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2013년 1월 29일 화요일
본문 : 마태복음 6장 9절
지난 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우리의 삶을 바꾸고 신앙을 바꾸는 일은 굉장히 힘듭니다. 삶에도 신앙에도 가던 방향으로 계속 가려는 관성이 있어서 이것을 거스르고 깨뜨리기가 굉장히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직접 삶을 바꾸고 직접 신앙의 스타일을 바꾸는 일은 여간해서는 성공하기가 힘듭니다. 그럴 때는 기도를 바꾸면 됩니다. 억지로라도 기도를 바꾸면 됩니다. 그러면 생각이 바뀌고, 마음이 바뀌고 삶이 바뀌고 신앙도 바뀝니다. 그러한 새로워짐을 진실로 소망하면서 기도드리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내 힘으로 바꿀 수 없었던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제 자리로 돌려놓으십니다.
그렇다면 어떤 기도가 우리의 삶을 바꾸어 놓을까요? 우리의 삶을 제자리로 돌려보내기에 가장 좋은 기도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주기도문이라고 부르는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쳐 주셨을까요? 성경을 보면 그것을 제자들이 원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바른 기도는 배워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셨기 때문에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신 후에 기도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아무런 기도나 우리의 삶을 온전하게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바른 기도만이 우리의 삶을 바르게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주님은 손수 제자들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이 기도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오늘부터는 이 기도,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 바른 믿음의 고백이며, 또 우리의 삶의 방향을 바르게 변화시키는 기도에 대해서 함께 공부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주님은 먼저 이런 말로 기도를 시작하십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주님이 이 말로부터 기도를 시작하라고 하신 이유는 기도를 드릴 때,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누구신지를 분명히 알고 믿고서 그 분께 기도드리게 하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먼저 주님은 하나님을 일컬어 ‘하늘에 계신 분’이라고 알려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늘에 계신 분이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신다라는 말을 듣고 또 사용하실 때마다 하나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품게 되십니까? 혹시 저 멀리 영광 중에, 우리와는 멀리 떨어져 계신 초월적인 분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십니까? 물론 이 말 속에는 그런 뜻도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그렇게 높고 영광스러우시며, 전지전능하신 완전한 분이시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아주 중요한 의미도 숨어 있습니다. 우리 말이나 영어로는 ‘하늘’이 그냥 ‘하늘’입니다. 그런데, 헬라어 성경을 보면 이 부분이 복수, 그러니까 ‘하늘들’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은 하늘들에 계신 분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이 우리가 소위 입신이라고 부르는 경험을 하면서 자신이 삼층천에 다녀왔다고 말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삼층천... 이것은 유대인들이 이 세상을 생각하는 방식이었습니다. 1층에는 우리가 삽니다. 2층은 우주구요. 삼층은 하나님께서 계신 초월적인 영역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세 하늘을 모두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짧은 말, “하늘들에 계신 하나님”이라는 말 속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상관없는 저 높고 높은 하늘에 계실 뿐만 아니라, 우주를 다스리시는 분이시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의미가 숨어 있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다스림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부분이 없다는 뜻이 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우리 하나님은 우리와 상관없는 저 높디 높은 하늘에 머물러 계시기만 하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안 계시는 곳이 없고, 손길 닿지 않는 곳이 없으며, 다스리지 않는 곳이 없는 그런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관심하실까, 또 그 분의 손길과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있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늘나라와 온 우주, 그리고 내가 지금 머물며 살아가는 모든 구석구석까지 놓치지 않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얼마나 든든합니까? 얼마나 평안해 집니까? 우리가 기도드리기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하고 묵상하며 또 믿어야 할 것은 우리 하나님이 이런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모든 하늘들을 채우고 계시는 하나님, 사각지대가 없으신 하나님, 무관심한 부분이 없으신 하나님, 그러면서도 온 우주를 손에 쥐고 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묵상하며 그 믿음으로 기도를 시작해야만 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예수님께서 이런 하나님께 대해서 두 번째로 말씀해 주시는 것은 바로 이런 하나님이 다름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자녀는 일반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아주 아주 특별한 관계입니다. 도저히 모른 척 할 수가 없는, 돌봐주지 않을래야 돌봐주지 않을 수 없는 그런 관계가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관계가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사람들은 자꾸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이 관계를 생각하려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버지라고 해도 별로 감동이 없고 오히려 화를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경험이 그러니까요. 그렇지만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은 이와는 전혀 다릅니다. 그 분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되 우리의 완전한 아버지이십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전지하시고 전능하시며, 우리를 완전히 사랑하시는 선하신 아버지이십니다.
저는 실제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이 네 가지만 믿으면 정말 하나님을 다 믿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지하시기만 해도 안됩니다. 전능하시기만 해도 안됩니다. 그런 하나님이 우리를 완전히 사랑하셔야 하며, 지극히 선하셔야 하며, 우리의 아버지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그 분을 완전히 정말 마음 푹 놓고 평안하게 신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그 모든 놀라움을 모두 지닌 동시에 우리를 사랑하지 않고 돌보시지 않으실 수 없는 우리의 지극히 선하신 아버지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때, 그 부름 속에는 이런 아버지를 향한 신뢰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엄마 품에 잠든 아기들 중에 불안해 하는 아기는 없습니다. 모든 아기들에게는 엄마에 대한 본능적이고도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신뢰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때,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이러한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면서 이 신뢰를 먼저 회복해야 합니다. 어쩌면 그 신뢰가 회복되어 올 때까지 계속 하나님 아버지를 불러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우리의 기도는 우리를 참된 평안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우리를 엄마 품에 안긴 아기처럼 평안한 기도자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께서는 모든 하늘들의 하나님이십니다. 저 천국은 물론이고, 저 우주공간은 물론이고, 여기 우리가 지금 숨쉬며 살아가는 이 공간에 이르기까지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고, 놓치는 구석이 전혀 없는 그런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가장 선하시고 온전하신 우리들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기도를 드릴 때마다 이런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를 드리실 때마다 이 놀라운 사실, 이 이해할 수 없는 은혜를 기억하고 또 기억하십시오. 그래야 우리 기도는 하나님을 참으로 신뢰하는 그런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기도가 엄마품의 아기가 가진 온전한 평안 가운데로 우리를 인도하는 능력있는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 아버지를 많이 묵상하시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를 생각하며, 그 아버지께 말씀드리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기도는 분명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기도가 될 것이고, 그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참된 아버지 되심을 드러내 주실 것입니다. 오늘도 아버지께 기도드리는 가장 복된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