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0718to29 -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pdf
본문 : 사무엘하 7장 18-29절
‘다윗’하면 떠오르는 말은 바로 ‘위대한 왕’입니다. 신앙적인 면에서나 혹은 정치적인 업적 면에서나 한 나라를 다윗처럼 올바로 세웠던 왕은 이스라엘 역사상 드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왕이 된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었습니다. 그가 선택되어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았을 때, 그는 여덟아들 중에서 막내아들로 정말 존재감이 없는 무지랭이였습니다. 그랬던 그가 기름부음을 받은 후, 홀홀단신으로 왕위를 내놓지 않으려는 사울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았다는 것은 정말 은혜 중의 은혜였고 기적 중의 기적이었습니다. 그 모든 과정 중에서 살아남았고 또 왕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신 덕분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다윗에게 더 엄청난 약속을 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해서 한 집을 세우시고 다윗 왕에게 주신 복을 그가 죽은 후에도 유지되도록 해 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약속 속에는 다윗의 아들이 성전을 짓게 될 것이라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지만, 가장 중요한 약속은 하나님께서 그 어떤 이유로건 다윗가문에게서 왕권을 거두지 않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이 약속은 아무런 조건이 붙지 않는 무조건적인 약속이었습니다. 이 약속이 보장하는 복을 받기 위해서 다윗이 해야할 일이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일방적으로 사랑하시고 또 일방적으로 복을 주셨습니다. 양치기 소년을 왕으로 만들어 주셨고, 또 왕이 된 이후에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약속, 그러니까 다윗의 왕조가 영원할 것이라는 약속을 그냥 던져 주듯이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다윗은 하나님과의 아주 특별한 관계를 누렸던 것입니다. 이것은 특권치고도 아주 특별한 특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 기도가 드려졌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기도는 하나님과 그렇게 특별한 관계를 누렸던 다윗이 그 관계 속에서 하나님께 드린 약속에 대한 응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기도가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우리도 영적으로 보면 다윗의 삶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이라는 면에서 보면 우리들 또한 다윗과 똑같은 과정을 겪었습니다. 다윗이 갑자기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았던 것처럼 우리들 또한 우리가 예측하지 못하던 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우리의 삶 또한 여러가지 면에서 다윗의 삶을 닮아있습니다. 다윗은 왕위에 오르기까지 정말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정말 변함없는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하심을 경험했습니다. 비록 우리는 지금 왕이 되지는 않았지만, 우리들 중 대부분은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한 한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말 스토리가 확실한 삶을 살아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비구비마다 정말 굵직굵직하고 신실하신 은혜, 때로는 섬세하고 정확한 은혜를 받으며 살아왔을 것입니다. 다윗이 자신의 목숨을 부지했던 것처럼 우리가 신앙을 지켜온 것은 바로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었습니다. 또 다윗에게 영원한 왕권이 약속되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영원한 구원, 취소되지 않는 구원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누렸던 것처럼 우리들 또한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 속에서 특별한 은혜를 누리며 살아왔고 또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부부지간의 대화는 그 부부 사이에만 의미가 있습니다. 대화를 이루고 있는 언어들도 그렇고, 그 대화의 내용도 그렇습니다. 그 대화는 그 관계를 떠나면 다른 이들은 알아들을 수도 없고, 알아듣는다고 해도 별 의미도 없습니다. 그것은 부부란 바로 그 관계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관계가 특별한 만큼 특별한 언어와 특별한 대화가 요구되고 또 그런 대화만이 두 사람 사이에는 의미를 갖게 됩니다. 하나님과 우리들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로 인해서 맺어지고 하나님의 영을 통해서 지속되어지는 관계입니다. 또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의 약속 위에 세워진 관계이구요. 그래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도 특별한 언어로 이루어진 특별한 대화가 필요합니다. 이미 주님은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 말씀하실 것을 말씀하셨고, 우리의 삶을 통해서 그 말씀하신 것을 재확인시켜주셨습니다. 이제 우리 쪽에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만 알아들을 수 있고, 또 의미있는 그런 응답을 드릴 차례가 되었습니다. 기도란 바로 우리 편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특별한 이야기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특별히 사랑해 주셨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에게 특별하고 영원한 은혜를 약속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 편에서 응답으로 드리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점에서 다윗의 기도는 우리를 위한 하나의 모범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윗을 따라 기도드리게 될 때,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또한 더 온전한 기도가 될 것이고, 또 가장 적절한 기도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우리는 다윗의 기도가 온통 하나님을 향한 찬양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을 발견합니다. 다윗은 이 기도 속에서 ‘주 여호와여! 여호와 하나님이여!’라고 여덟 번이나 하나님을 부릅니다. 이 부름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입니다. 여호와만이 하나님이시고, 여호와만이 주님이심을 감격하며 외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 뒤에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고백합니다. 그가 ‘주 여호와여!’라고 부르는 것은 뜻없는 공허한 외침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 찬양은 과거에 베풀어 주셨던 은혜와 지금 주시는 신실한 약속 때문에 올려드릴 수 밖에 없었던 하나님을 향한 찬사였습니다. 물론 지금 다윗이 드리는 기도가 감사의 기도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다윗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기도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하는 방향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기도 또한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찬송가와 복음성가만 찬양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도 찬양으로 가득 찰 수 있습니다. 찬양을 부를 때처럼 기도를 드릴 때도 우리는 얼마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근본적으로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하는 것이 찬양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기도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아는 사람들의 특별한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급한 간구의 기도를 드릴 때에라도 너무 급하게 기도로 들어가기 보다는 먼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묵상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선하고 위대하신 분이신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고 그런 믿음과 감사 속에서 기도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찬양 속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향하여 이렇게 고백합니다. 22절입니다. “그런즉 주 여호와여 주는 위대하시니 이는 우리 귀로 들은 대로는 주와 같은 이가 없고 주 외에는 신이 없음이니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최고의 찬양이기도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든든한 신앙의 고백이기도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렇게 찬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들을 찾다가 ‘주 여호와여! 주님과 같은 분은 없습니다! 주님만이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런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누렸던 이스라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23-24절입니다. “땅의 어느 한 나라가 주의 백성 이스라엘과 같으리이까 하나님이 가서 구속하사 자기 백성으로 삼아 주의 명성을 내시며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주의 땅을 위하여 두려운 일을 애굽과 많은 나라들과 그의 신들에게서 구속하신 백성 앞에서 행하셨사오며 주께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세우사 영원히 즐거운 백성으로 삼으셨사오니 여호와여 주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22절부터 24절까지는 두 가지 특별한 것이 나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고 또 하나는 이스라엘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같은 신이 없고, 이스라엘같은 나라도 없습니다. 다윗이 감격하는 것이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이 특별한 나라라는 것에 감사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특별한 것은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은 관계와 그 관계 안에서 베풀어 주신 독특하고 놀라운 은혜들... 이것이 이스라엘을 특별하게 만들었고, 지금 다윗은 그 사실에 감격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특별합니까? 특별하지 않습니까? 특별합니다. 그렇다면 왜 특별합니까? 우리 스스로가 귀하고, 우리 스스로가 유일하기 때문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들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사람이 생각만으로 특별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특별함은 다름에서 나옵니다. 다른 이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졌을 때, 특별함이 생겨납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나에게만 있는 배타적인 무엇이 있어야 특별합니다. 만약 믿지 않는 사람들의 주장처럼 모든 사람들이 세포 하나에서 우연히 생겨난 존재들이라면, 그렇게 무의미한 존재들이라면 그 누가 다른 사람과 나는 다르다, 그래서 특별하다고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봤자, 무의미한 먼지와 목적없이 꿈틀대는 세포 하나에 불과한데 말입니다. 세포와 세포가 얼마나 차별될 수 있고, 먼지가 다른 먼지보다 얼마나 특별할 수 있겠습니까? 그 세포가 다른 세포보다 열배나 크다고 다른 세포보다 특별할까요? 그 먼지가 금으로 만들어진 먼지라고 엄청난 가치를 가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이유만으로는 특별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생각할 때, 그런 이유로 우리를 특별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 또한 근거없는 것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특별할까요? 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함을 가지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고, 그 분과의 특별한 관계 속에 있으며, 그래서 하나님의 특별한 대우와 사랑을 받고 있고, 또 특별한 약속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 배타적인 이야기로 들리실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우리만,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만이 스스로에 대해서 특별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전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저 밖에 걸어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특별합니다. 너무 특별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이 좀 많아서 별로 기분이 좋지는 않기는 합니다만 우리들은 특별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계시고,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특별하고 영원한 약속을 주셨고, 특별한 은혜와 사랑으로 지금도 함께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저기 제 아내가 있습니다만 제 아내는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생긴 것도 평범하고 내세울 것도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저에게만큼은 특별합니다. 왜요? 저와 부부이니까요. 그런 특별한 관계와 언약 속에 있으니까요.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이런데, 어찌보면 그렇다고 서로를 위해서 뭐 별로 해 줄 것 없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이런 특별한 의미를 갖는데,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분과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들은 얼마나 특별한 사람들입니까? 이제 누가 물으면 “나 특별한 사람이야!”라고 당당하게 말하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이야 비웃든, 이상한 사람으로 보든 그렇게 말하십시오. 그게 사실이니까요. 저는 절대로 사실 아닌 것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이 자리에서는 말입니다.
다윗은 그래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나님을 높이며 그 분께 감탄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요? 자기같은 무지랭이를 왕으로 만들어 주시고 또 영원한 은혜의 약속을 주셨으며, 자기와 꼭 닮은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특별대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요, 자기가 아무리 떵떵거리고 잘난 척하고 살아도 그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도 없고, 하나님의 특별한 약속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보시기에는 전혀 특별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저와 여러분에게는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가 있고, 은혜가 있으며 또 영원하고 특별한 깨지지 않는 언약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특별한 것입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는 특별한 과거가 있고 또 특별한 미래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특별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믿음은 믿는 겁니다. 생각하고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렇다고 하면 그렇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현실이 되구요. 이해가 되기 시작합니다. 아, 진짜구나! 아, 그래서 그런거구나!하고 이해가 되기 시작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더러 “너는 특별해! 나에게 특별하니까 특별해!”라고 하시면 우리는 ‘아멘!’하면 됩니다. 그저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자꾸 먼저 느끼고 확인하려고 하니까 믿음이 현실이 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히 여겨주심이 우리의 특별함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특별한 은혜들을 기억하십시오. 그렇게 믿으려고 해도 믿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얻게 된 것을 생각하시고, 그 이후에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특별대우 해주셨는지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믿음을 회복하시고 더 단단하게 해 가십시오. 그래서 그것이 이 세상에는 하나님 같은 분이 없고, 이 세상에는 나 같은 사람이 없다고 찬양할 수 있는 이유가 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의 기도가 하나님을 향한 찬양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그렇게 해 놓고 꼭 기도할 내용은 놓치지 않습니다. 25절부터의 내용이 그 내용들인데요. 내용인 즉, 약속하셨으니까 책임지시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저를 위해서 집을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쟎아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구할 용기가 났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시죠?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참되시죠? 이 좋은 것들을 말씀하시고 약속하셨으니까 이제 지켜 주세요. 저와 저의 집에 영원히 복을 내려 주세요.”
물론 그것이 진심과 감사에서 나온 믿음의 고백이기는 했지만 다윗은 어찌보면 하나님을 잔뜩 기분좋게 해 드리고는 하나님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는 것입니다. 아빠의 어깨를 주무르고는 손을 쭉 뻗어 “자, 약속한 대로 500원!”이라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어린아이처럼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마다하실까요? 그런 적 없다고 딱 잡아 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일단은 기쁘셔서 그리고 약속하셨던 것을 믿는 마음으로 달라고 하는 것이니까 절대로 마다하지 않으십니다. 응답받는 기도의 비결이 다시 한 번 나오죠? 약속을 붙들고 믿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내밀면서 압박하면 하나님도 거절하지 못하십니다. 기쁘고 즐겁게 응답해 주십니다.
7장의 기도가 끝나고 8장으로 넘어가면 “그 후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항복을 받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메덱암마를 빼앗으니라”라고 시작된 승전의 기록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14절에 가서는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느니라”라고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셨습니까? 어기셨습니까? 지키셨습니다. 다윗의 기도가 응답되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응답되었습니다.
다윗의 기도는 하나님께 특별한 사람이 특별한 하나님께 드리는 특별한 기도였습니다. 그는 그 특별한 하나님을 찬양했고, 그 특별한 하나님께 하나님의 특별한 약속을 붙들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특별한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다윗을 위해서 특별하게 일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에는 반드시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특별한 관계에는 기도라는 특별한 언어가 필요합니다. 그 분을 높이고 자랑하는 언어, 기억하고 기뻐하는 언어가 필요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그 분께는 우리가 아들을 내어주실 정도로 특별한 존재들입니다. 믿으십니까? 이제 다윗을 따라 특별한 기도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한 하나님을 찬양하시고, 특별한 은혜를 찬양하시며, 특별한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들어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특별대우해 주실 것이고, 또 특별하게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다윗의 기도를 닮은 특별한 기도가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을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