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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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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적 메시지??? - 체험은 진리 선포의 근거인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체험에서 나온 메시지를 좋아한다. 물론 현실감도 있고, 도전이나 감동도 그저 이론적인 메시지와는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마음이야 십분 이해가 간다. 그런데, 그 메시지가 진리를 전하는 것일 때는 어떨까? 그 때도 우리는 체험된 메시지가 아니니 별 관심과 감동없이 들어도 될까? 그렇지 않다. 진리는 그저 진리로서 가지는 자격과 권위가 있다. 특히 하나님의 진리라면 그 진리로 인한 감동과 영향력은 그 진리 위에 역사하시는 성령님께서 책임지신다. 물론 그 진리대로 살아서 그 진리를 확인해 본 사람이 그 진리를 전한다면 더 생생하게 진리를 이해할 수 있고, 더 큰 확신을 얻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그 진리를 참된 진리라고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전달자의 체험 여부와 상관없이 그 ..
만약 "해 아래가 전부라면"(전도서 묵상을 마치며) 해 아래가 전부라면.... 그 네모난 상자 속이 전부라면... 우리가 확실하게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겠는가? 해 아래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무엇인들 의미있으며, 무엇인들 확실하며, 무엇인들 정해져 있겠는가? 바르게 살려는 사람의 외로운 몸부림도 약삭빠르게 사는 사람의 재빠른 움직임도 선을 추구하는 사람의 끊임없는 노력도 악을 행하는 자의 제 맘대로의 행보도 결국 죽음이라는 무(無)로 끝나버리기는 마찬가지라면 다 무슨 유익이 있고,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한시적인 것은 허무하다 끝나버리는 것들은 모두 허무하다 땅 위의 것은, 그리고 그 위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들은 모두 사라지고 의미없고 알 수 없고 결정적이지 않다. 이거다 할 수 있는 게 없다. 땅이... 해 아래가... 그 네모난 상자 속이 전..
십일조 단상... 수요일 저녁 조장들과 성경공부를 했다. 주제는 십일조와 헌물이었다. 본문은 말라기.... 하나님은 이스라엘더러 자기에게 돌아오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제시하신 것이 바로 십일조와 헌물이었다. 그게 바로, 온전하게 드려지면 나에게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하셨다. 주님은 먼저 십일조를 떼시고 십분의 구만 주실 수도 있으셨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왜일까? 왜 하나님은 번거롭게 하나를 다 주셨다가 우리에게 그 중에서 십분의 일을 다시 요구하신 것일까? 그것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시는 것일까? 십일조는 선악과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존중하며 순종하고 있는지를 드러나게 해 주는 선악과다. 부분이 온전하려면 전체도 온전해야 한다. 불완전한 전체에서는 온전한 부분이 나올 수 없다. 그래서... 또...
어떻게 해야할까요? 오늘 이웃 교회에서 부목사로 일하고 있는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 교회는 지금 무척 힘든 분쟁가운데 있습니다. 얼굴이 많이 어두워 보였습니다. 그동안 한 번 이명증으로 쓰러진 적도 있다고 합니다. 교회가 분쟁가운데 있을 때, 부목사는 어디에 서야할까요? 무척 어려운 문제인 듯 싶습니다. 아무리 옳은 편에 선다고 해도 결국 사람의 편에 서게 되니 다르게 생각하고 다른 편에 서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욕하고 오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또 그렇다고 중립을 지키기도 어렵습니다. 자기의견도 없다고.... 회색분자라고... 기회주의자라고 생각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까짓 오해야 뭐가 문제겠느냐고 생각하겠지만.... 사람이 사람 가운데 살면서 전혀 자기 아닌 사람으로 오해받는다는 게..... 얼마나 큰 고통인지..
오늘... 한 목사님의 위임식에 다녀왔습니다. 오늘 동역하던 한 목사님의 위임식에 다녀왔습니다. 목사님이 그리로 부임하시고 만 2년만의 일입니다. 저도 너무 기뻤습니다. 한 번도 찾아뵙지 못한 게 미안하기도 했구요. 식사 후에 마당에 서 계신 목사님 옆으로 다가갔습니다. "정말 애 많이 쓰셨어요. 힘드셨죠?"라고 했더니.... "이론하고 실제는 달라....필드는 힘들어....현장을 경험해 봐. 여기까지 오느라고 정말 힘들었어."라고 하셨습니다. 식당 앞에서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계신 사모님께로 다가가서 "그동안 애 많이 쓰셨죠?"하고 말씀드렸더니 사모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긴 해요. 그렇긴 해요. 여기가 많이 힘들었죠."라고 가슴에 손을 가져가시면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습니다. 물론 새로운 사람들이 만나서 한 식구가 된다는 게 그..
일상이라는 기적..... 기적을 강조하고, 기적이 일어나야만 참된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고 생각하는 형태의 신앙이 있다. 이런 신앙은 항상 기적을 일으켜야만 참된 신앙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혹시 기적이 필요없는 신앙생활이 더 좋은, 바람직한 신앙생활이 아닐까? 기적은 그야말로 비상시에 하나님께서 소위 말하는 '자연법칙'을 넘어서는 일을 행하시는 것을 말한다. 물론 우리 인생에는 기적이 일어나야만 하는 순간이 있을 것이고, 우리의 신앙은 그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정확히는 그런 하나님의 능력을 삶에 가져올 수 있는 신앙이어야 할 것이다. 기적은 필요하고 일어나야만 하는 무엇이다. 단, 하나님께서 원하실 때, 그 분의 영광을 위해서 말이다. 평상시에는.... 평상시에는 기적보다는 일상이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 기..
너무나 큰 갭(?) 세상에는 많은 차이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단지 차이라고 하기에는 도무지 넘어설 수 없는 갭들도 있다. 한 가지 사실을 바라보고, 한 자기 일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그 모든 것을 단지 차이라고 생각하고 이해해야 할까? 단지 생각의 차이 말이다. 그러나.... 분명 옳고 그름이 있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옳은 사고방식이 있으면 그릇된 사고방식이 있고 옳은 선택이 있다면 그릇된 선택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하는 일은 모두 헛될 뿐일 것이다. 난... 최선을 다해서 내가 옳다고 여기는 편에 설 것이다. 결과는.... 마지막 평가는.... 그 분의 몫으로 맡겨놓고.....
망각에 대하여... 누군가... 망각은 크나큰 복이라고 했다. 그렇다. 망각은 참 큰 복이다. 망각없는 삶은 떠나지 못하는 삶일 것이기 때문이다. 허나, 망각은 하나의 형벌이며 심각한 질병이리라.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게 될 때 그래서 있어야 할 곳에 있지 못하고, 누려야 할 것을 누리지 못하게 될 때는 말이다. 은혜의 망각.... 하늘을 바라는 자들에게는 이보다 더 큰 질병은 없으리라. 망각은 숨 쉬는 것 만큼이나 사람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기에 망각을 거스르려 하지 않는다면 모두 망각에 삼켜지고 말 것이다. 그 분의 이름의 영광, 그 분이 주신 은혜까지도.... 그래서, 찬양은.... 그리고 그 찬양으로의 초대는 그 분을 위한 일인 그만큼 나를 위한 일이다. 망각... 그 천형을 치료하고 거스르는 유일한 놋뱀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