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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묵상

2012.02.01. 매일성경 묵상

     오늘 본문은 누가복음 5장 12-26절입니다. 
   
     “온 몸에 문둥병 들린 사람...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12절, 18절)

두 명의 치료 불가능한 환자가 등장하고 예수님께서는 그 두 사람을 고치신다. 

“온 몸에 문둥병 들린 사람이 있어 예수를 보고 엎드려 구하여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니...”(12절)

온 몸에 나병 들린 사람이 예수님께 왔다. 그런데, 그는 병을 고쳐달라고 하지 않았다. 문둥병자는 병도 문제였지만 그 병이 가져다준 부수적인,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더 주된 문제들이 더 컸다. 그는 그 질병으로 인하여 율법의 기준으로 ‘부정해(unclean) 졌다.’ 그 부정함은 그를 모든 사람들, 심지어는 가족들로 부터까지 분리시켰으며, 그를 영적인 자괴감과 열등감에 시달리게 했다. 다른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그를 ‘더럽게(unclean)’ 여기고 멸시했다. 그래서 그는 모든 면에서 ‘불촉천민’(untouchable)이 되었다. 그는 스스로 무엇을 원한다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할 정도로 영혼이 망가져 있었다. “주여 원하시면...” 굉장히 겸손한 믿음의 고백이지만 이 속에는 들어 그의 찟겨지고 망가진 마음이 들어있다. 그러나 그런 마음에도 예수님을 향한 믿음은 있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기만 하시면 자신을, 그 누구도 깨끗하게 하지 못할 자신을 깨끗하게 해 주실 수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가장 심하게 찟기고 망가져 있는 영혼 속에서 가장 단호하고 분명한 믿음의 고백이 나온다. 사람들은 그가 거룩하지 못하다고 버리고 멸시했지만 바로 그 사람 안에 참된 믿음이 있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13절)

예수님은 항상 원하신다. 이 세상이, 그리고 그 안에서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전부 다 깨끗해지기를 원하신다. 죄 때문에 생겨난 일그러지고 더럽혀진 모든 형상들이 다 제 모습을 찾아 “깨끗하게 되기를 원하신다.” 본문의 나병환자는 예수님의 원하심을 정확하게 찾아내었다. 예수님은 우리 안에 있는 그 분의 형상이 원래 모습을 되찾기를 원하시며, 원래의 거룩함을 회복하기를 원하신다. 이적을 행하시면서, 또 질병을 고쳐주시면서 예수님께서 진실로 바라시는 것이 바로 이것이며,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일을 하신다. 

“문둥병이 곧 떠나니라”(13절)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에 더러움이 사라졌다. 이제 나병환자는 ‘부정한’ 사람이 아니라 ‘정한’ 사람이 되었다. 창조주의 정한 손길이 그리고 창조주의 전능한 말씀이 그를 제 자리로 돌려놓았다. 그는 “제 자리”로 돌아갔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온전히 되돌려 놓으신다.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또 네 깨끗케 됨을 인하여 모세의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14절)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의 “깨끗해짐”을 공식화 하신다. 제사장에게 가서 공식적으로 확인받으라고 하신다. 그런데, 그 절차가 율법에 의한 것이다. 원래 이 사람이 부정한 사람으로 평가된 것은 율법이라는 기준에 의해서 였다. 그래서 다시 정결케 된 사람으로서 율법이 요구하는 제사를 드리는 것은 그 율법의 기준으로 다시 깨끗함을 인정받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 누구도 그 사람의 정결함을 문제삼지 못하도록, 다시는 부정한 자로 취급받지 않도록 해 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정결케 하시는 분이시다. 깨끗해 해 주시는 분이시다. 그 분의 손길이 닿으면 그 분이 더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깨끗해 진다. 우리가 예수님의 손으로 만져지고 회복되지 않는 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정결함은 기대할 수 없다.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20절)

여기서 믿음은, 중풍병자를 메고 온 사람들의 믿음, 그리고 누워있던 그 환자의 믿음은 중풍병자에게 죄사함을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그 죄사함은 그의 질병의 회복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했던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는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의 기준으로 스스로가 하나님이심을 증명한 것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병이 낳았다고 말씀하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다른 대사를 선택하셨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 말씀으로 병자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예수님이 치료자일 뿐아니라 죄를 사하시는 분이심을 명백하게 증명하는 일이 될 수 있었다. 

“그 사람이 저희 앞에서 곧 일어나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25절)

이로써 예수님의 병고침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증명하는 증거가 되었다. 그리고 그 병자도 ‘집으로’ 돌아갔다. 중병은 중한 죄의 결과라고 믿었던 사람들 앞에서 죄에 대해 언급하시고 그 죄가 용서되었음이 선포되었고, 그 선포로 인해 병이 치료되었다면 이제 이 사람은 더 이상 죄인이 아니다. 다른 이들이나 자신이나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제 그는 몸도 영혼도 온전한 자기 삶으로 돌아간 것이다. 

두 사건 모두 중심에는 ‘죄’가 있다. 인생을 더럽히고 왜곡시키며 다른 사람들과 하나님으로 부터 사람을 분리시키는 죄가 있다. 부정함은 정결함이 되었고, 죄는 용서되었으며, 뒤틀림과 굳어짐은 풀어지고 온전해 졌다. '죄'가 모두 처리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이다. 이 일은 물론 하나님이 하셨지만 그 일의 방아쇠는 믿음이었다. 예수님은 하실 수 있고, 예수님 한 분 만으로 충분하다는 믿음... 예수님께서는 두 경우 모두에 그들 속에 있는 보이지 않는 이 믿음을 보셨고, 그 믿음이 진심으로 바라는 바를 이루어 주셨다. 죄 용서와 치료와 자유와 회복을 허락해 주셨다. 

 

하나님, 믿음을 보시는 하나님, 우리의 믿음 없음을 도와 주시고, 우리에게 믿음을 더해 주소서. 그래서 우리 안에서 믿음을 보실 때, 그 믿음을 통해 우리를 정결케 하시고 고치시고 온전케 하소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일그러지지 않은, 부정하거나 악하다고 여겨지지 않는 그런 형상으로 회복해 주소서. 항상 주님의 그 거룩하심에 잇대어 살아가게 하시고, 거듭 거듭 죄사함의 은총을 얻게 하여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