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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묵상

2012.02.28. 매일성경 묵상


     오늘 본문은 누가복음 12장 13-21절입니다. 

     “무리 중의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인간은 항상 이렇다. 아무리 심각하고 중요한 이야기가 들려와도 그저 자기 생각 뿐이다. 뭄이 아니라 영혼을 죽이는 사람을 두려워하라고, 그 분을 신뢰하며 살아가라고 말하고 있는데도 관심은 온통 유산분배 뿐이다. 이것이 일반적인 인간의 모습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이후 인간은 원칙적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만 하는 처지로 떨어졌기 때문에 이렇게 자기 중심적이고, 물질 중심적이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고 그 분이 들려주시는 더 중요하고 더 본질적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이제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 수 밖에 없다. 이제 인간이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고, 그 진지하고 본질적이며 그래서 진실로 필요한 이야기를 들으려면 여분의 노력, 자연스러운 자신의 욕망과 관심을 넘어서려는 진지한 노력이 필요하다. 성도들이라고 이런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성도의 자리에 왔으니 여전히 우리는 자기 중심적이고 물질 중심적이다.(인정되지 않는다면 자신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제목들을 살펴보라) 그래서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노력이 필요하다. 일차원적인 욕망과 관심을 넘어서서 더 진지해지고 더 본질적이 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는 철저히 물질중심적이다. 화폐가 모든 가치의 중심이 되어 있고, 경제가 가장 큰 이슈가 되어 있다. 자신의 소유의 많고 적음이 곧 자신의 가치처럼 여겨지는 경제 시스템이 바로 자본주의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이런 말씀은 철저히 자본주의적인 사고방식에 빠져서 살아가는 우리들 같은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말씀이다. 실제의 삶에서 저 원리, 저 결정적인 원리-생명과 관계된 원리이니 결정적인 원리이다-를 따라 생각하고 선택하며 살아가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 된다. 자본주의는 좋게 말해 ‘조절된 탐심’이 모든 행동과 선택, 나아가서 국가의 정책의 기본이 되는 그런 제도이다. 그래서 탐심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여겨지기도 하고, 심지어는 장려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탐심을 물리치라” 이것이 탐심에 대한 우리 주님의 단호한 명령이다. 탐심은 적당히 추구되거나 타협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연한 것도 아니다. 탐심은 물리쳐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생명이 소유의 많고 적음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뒤에 이어지는 비유를 보면 오히려 정반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소유의 많음이 생명에 대한 관심을 흐리게 한다. 부자의 마음을 영원한 생명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 것은 바로 그를 부자로 만들어 준 그 재산이다. 그 재산에 대한 그의 태도는 그가 하늘나라를 바라보지 못하고 자신을 땅에 묶어놓는 이유가 되었다.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을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나도 이런 걱정 한 번 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겠으나 세상에 이런 어리석은 근심이 어디있다는 말인가? 걱정할 것이 없어서 너무 많아 쌓아놓을 곳이 없는 것을 걱정하는가?(우리는 잘 안다. 하늘에 쌓아놓으면 된다는 것을...) 이것이 물질에 붙들려 있는 사람들의 내면이다. 많으면, 충분하면 걱정이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본질적으로 물질은 근심과는 그다지 관계가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물질의 많음은 곧 근심없음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많으면 없는 사람들의 불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깊고 큰 불안이 생겨나고, 많으면 그것을 더 많게하려는 욕망이 그 사람을 쥐고 흔들게 되어 있다. 심지어는 보관에 대한 불안과 근심도 생겨난다. 그래서 많으면 많을수록 그의 마음과 생각은 그가 소유한 것들에 붙들리게 된다.(뭐, 그렇다고 없는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없기 때문에 붙들려 있을 수도 있고, 또 나중에 많아지면 지금 많은 사람과 똑같은 근심과 두려움, 그리고 욕망에 빠져버릴 수도 있다. 나는 아니라고 누가 자신하겠는가?)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소유가 많아질 때 생겨나는 진짜 문제는 그 소유의 많음이 영혼의 만족도 책임져 준다고 믿게 된다는 것이다. 실재로 인간은 이런 착각 때문에 그렇게 욕심을 부리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많이 가지면 영혼까지 만족시킬 수 있다고 믿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만약 그렇다면 부자가 되면 부자가 될수록 더 깊은 만족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허무함은 부자들에게 더 많다. 깊은 불만족과 권태는 부자들이 더 심각하다. 또 한 가지 소유의 많음은 자꾸 거기에만 의존해서 살아가게 한다. 부자들의 착각 중의 하나는 자신들은 자기 힘으로 그리고 아주 독립적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아니다. 그런 착각은 돈이 주는 힘이 자기 자신의 힘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생겨나는 착각이다. 그러나 그 힘은 자기 힘이 아니다. 돈이 주는 힘이다. 돈이 없어지면 없어질 힘이다. 실은 부자들도 그것을 안다. 그래서 자기의 소유를 붙들어 두려고 그리 안달하는 것이고 더 많이 쌓아놓기 위해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그렇게 쉽게 넘는 것이다. 부자는 자기 힘으로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돈에 의지해서 그 돈이 주는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부자들은 돈에 얽매이기가 쉽다. 그리고 그 돈 때문에 진짜 의지해야 할 것에 의지하는 일에 실패하기도 하고 진짜 관심가져야 할 것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돈에 의지하고 돈만 생각하기가 쉽기 때문이다.(단지 부자들만이 아니다. 부자가 되려는, 부요함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마찬가지다. 그들의 심리 또한 부자와 전혀 다르지 않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영혼은 영원하다. 그래서 영혼의 문제는 항상 영원한 것과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면 영원한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과 하늘나라만이 영원하다. 그런데, 하늘나라의 영원함 조차도 독립적인 영원함이 아닌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는 영원함이다. 그래서, 영혼의 문제는 결국 단 한 분 영원하신 하나님과 관계된 문제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교훈을 준다. 우리 영혼은 결국 하나님 안에서만 안전하며, 그 분께 의지해서 살아갈 때에만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만족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하나님은 단지 의지해야할 분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 분은 그 영혼에 대한 모든 권한을 가지고 계신 분이시다. 재물을 쌓아두는 행위는 결국 그것을 의지해서 살아가려는 마음의 표현이고, 또 거기서 만족을 얻으려는 영혼의 추구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영혼의 견지에서, 영원의 견지에서 본다면 그것만큼 불안한 것도 없고 그것만큼 허무한 것도 없다. 결국 거기에는 견고함도 없고 만족함도 없다. 애초에 영혼이란 눈에 보이는 것에서는 평안도 만족함도 찾지 못하도록 지음받았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우리 영혼이란 본래 하나님 형상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는 것에 만족하시고, 거기 의존해서 평안을 누리시는 분이 아니라면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그런 것들로 부터는 만족도 평안도 얻을 수 없다. 영혼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전혀 영혼을 걱정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라만 나는 할 이야기가 없다. 그들은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니까 그것만을 붙들고 살아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 영혼이 있다고 믿으며 그 영혼을 걱정하는 사람들, 순간이 아니라 영원을 추구하는 사람들, 적어도 그 영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비유에 나오는 부자의 삶의 태도를 버려야 한다. 그것은 자신을 가장 그리고 영원히 불안하게 만드는 삶의 태도이고 하나님 앞에서 부요치 못한 것이므로 결국 자신을 영원히 가장 빈궁하게 만드는 삶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는 사람은 하나님께 부요치 못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람의 마지막은 이 비유가 말하는 것과 동일하게 될 것이다. 그는 땅에 것을 빼앗길 뿐만 아니라 영원한 안식과 영광도 빼앗기게 될 것이다. 


“하나님, 쌓아놓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탐욕에 젖은 마음을 버리게 해 주시옵소서. 나를 참으로 안전하게 하고 내 영혼을 참으로 평안하게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음을 뼈속 깊이 새기게 해 주시옵소서. 부자들, 그리고 부자를 추구하는 자들이 이 땅에서는 땅땅 거리고 잘 살지만, 그들이 땅땅 거릴 때, 나는 땅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옵소서. 때로는 부자가 될 수도 있고, 또 부자로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 그럴지라도 쌓아놓는 일만 생각하며, 거기서 안전과 만족을 추구하려는 마음과 싸우게 해 주시옵시고, 내가 가진 것이 얼마이든 그것을 하늘을 향해, 하나님을 향해 부요한 삶을 사는 재료로 삼게 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