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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2.10.01. 새벽 - 네게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요한복음 21)


요0401to10 -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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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한복음 4장 1-10절


예수님, 정확하게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세례를 받는 사람들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사람들보다 훨씬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늘나라의 입장에서는 세례 요한과 예수님 사이에 효과적인 바톤터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아주 좋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 속에서는 바리새인들이 경계하고 적대심을 갖는  것이 세례 요한에게서 예수님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예수님 그들과 부딪힐 때가 되지 않으셨기 때문에 슬그머니 갈릴리로 사역장소를 옮기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유대지역에서 갈릴리 지역으로 가려면 중간에 놓여있는 사마리아를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사마리아를 통과하여 갈릴리로 가시는 중에 수가라는 동네에 도착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먹을 것을 구하러 마을로 들어간 사이에 우물 곁에 자리를 잡고 앉으셨습니다. 시간은 정오쯤 되었습니다. 그 때 그렇게 앉아계신 예수님을 향해 여인 하나가 다가 왔습니다. 그 여인은 옷 차림새로 미루어 예수님이 사마리아 사람이 아니라 유대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은 적대관계이고, 그것도 남자와 여자는 더더욱 가까이 하면 안되었기 때문에 여인은 애써 무관심한채 하며 우물로 다가갔습니다. 여인은 거기서 아주 충격적이고 상식에 벗어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유대인이고 남자인 한 사람이 사마리아인이고 게다가 여자인 자신에게 그것도 벌건 대낮에 말을 걸어오다니 여인으로서는 기분도 나쁘고 또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물을 줄 생각은 하지 않고 이렇게 쏘아붙입니다. “보아하니 유대인인 거 같은데 왜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을 걸어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그 이유를 설명하시는 대신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이 대답이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 수는 없는 대답이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정말 이상한 이야기였습니다. 조금 전에는 물을 달라고 해놓고, 이제와서는 생수를 주겠다고 하다니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셔야 했기 때문에 사마리아를 통과하셔야만 했습니다. 물론 다른 길도 있었지만 그러면 멀리 돌아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실 예수님께서 택하신 길은 당시의 유대인들이 절대로 택하지 않으려고 했던 그런 길이었습니다. 그 길이 가장 가까운 길이고 또 편한 길인 것은 사실이지만 유대인들은 부정한 사람들, 유대교의 변절자들인 이 사람들의 땅을 피해서 유대에서 갈릴리 지역으로 가려면 먼 길을 빙 돌아서 가곤 했습니다. 그러니까 당시의 상식으로는 사마리아는 오히려 피해가야만 하는 곳이지 꼭 지나가야 하는 곳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라는 말은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굉장이 이상한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꼭 해야한다고 말할 때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하나는 다른 어떤 일을 위해서 그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미가 될 수 있고, 또 하나는 그 일 자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마리아로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얼핏보면 앞쪽의 의미같지만 실제로는 뒤쪽의 의미입니다. 유대로 가기 위해서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일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사마리아로 통과하는 일 자체가 꼭 필요했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그 뒤에서 밝혀집니다. 예수님은 수가라는 동네의 우물 가에 자리를 잡고 앉으셨습니다. 뙈약볕에 먼 길을 오시느라 목이 마르시기도 하셨겠지만, 그것은 물을 먹으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을 원하셨다면 바로 물을 길어 목을 축이시면 되는데, 그저 앉아계셨다는 것이 그것을 말해 줍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시각에, 아무도 물 길으러 오지 않는 그 시각에 물을 길으러 우물로 오는 한 여인을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우물로 다가온 여인에게 예수님은 말을 거셨습니다. 예수님과 여인 사이에 있는 우물을 매개로 해서 말을 거셨습니다. “물을 좀 달라” 그리고는 어리둥절 하는 여인에게 다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을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갈증은, 진짜 해결해야할 갈증은 예수님이 아니라 여인에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물을 좀 주시오”라고 먼저 부탁해야 할 사람은 예수님이 아니라 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네가 나에게 물을 달라고 했다면, 내가 지금 너에게 한 것처럼 나에게 물을 달라고 했다면 내가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나다나엘을 무화과 나무 밑에서 보셨던 예수님께서는 아무도 물을 길으러 나오지 않는 정오에 우물로 나오는, 아니 그럴 수 밖에 없었던 해결할 수 없는 갈증을 가진 사마리아 땅의 한 여인을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땅을 통과하셔야만 했던 이유, 남들이 다 기피하는 그 길을 굳이 걸어가야만 하셨던 이유는 바로 그렇게 보셨던 여인을 만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의 그 갈증을 완전히 그리고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 여인의 갈증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던 예수님께서는 도저히 그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하실 수가 없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갈증을 다 아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목말라하고 있는지 다 아십니다. 때로는 우리 자신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더라도 우리의 숨겨져 있는 갈증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 일에 대해서 들어보면 정말 다양하고 때로는 희안하기까지 한 이유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때로는 그저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자기 교회에 다니고 싶어서 다니기 시작하신 밋밋한 분들도 계시구요. 그러나, 그 모든 이유와 과정 속에는 우리의 갈증을 아시고 그 갈증을 풀어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찾아오셨던 주님께서 계십니다. 그 분은 가지 않아도 될 길을 일부러 선택하시고, 또 일부러 뙈약볕에 앉아 여인을 기다리셨던 것처럼 그 때 그 곳으로 우리를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진짜 갈증, 그리고 우리의 숨겨진 갈증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아시고 모른 척 하시지 않습니다. 그 갈증 때문에 우리를 찾아오셔야만 하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어디든 마다않고 찾아 가시고 미리 가셔서 우리가 그 분을 발견할 때까지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그 긍휼하심과 기다리심 덕분에 저와 여러분은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 분은 우리에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나에게 물을 좀 다오” 사실 이 부탁은 우리가 예수님께 드러야 할 질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먼저 우리에게 그렇게 물으십니다. “물을 좀 다오” 왜 이렇게 물으실까요? 그것은 우리가 자신에게 자신의 진짜 갈증, 그리고 숨겨진 갈증이 있음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 자신에게는 그런 갈증을 완전히 해결해 줄 그런 물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여러분, 주님은 왜 우리의 가장 고통스럽고 목마른 정오에 우리를 찾아오십니까?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갈증을 고백할 때, 그 갈증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오늘 우리가 새벽기도에 나와 있는 것도 그 분이 우리를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바로 우리 자신의 진짜 갈증을 고백하라고, 고백하고 나에게 채움을 받으라고 우리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 분께 구하려면 내게 그 물이 없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 분께 말라버린 우물을, 물이 바닥난 그릇을, 밑이 터져 결코 채울 수 없는 웅덩이를 보여드려야 합니다. 그것은 굉장히 아픈 일입니다. 부끄러운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나의 갈증이 해결되기를 원한다면 바로 나의 목마름을 고백하며 나의 무능함과 가난함을 모두다 내보여 드려야 합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을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이것이 진짜 주님께서 하고 싶으신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진짜로 해 주고 싶어하시는 일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시는 것은 그 분에게 우리가 필요해서가 아닙니다. 반대로 우리에게 그 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그 분은 우리를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그 분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인은 몰라서 구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몰라서 예수님께 구하지 못했습니다. 물이 필요한 것은 자신이고 그 갈증을 해결해 주실 분이 지금 자기 앞에 계신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잘 압니다. 우리를 찾아오시고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 어떤 분이신지 너무나 잘 압니다. 그 분만이 우리의 깊이 숨겨진 해결할 길 없는 갈증을 해결해 주실 분이시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압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요? 그 분께 달라고 해야 합니다. 그 분께 물을 달라고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우리는 우리의 목마름을 위해서 물을 구합니다. 우물물을 구하고 샘물을 구합니다. 한 그릇 목 축일 물을 구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생수를 주십니다. 생수는 흐르는 물을 말합니다. 강물을 말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보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하게 주십니다. 한 그릇 물을 구해도 그 분께 구하기만 한다면 그 분은 우리에게 강물을 통째로 허락하십니다. 그것이 우리를 향한 주님의 약속입니다. 우리에게 이 강물이 있다면 이 흘러넘치는 풍성한 강물이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우물을 찾으려고 대낮의 뙈약볓을 해메지 않아도 됩니다. 더 이상 물이 있는 곳을 찾으려고 푸석 푸석한 땅을 여기 저기 파댈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구해야 합니다. 구하고 또 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해결할 수 없는 갈증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님께 물 좀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은 우리에게 강물을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더 이상 목마르지 않게 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은 내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갈증이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도저히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숨겨진 갈증이 없는지 여러분의 마음과 영혼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있다면 주님께 내놓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갈증이 있다고, 이만큼 목마르다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께 물을 달라고 매달리십시오. 갈증을 해결해 달라고 부탁드리십시오. 그러면 그 분은 우리 속에 강물이 흐르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 강물 속에 우리가 잠기게 하는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그 기도를 듣고 싶으셔서 그리고 그 기도에 응답하고 싶으셔서 우리를 여기로 부르신 줄로 믿습니다. 날마나 날마다 주님의 온전히 채우심을 경험하며 사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