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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2.12.07. 새벽예배 -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대강절 다섯째날)

살전0301to13 -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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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2012년 12월 7일 금요일

본문 : 데살로니가전서 3장 1-13절



우리는 지금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탄생과 마지막 다시 오는 날 사이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보내고 있는 이 대강절은 이 두 번의 강림을 모두 기다리며 소망하는 절기인데, 첫째로 우리가 이미 이루어진 예수님의 탄생을 다시 기다린다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그 분의 탄생이 가지는 의미와 은혜가 우리 속에 다시 풍성하고 생생하게 되어지는 것을 기대하며 성탄절을 기다리는 것이고 둘째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은 말 그대로 주님께서 영광 중에 심판의 주님으로, 온 세상의 주인으로 오시는 날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두 가지 기다림과 소망은 우리 모두의 신앙을 지탱해 주는 기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도의 삶이란 이미 주신 은혜를 항상 더 새롭고 충만하게 누리며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확신과 소망을 안고 끝까지 믿음을 지켜나가는 삶이라고 요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연락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갔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안타깝게 걱정하게 됩니다. 이것은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죠. 그저 내가 그 사람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데도 그의 상황에 대해서 전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생겨나는 지극히 당연한 반응입니다. 그러다가 그 사람에 대한 좋은 소식이 들려오면 그제서야 우리는 너무 기뻐하며 안심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서 다시 소식이 들려올 때까지 다시 안타까운 걱정에 빠지게 되고, 이런 반복은 그 사람이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올 때까지 계속됩니다. 


어제 살펴본 대로 데살로니가 교회는 참 좋은 교회였습니다. 환란과 핍박, 심한 가난 속에서도 그저 간신히 믿음을 지키는 정도가 아니라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라는 복음을 믿는 신앙의 세가지 기둥을 굳건하게 붙잡고 있었고 그 안에서 계속 성숙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지역의 다른 교회들의 모범이 되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너무 너무 기뻐했습니다. 이렇게 복음의 능력을 확인하는 것은 사도 바울에게 복음을 다시 듣는 감격과 마찬가지의 기쁨을 주었으니까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칭찬하고 또 칭찬했으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은 고난과 가난이라는 도전을 잘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그 유익도 누렸습니다. 그렇지만 한 번 잘 했다고 다음 번에도 잘 하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런 어려움은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텐데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이 그 모든 어려움과 시험들을 다 이겨낼 수 있을까하는 것은 그 누구도 장담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애가 닳아있는 것, 그렇게 데살로니가로 가기를 소원했던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마음은 그들을 향한 깊은 사랑 때문에, 그리고 사람의 연약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 아버지같은 마음이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고, 게다가 당장 가 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던 바울은 할 수 있는 것이 기도 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기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여기 사용된 ‘심히 간구했다’는 말은 뜻 그대로를 살리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얼나나 애가 닳았으면, 얼마나 걱정이 되었으면 이렇게 기도했을까요? 바울은 빨리 그들에게로 가는 길이 열리도록, 그리고 가서 이 모든 어려움들을 계속 이겨내기 위해 필요한, 아직은 부족한 것들을 채워줄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래서 앞으로도 잘 할 수 있게 도울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만큼 기도했던 것입니다. 


11절부터 13절까지는 사도 바울이 그렇게 기도하고 또 기도했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기도했던 기도의 내용입니다. 바울이 기도의 내용을 밝히는 이유는 내가 너희를 위해서 이렇게  기도하는 것처럼 너희들도 그렇게 기도하라고 알려주기 위해서 입니다. 이 기도가 너희를 계속 지켜줄 것이라고 가르쳐 주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기도는 비단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시대와 환경을 막론하고 믿음을 무너뜨리려고 도전해 오는 사탄의 공격 속에서 믿음을 굳건히 지키고, 또 더욱 성숙시켜 가야만 하는 모든 성도들이 스스로를 위해서 드려야 하는 기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기도를 묵상하고 이 기도를 따라 기도드리며 살아갈 때, 우리들 또한 이 기도의 능력과 유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첫째로 사도 바울의 기도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를 바라보며 드리는 기도였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삼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드릴 때마다 이 엄청난 은혜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고난과 가난이 우리 삶을 흔들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게 되기가 쉬운데, 그럴 때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그 분을 통해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며 선함이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 사랑과 선하심으로 우리를 위해서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실제로 믿음의 시험이란 다른 시험이 아닙니다. 모든 믿음의 시험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온전하심을 의심하게 만드는 시험입니다. 그래서 이 시험을 이겨내려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나에게 베푸신 그 선하고 풍성한 사랑을 기억하고 그 기억을 미래를 위한 믿음의 재료로 삼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두 분 다 ‘우리’를 위하시는 선하시고 온전하신 분이심을 잊으면 안됩니다. 그것이 승리하는 믿음, 승리하는 기도의 출발점입니다. 


둘째로 바울의 기도는 데살로니가 성도들 속에 있어야 하는 ‘사랑’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사랑이 성도들 사이의 관계를 넘어서서 믿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서도 흘러넘치게 되기를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이 기도는 참으로 의미가 있는 기도입니다. 우선은 이 기도는 단순히 인간적인 사랑을 위한 기도가 아닙니다. 이 기도가 구하는 사랑은 성령님께서 믿는 사람들의 마음에 부어주시는 사랑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기도는 실제로는 성령님께서 성도들의 마음 속에 직접 역사하시기를 기도드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의 사랑이 풍성해 져서 성도들 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향하기를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모든 사람’ 속에는 그야 말로 모든 사람이 포함됩니다. 거기에는 심지어는 지금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핍박하고 있는 그 악한 사람들도 포함됩니다.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성도들의 마음을 굳건하게 하는 것, 그 생각과 감정을 지켜주고 더 견고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심한 고난 중에도 계속해서 성도들을 사랑하게 할 수 있는 사랑, 심지어는 자신에게 핍박을 가하는 사람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랑, 그렇게 성령님께서 부어주시는 기이한 사랑만이 마음을 굳건하게 해 줄 수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 그런 사랑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마음에 부어지기를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난과 핍박 가운데서 성도들이 함께 나누는 사랑의 교제는 우리의 믿음을 지켜주는 든든한 방패가 되어 줍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자신들을 힘들게 하는 사랑으로까지 확장되지 못하면 그 방패는 쉽게 깨집니다. 핍박하는 자를 향한 미움과 분노가 그 방패를 부서뜨리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심각하게 미워해 본 성도들은 잘 압니다. 그 미움이 우리의 믿음을 얼마나 쉽게 깨뜨리는지 말입니다. 그런 미움은 믿음의 성장을 가로막는 것은 물론이고 있는 있는 신앙마저도 갉아먹어 버리고, 뒤틀리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어려움 속에 있을수록 우리를 강건하게 붙들어 주고 보호해 줄 수 있는 성령님께서 주시는 기이한 사랑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입니다.


세번째로 바울의 기도는 당장의 어려움의 극복보다는 성도들이 예수님을 다시 만나게 되는 그 순간을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바울의 마지막 기도였고 또 가장 중요한 기도이기도 합니다. 물론 지금 당장 당하는 고난이나 가난의 문제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런 문제들이 중요한 진짜 이유는 그것이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데 심각한 장애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런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게 되면 우리가 마지막까지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 앞에 영광스럽게 설 수가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문제들을 이겨내는 일이 중요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진짜로 중요한 순간은 우리가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서게 되는 바로 그 날입니다. 현재의 우리 삶이 중요한 진짜 이유는 현재의 삶은 그 마지막 순간을 영광스럽게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시간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잘 해야하지만 앞으로도 잘 해나가야 합니다. 지금까지도 믿음을 잘 지켰지만 앞으로는 더 잘 지켜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영원한 영광을 위한 과거의 기회는 다 지나가 버렸고,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미래는 여전이 우리를 위한 기회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는 더 잘해야하고, 끝까지 잘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가 그토록 소망하는 우리 주님의 다시 오심도 우리에게는 그리 영광스러운 것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을 위해서 드렸던 이 기도는 오늘날 주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그리고 항상 필요한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소망하고 또 소망해야 합니다. “마라나타 주 예수 오시옵소서”라고 소리 높여 외쳐야 합니다. 그러나, 그 날이 영광스러운 날이 되는 것은 이런 기다림과 외침이 아닙니다. 우리가 끝까지 잘 지켜낸 신앙, 우리가 끝까지 순결하고 거룩하게 지켜내려고 애썼던 우리의 삶이 그 날을 복되고 영광스럽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바울의 모범을 따라 우리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의 선하시고 온전하심을 믿는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속 사람이 성령님께서 부어주시는 그 기이한 사랑으로 강건하게 지켜지며,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우리의 삶과 영혼을 거룩하고 흠이없게 지켜가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기도 속에서, 이런 기도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달려가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주님의 마지막 강림을 가장 기쁘고 영광스럽게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기도의 사람들이 되어서 주님 다시오시는 그 날까지 믿음의 순결함과 삶의 거룩함을 잘 지켜내는 든든한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의 기도제목입니다. 오늘은 바울의 기도를 따라 기도드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우리 주님이시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심을 항상 신뢰하게 하시고, 우리 안에 우리르 힘들게 하는 사람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성령님의 사랑이 부어지게 하시고, 우리가 그 사랑 안에서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거룩한 기다림을 계속하게 해 달라고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