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언약 위에 세울 때, 그 언약이 약속하는 기쁨과 만족을 생각하며 우리는 죄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약속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쁨과 만족은 그것 뿐만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약속 안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 자신의 아름다우심과 탁월하심으로부터 얻게 되는 기쁨과 만족이다. 우리가 약속 안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아름다우심과 달콤하심을 누릴 때, 우리는 죄가 거짓되게 약속하는 만족과 기쁨의 유혹을 벗어버리고 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의 언약을 찾고, 그 언약에 우리의 믿음을 더하며, 그 언약을 묵상하면서 그 안에 담겨있는 하나..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것(장래의 은혜 중에서 인용)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살후2:13) 성화는 성령님과 믿음으로 이루어진다. 이 말은 곧 성화가 은혜와 믿음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성령님께서는 '은혜의 성령'(히10:29)이시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것은 곧 성령 하나님의 사역이지만 성령님은 믿음을 통해 그 일을 하신다.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히11:2) 정말 놀라운 구절이다. “그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예수님의 앞에 있는 기쁨, 그 분이 바라보는 기쁨은 십자가도 참게 하셨다! 단순히 십자가를 상상할 때뿐아니라 십자가에 달려 있는 그 순간에도 하늘의 기쁨은 십자가의 고통보다도 훨씬 더 컸다. 성경은 그 분이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그러니 그 분을 바라보라고 명령한다.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그런 온전한 믿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늘의 기쁨이 십자가 보다 더 선명하고 견고한 실재가 된다면 십자가도 능히 견딜 수 있을 것이다. 믿음.... 그 놀랍도록 불가사의한 기쁨이라는 이름의 능력...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저의 믿음도 그리스도의 믿음같게 하소서. 저의 믿음도 온전케 해 주..
어찌 주시지 않겠는가? - 존 프라벨의 글 중에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하시고 우리 모든 삶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8:32) "He who did not spare his own Son but gave him up for us all, how will he not also with him graciously give us all things?"(Rom 8:32)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까지 아끼지 않은 마당에 자기 백성들에게 일시적인 은혜들을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효과적으로 부르시고 아무 공로없이 의롭다하시며 그들을 완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영원토록 의롭게 하는 이런 일들을 어찌 하지 않으시겠는가? 자기 백성들을 입시고 먹이며..
왜 기도하고 근심하면 안되는가? - '장래의 은헤' 7장을 읽으며 "For all the promises of God find their Yes in him. That is why it is through him that we utter our Amen to God for his glory."- 2 Cor 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기도가 우리에게 한 없은 유익이 되고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기도가 위의 말씀에 기초하고 있어야 한다. 1. 기도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 전달된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 후 아멘하는 이유다. 우리가 하나님의 '예스'를 듣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이다. 2. 기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