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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2.12.24. 새벽예배 - 사가랴의 노래(대강절 마지막 날)


눅0167to79-사가랴의 노래.pdf


20121224D (#1).mp3.zip


    

    

    본문 : 누가복음 1장 67-79절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의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 이것이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노래를 지은 사가랴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에 대한 성경의 설명입니다. 여러분, 나무랄데 없이 의롭고 경건한 제사장 부부라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복받은 삶을 살아야죠. 아들 딸 많이 낳고 남부럽지 않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이 그러한 삶의 결과로 이야기하는 것이 불임이었습니다. 실제로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거의 저주에 가깝게 여겨지는 일이었고, 미래가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그것도 제사장 집안에 그런 일이 있다면 그것은 그의 뒤를 이을 그 반열의 제사장이 없어진다는 의미였기 때문에 굉장히 힘들고 어떻게 보면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가랴는 그런 자신의 가정에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는 기쁜 소식을 듣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복음 중의 복음이었죠. 실제로 두 사람의 가정은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예언적인 의미가 있었습니다. 마치 구약 선지자들의 삶과 가정이 당시나 혹은 미래에 닥쳐올 이스라엘의 현실을 상징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불임상태였습니다. 바벨론 포로에게 돌아온 후, 벌써 500년 넘게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 기다리는 메시야는 올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선민이라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할례없는 이방인들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그러느라고 자신들의 정체성도 희미해져 가고, 민족 내부에서는 사람들이 이익과 입장에 따라서 사분오열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메시야의 오심을 준비할 엘리야가 온다는 소식, 바로 자신의 아들이 그 엘리야가 될 것이라는 소식은 정말 복음 중의 복음이었습니다. 두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 아니 자신의 힘으로는 죄의 문제를 전혀 해결할 길이 없는 인류, 그래서 영적으로 볼 때 불임상태에 있는 소망 없는 인류에게 가장 복된 소식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이 본문은 사가랴가 세례 요한이 태어났을 때 부른 노래입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의 수태를 통보받은 후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던 사가랴가 다시 말을 하게 되었을 때, 처음으로 했던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노래만큼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에 대해, 그 은혜에 대해서 잘 말해주는 이야기도 없을 것입니다. 


성탄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를 알려주는 사건입니다. 또 우리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 알려주는 가장 좋은 사건이기도 합니다. 사가랴의 노래가 그러한 성탄을 찬양하는 노래라는 점에서 성탄 하루 전인 오늘 이 새벽에 이 노래를 통해 예수님의 나심에 대해서 함께 묵상하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참 은혜로운 기회가 될 것입니다. 


첫번째, 성탄을 통해서 우리가 확실히 깨닫게 되는 것은 첫번째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항상 우리를 돌아보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6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돌아보사 속량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사가랴가 요한의 태어남을 통해 노래했던 첫번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500년의 침묵기간 동안 하나님은 결코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세월동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보살펴 오셨습니다. 단 한 순간도 이스라엘을 떠나지 않으시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가지신 관심은 얼마나 대단할까요? 히브리서 4장 15절에 보면 “우리에게 있는 대 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은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라고 예수님에 대해서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하나님의 백성과 동행하시고 함께 하십니다. 성육신의 사건은 바로 그러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가장 명확하게 증거된 사건이었습니다. 성육신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되셔서 우리의 아픔과 절망,그리고 한계를 그 몸으로 겪으신 그런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때로 우리는 힘들고 어려울 때면, 하나님께서는 나와 함께 하지 않으신다거나 혹은 하나님은 나의 아픔을 모르신다고,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나를 돌아보십니다. 그리고 나를 건져주십니다. 그러실 수 밖에 없는 것이 이미 주님이 우리처럼 되셔서 그 일을  겪으셨고, 그래서 그 일이 우리에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심이 의심되시는 순간이 찾아오시거든 성탄을 생각하십시오. 성육신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되신 사건입니다. 우리와 함께 되기 위하여 그 높은 보좌를 버리고 오신 예수님께서 나를 모른채 하시겠습니까? 나를 혼자 내버려 두시겠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나를 돌아보시며, 예수님께서는 나를 위해서 중보하고 계십니다. 나의 연약함을 모두 경험하여 아시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성탄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구원하시기를 얼마나 원하시는 지를 알려줍니다. 성탄은 하나님의 그러한 마음의 크기를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나심은 바로 죄악으로부터의 승리의 서곡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구원은 이루어지고 말았습니다. 아들의 나심은 우리들의 구원을 위해서 아들이 필요하다면, 그 아들조차 기꺼이 내어놓으실만큼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원하고 또 원하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만큼 저와 여러분의 구원을 바라시고 또 바라셨고 그래서 그렇게 이루셨습니다. 우리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시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커다란 우리 하나님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일을 아브라함과 더불어 맹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맹세를 아들을 내어주심으로써 지키셨습니다. 사람들의 범죄와 실패를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긍휼하심, 그리고 변함없는 신실하심으로 덮으시고 약속대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열심이 우리를 구원한 것입니다. 


세번째, 성탄은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만 섬기기를 얼마나 원하시는 지를 알려주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7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시셨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최종적인 목적을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 그 값비싼 대가를 치루시고 우리를 죄악가운데서 속량하신 것은 바로 우리가 평생 주님을 성결과 두려움 없이 섬기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두려움이 동기가 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벌을 받을까봐 징계가 두려워서 마지 못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악을 말끔히 씻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던 죄라는 장벽을 제거해 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온전한 백성으로 회복시켜주셨고, 성령을 부어 주셔서 이제는 기쁨과 능력을 가지고 죄와 싸워 이기며 성결하고 의롭게, 하나님 앞에서 흠 없고 거리낌 없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 일을 위해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셨고, 그렇게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완전히 성취하셨습니다. 그렇게 참된 평강의 길이 사람들 앞에 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언제나 함께 하십니다. 함께 하시며 우리를 돌아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무엇보다도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며, 구원받는 백성들 중에 속하기를 소원하시고 또 소원하십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서 성결하고 의롭게 살기를 원하시고 또 원하십니다. 바로 이 모든 은혜와 소망이 성탄 안에, 성자 하나님의 임마누엘하심 안에 다 녹아져 담겨 있습니다. 


우리도 오늘, 사가랴를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허락하심을 함께 찬양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성결하고 의로운 삶으로 더 높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러한 우리의 노래와 삶을 통해 하나님께 참으로 영광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