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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오후

2012.09.02.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엡4:13-15)


엡0411to15 -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doc


엡0411to15 -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pdf



일자 : 2012-09-02

설교본문 : 에베소서 4장 13-15절



(도입부의 사설은 생략합니다.)

 

오후예배 설교를 시작하기 전에 잠깐 오전에 살폈던 내용을 복습해 보겠습니다. 오늘 오전예배의 본문이 어디였죠? 그렇습니다. 사도행전 1장 4절이었습니다. 정확하게는 1장 4절 중에서도 “사도와 함께 모이사”라는 부분만을 함께 묵상해 보았습니다. 교회는 그저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모인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모으셔서 모이게 하시고, 그들 중에 함께 거하시는 그런 모임입니다. 바로 여기에 교회의 무게가 있고, 가장 중요한 교회의 교회됨이 놓여있습니다. 교회는 결코 인간 주도적인 모임이 아닙니다. 모인 것도 그렇고, 그 모임의 중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 부르심은 그것 자체가 부담이 아니라 은혜요 영광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가 그 분의 부르심 속에 되살아나 이렇게 한 몸을 이루었을 뿐 아니라 그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 분과 함께 모여있다니 그것이 얼마나 큰 은혜요 영광입니까? 게다가 교회가 없다면 성도 개인도 없습니다. 성도 개인은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는 건강한 성도로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성도는 교회의 돌봄과 보호, 그리고 양육 속에서만 견고하게 서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 개인이나 교회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아 이렇게 모여있으며, 그 모임의 중심에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모임의 이유와 목적이요, 또 공급자와 보호자로 함께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교회가 있다는 것, 내가 그 교회에 속해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은헤인지 모릅니다. 우리 교회는, 그리고 여러분 한 분 한 분은 바로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여기까지 오신 것입니다. 

오전에는 예수님을 교회의 중심으로 모시고 그 일을 지속적으로 이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교회를 이루고 있는 성도들 모두가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정직하고 진지하게 하나님의 뜻과 마음, 생각에 관심을 가지고 찾고 또 거기 순종하려고 애써야 한다고도 말씀드구요. 이것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바로 이미 말씀드린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본다는 말과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다는 말은 같은 뜻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참된 중심점이 되시는 것과 교회의 교회됨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데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예수님과 우리들,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가 어떠한지를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당연해 집니다. 성도 여러분은 ‘교회’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말이 떠오르십니까? 몇 분만 이야기해 볼까요?... 아마도 교회를 설명하는 가장 대표적인 표현은 아마도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일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머리는 누구입니까? 네. 그렇죠.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이 땅에 교회를 두신 이유는 그 교회로 하여금 땅에 있는 예수님의 몸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몸으로 부르심을 받아 몸으로 이 땅 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몸은 머리의 지휘를 받아야 합니다. 몸이 머리를 따라가야지 머리가 몸을 따라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와 교회는 그 차이가 엄청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신 성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우리는 여전히 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로 부르심을 받는다고 해서 갑자기 그 분의 몸 다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한순간에 머리가 움직이는 대로 착착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일에는 과정이 필요하고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며 무엇보다도 성령님의 은혜와 힘주심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 13절은 그렇게 몸된 교회가 머리되신 그리스도에게 자신을 맞추어가는 과정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른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기준입니다. 그래서, 그 분이 우리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분을 닮아가야 합니다. 그 분의 뜻, 그 분의 생각, 그 분의 마음까지 헤아리고 거기에 우리를 일치시켜 가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나무랄데 없는 분이십니다. 충만한 분이십니다. 가장 성숙하신 분이시고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그 분께 도달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이 목표를 완전히 이루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의 목표만큼은 그 분이 성숙하시고, 그 분이 완전하시듯, 그 분이 충만하시듯이 나도 그리고 우리 교회도 그렇게 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하며, 계속해서 그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것이 전혀 불가능해 보여도, 우리는 주님의 명령 뒤에는, 항상 우리가 그 명령에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그 일을 도우실 것이며, 그래서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온전히 그 일을 행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며 또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힘들다고, 불가능해 보인다고 포기하면 그 뿐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의지해서 순종하면, 순종의 발걸음을 내딛으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도우십니다. 그래서 열매를 주십니다. 그 열매가 얼마나 놀랍고 은혜로운지는 그 열매를 먹어본 사람만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여러가지 은혜로운 경험들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경험들 중에서 저를 가장 만족스럽게 했고, 강하게 했으며 또 확신있게 해 주었던 것은 바로 제가 어떤 면에서든 예수님을 닮아가는데 진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입니다. 지체인 내가 조금씩 조금씩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을 때, 그 만족이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  확신이란 정말 그 무엇으로도 흔들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리스도를 닮는다는 것은 잃어버린 나의 원형을 되찾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야 하는 것은 그 분이 우리가 죄때문에 잃어버린 우리의 원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원래의 형상, 그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형상이 내 속에서 자라나고 있는 것을 볼 때, 그것보다 우리를 더 기쁘고 만족스럽게 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렇게 보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라’는 주님의 명령은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가장 은혜롭고 영광스러운 초청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저의 목회를 통해, 그리고 여러분과의 신앙생활을 통해서 저 자신에게 일어나게 하고 싶은 사건, 그리고 여러분 한 분 한 분에게 일어나게 하고 싶은 사건이 바로 이것입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데까지 이르는 일’에 있어서 한 걸음씩 진보해 가는 것 말입니다. 여러분도 저와 함께 이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 영광스러운 형상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그려보십시오. 그리고 그 소망을 가슴에 새겨넣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다른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 땅 위에서의 여러분의 신앙의 목표로 삼고 신앙의 길을 걸어가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행복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하늘에서도 가장 큰 상급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단순히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라’고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방법도 알려줍니다. 과연 그리스도를 닮아간다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일은 어떻게 가능한지 말입니다. 앞으로도 종종 말씀드리겠지만 성경이 참으로 은혜로운 점은 그냥 보기에는 명령들만 눈에 보이지만 그 주변을 가만히 살펴보면 대개 거기에는 그 명령을 통해 하나님의 복주심을 향해 갈 수 있는 지도도 함께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그 지도를 따라가면 반드시 그 복을 누릴 수 있다는 점,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은혜롭게 만드는 점입니다. 그리스도를 닮는 복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명령을 하실 때, 그 복으로 우리를 초청하실 때, 그 잔치자리로 가는 약도를 우리 손에 쥐어 주셨습니다. 그 답 또한 13절에 함께 들어 있습니다. 함께 1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우선 이 구절 속에는 교회에 대한 재미있는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13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13절이 어떤 말로 시작합니까? ‘우리’라는 복수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우리가 되어야 할 대상은 ‘온전한 사람’이라는 단수입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는 장유진이다’라는 말과도 같은 표현입니다. 문법적으로는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실수한 것일까요? 그럴리가 없죠. 오히려 여기에는 이 말 아니면 담을 수 없는 아주 심오한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서로 다른 많은 사람들로 이루어지지만 결국에는 ‘온전한 한 사람’이 되도록 부름받은 것임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교회는 우리가 한 몸이 되고, 그 몸이 머리되신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될 때, 온전한 한 사람이 되도록 계획되어 있습니다. 온전한 몸이 되어가는 우리가 온전하신 머리이신 그 분과 연합될 때, 가장 아름답고 영광스러워지도록 계획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리고 성도는 그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수준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 수록 더욱 더 아름답고 영광스러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 한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두 가지 일에서 계속 성장해 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데까지 이르기 위해서, 그 영광스러운 원래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 엄청난 복을 누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또 아는 것입니다. 그 일에서 자라가는 것입니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은 성경적으로 보면 원래 같은 말이지만, 실제로는 아는 것은 믿는 것의 기초와 내용이 됩니다. 알아야 면장한다는 말처럼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아야 그 분을 믿을 수 있습니다. 제대로 믿을 수 있고, 또 더 확고하게 믿을 수 있습니다. 

요전에 이마트에 장을 보러 갔습니다. 차를 몰고 막 입구를 들어서려고 하는데, 왠 예쁘장한 아주머니들이 카메라를 들고 설치는 깡마른 남자와 함께 마트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향해 환하게 웃으면서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왠일인가 하고 그 분들이 메고 있는 어깨띠를 보니 이렇게 적혀져 있었습니다. “행복한 신천지” 이제는 신천지가 아주 대놓고 포교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신천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개인 뿐만 아니라 교회 전체를 먹어버리기도 하고, 실제로 전라도 전주 지역에서는 신천지 때문에 지역 교회들이 초토화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보면서 이단들을 향해서 화를 내고 그들을 욕하지만, 저는 그들이 그렇게 세를 떨치게 된 원인은 바로 이 땅의 교회들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수십년씩 예수를 믿었다는 성도들이, 그리고 심지어는 목회자라고 불리는 사람들까지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그들에게 당하고 있을까요? 왜 한국 교회는 그 말도 안되는 허접한 이단에 대해서 그렇게 맥을 못추고 있을까요? 원인은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우리가 예수님과 하나님에 대해서, 그리고 그 분들을 믿는 일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대개 믿음은 감정과 의지에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사탄의 계략입니다. 감정은 뜨겁습니다. 결단은 강해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뭘 믿는지, 믿는다는 말이 진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릅니다. 그러니 말도 안되는 것이지만 그런 것을 알려준다고 하고 또 알려주기도 하는 이단들이 접근하며 뻥뻥 넘너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실제로 저와 같은 목회자들의 잘못입니다. 심지어 아는 일을 금기시하기까지 하는 무지한 목회자들의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서 용서해 달라고 말씀드리지도 못할 정도로 죄송합니다. 

저는 한국 교회 전체를 책임지지는 못합니다. 그 일은 제가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또 저에게 맡겨진 일도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목회자로서 제가 목회하는 교회만큼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두 가지 측면에서 성숙하고 견고한 교회로 세워가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고 그래서 그 일을 위해서 최고로 힘쓸 것입니다. 저는 광현교회를 최소한 이단은 결코 발붙일 수 없는, 스스로 무엇이 진리인지 아닌지는 분간할 수 있는 성숙하고 분별력있는 교회로 세워가고 싶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몇년동안 진지하게 양육을 받으면 적어도 이단에게 넘어가지 않는 그런 성도들의 교회로 세워가고 싶습니다. 이것은 저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1차적인 목표입니다. 진짜 목표는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일에 하나가 되고 또 성숙해 가서 우리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을 우리 자신의 복으로 누리게 되는 일입니다. 그 영광과 만족, 그리고 행복과 든든함을 누리는 성도들이 함께 신앙생활하는 교회로 세워가는 일이 진짜 목표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결정적인 은혜가 없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불가능한 일이지만 아뭏든 저는 여러분을 이 쪽으로 이끌어 갈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행한 두 번의 설교는 앞으로 제가 이 교회를 섬길 방향에 대한 하나의 서론입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아주 중요한 기둥이 들어 있습니다. 다음 주 부터는 주일 오전에는 마가복음을 연속설교할 것이고, 오후에는 교리공부를 할 생각이지만 우선은 기초적인 성경공부로 시작할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단단한 음식이 될 지도 모르지만, 제가 최대한 쉽게 설명할테니 여러분은 이해하려고 노력해 주시고 무엇보다도 지식이 아니라 여러분의 믿음의 내용으로 삼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분명히 여러분에게 말할 수 없는 유익과 능력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시점부터는 굉장히 재미있어지는 경험도 하게 되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수요일에는 함께 책별로 성경본문을 공부해 보려는 계획이 있는데, 일단은 설교를 하면서 좀 더 준비하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장과 성숙은 명령인 동시에 가장 큰 복입니다. 이것을 부담으로 여기시면 안됩니다. 사탄은 우리가 이 일에 부담을 느끼고 이 일에 무관심해지도록 우리를 속이며 유혹하고 있습니다. 제 자리에 머무는 일은 편할지는 몰라도 거기에는 기쁨도 없고 만족도 없으며 확신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믿는 믿음은 내용도 기둥도 없어서 흔들리기 쉽고 빼앗기기 쉬울 수 밖에 없습니다. 

교회의 교회됨, 성도의 성도됨은 얼마나 그리스도를 닮아갈 수 있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으며, 그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일에 있어서 얼마나 하나가 되어 그 분이 성숙하시고 그 분이 충만한 데까지 얼마나 나아갈 수 있느냐에 전적으로 달려 있습니다. 함께 그 분을 바라보며, 그 분을 닮아갑시다. 그것을 우리의 신앙의 목표요, 소명으로 여기십시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들을 가장 큰 하늘의 복으로 볼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와 복을 주셔서 항상 이 일에 성숙과 진보가 있는 그런 성도들, 그런 교회가 되게 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