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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년 특새 -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특새 20)


눅1808 -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특새 20).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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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2013년 2월 8일 금요일

본문 : 누가복음 18장 8절



오늘은 드디어인지 애석하게도 인지 2013년 신년 특별 새벽기도회의 마지막 날입니다. 여기까지 함께 해 주신 우리 성도님들에게 여러분을 섬기는 목회자로서 감사와 칭찬을 드립니다. 4주라는 짧지 않은 기간동안 얼마나 열심히 자리를 지켜주시고 또 함께 마음과 입술을 열어 하나님께 부르짖었는지... 결코 쉽지 않으셨을 줄로 압니다. 그러나, 분명히 이 기간 동안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특별한 은혜가 있었습니다. 물론 이제 이 은혜들을 지켜내는 것은 또다시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임에 분명하지만 분명히 이 기도회 기간동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보이는 은혜와 보이지 않는 은혜를 더해 주셨고, 그래서 참 기쁘고 행복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기뻐하셨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증거입니다. 또 앞으로도 기뻐하실 것이라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 동안 열 아홉 번에 걸쳐서 성경에 나와있는 기도에 대한 구절들을 집중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이 작업이 매우 유익했습니다. 기도에 얼마나 놀라운 약속들이 있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고, 매일 그 말씀들을 붙들고 기도하는 일은 저의 기도를 더 힘있고 확신있게 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이 짧은 기간을 통해서도 그 약속을 지켜주셨고 지금도 이루어 가시고 계신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번 기도회 동안 받은 여러가지 복과 은혜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최고의 복과 은혜는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더 신뢰하게 되었다는 것이고, 또 더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일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이번 기도회 동안 얻은 소득이고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되는 열매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이 열매를 더 크게 아름답게 키워가야 할 것입니다. 


혹시 이번 기도회 기간 동안 함께 묵상하며 은혜를 나누었던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특별히 더 은혜가 되었고, 그래서 기억에 남는 말씀이 있거든 앞으로 기도하실 때에는 그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앞으로도 더 큰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더 큰 확신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과 함께 했던 첫번 신년 기도회, 첫번이었기 때문에 저에게는 더 뜻깊었고 그래서 더 큰 은혜가 있었겠지만, 저는 이것이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번 기도회를 통해서 앞으로도 그렇게 나만 의지하면 똑같이, 아니 더 큰 은혜와 응답들을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가 앞으로 이 풍성한 기도의 약속들 위에 세워져 가는 그런 풍성한 은혜가 넘치는 교회가 되게 하기 위해서 앞으로도 함께 기도에 헌신해 주시고 또 힘써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오늘 본문에는 아주 못되먹은 재판관 하나가 등장합니다. 성경은 그가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무시하는 위도 없고 아래도 없는, 자기 자신 밖에 모르는 그런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런 그가 탄원을 들어줘 봤자 아무 것도 얻을 것 없는 가난한 미망인의 탄원을 들어주었다고 말합니다. 현실적으로는 정말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이었죠.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재판관이 그 미망인의 억울함을 풀어주었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을까요? 재판관이 그 미망인의 타원을 들어준 동기가 무엇이었을까요? 성경은 그 재판관이 이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재판관이 미망인의 원한을 풀어주었던 것은 그가 마음을 바꿔먹고 개과천선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요즘 말로 하면 ‘귀차니즘’때문이었습니다. 귀찮으니까 더 이상 귀찮아지기 싫으니까 그렇게 해 주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이 비유를 말씀해 주신 이유는 우리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우리 주님은 기도자에게 가장 위험한 것이 낙심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낙심하게 되어서 기도하는 일을 그만두는 것이 기도의 가장 큰 적이라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막으시려고 미리 예방주사를 놓으신 것입니다. 


주님이 기도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특별히 낙심에 대해 교훈하신 것은 기도자에게 낙심이란 그만큼 흔한 그러나 위험한 영적인 질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실제로 기도를 드려보면, 중요한 기도이면 중요한 기도일수록, 우리가 더 집중하여 드리는 기도일수록 우리를 낙심으로 몰고가기가 쉽습니다. 내게는 너무나 중요한 일이어서 정말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것도 꽤 오랫동안 기도드렸습니다. 그러나 변하는 것도 없고 해결되는 것도 없습니다. 속 썩이는 사람은 계속해서 말썽을 부리고, 상황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습니다. 때로는 악화되기도 합니다. 은혜를 구하는 기도, 교회의 영적인 부흥을 위해서 드리는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은혜 주시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교회가 영적으로 부흥하는 것을 소원하십니다. 그런데도 기도하고 또 기도해도 은혜를 주시지 않는 것 같고, 교회가 새롭게 변화되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실제로 이런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계속해서 기도해 보지만 어느 순간 낙심이 찾아옵니다.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하나님께 화도 납니다. 그래서 기도를 그만두게 됩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우리가 생각하는 타이밍과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타이밍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나는 당장이라고 말씀드리는데, 하나님께서는 천천히 움직이십니다. 나는 급해 죽겠는데, 하나님은 마치 사무실 문 앞에 부재중이라고 써 붙이고 방 안에서 주무시는 것 같습니다. 또 이정도면 됐다고, 이 정도 기도드렸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응답을 기대하지만 역시 하나님은 아무런 반응도 없으십니다. 이런 일 때문에 우리는 기도를 드리다가 낙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생각보다 더 빨리 들어주시면 문제가 안되는데, 너무 늦어버리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불의한 재판관은 미망인의 청원을 들어줄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저러다 말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미망인은 억울함을 가지고 매일 찾아옵니다. 정말 지치지도 않고 찾아옵니다. 가만보니 포기할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그 미망인의 억울함을 풀어주기로 한 것입니다. 미망인이 자신의 억울함을 풀 수 있었던 것은 재판관이 자기의 청원을 들어줄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그만두었다면 그 여인은 자신의 억울함을 풀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시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우리는 뭐라고 대답해야할까요? 하나님이 너무 오래 기다리신다고, 너무 지체하신다고, 도통 내 일에는 관심이 없으시다고 대답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대답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비유에 나오는 불의한 재판관만도 못한 그런 분으로 여긴다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를 그 분의 백성과 자녀로 택하신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우리의 기도를 기뻐하시며, 또 우리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즐거워 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께서 지체하고 계신다는 말도 안되는 생각 때문에 낙심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타이밍에 대해서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며, 그래서 우리의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이 다르다는 것 밖에는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 이유를 다 이해하거나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와 고통에 대해서 절대로 관심이 없으신 분이 아니시며 우리 생각처럼 지체하고 계시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조금이라도 빨리 들어주시려고 애쓰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면, 우리를 위해서 유익하다면 가장 빠른 시간에 그리고 가장 완전한 타이밍에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그 원한을 속히 풀어주시리라” 이것이 주님께서 하나님께서 움직이시는 타이밍에 대해서 알려주신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속히 응답해 주십니다. 언제나 속히 응답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는 그 때가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가장 빠르게 응답하시는 때입니다. 


우리는 기도자로서 두 가지를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사정에 무관심하지도 않으시고 또 응답을 미루고 계시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언제나 가장 신속히 응답해 주시는 우리의 선하신 아버지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주님께서 기도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믿음을 문제 삼으신 것은 참된 믿음만이 그런 인내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거꾸로 말씀드리면 믿음이 없으면 인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응답될 때까지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기도를 드리려면 반드시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기도의 인내는 우리의 성품의 어떠함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그게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는 못합니다. 기도의 인내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 우리 아버지에 대한 우리의 믿음입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언제나 속히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인내하게 합니다. 


기도의 최대의 적은 ‘낙심’입니다. 또 그 낙심이 가져오는 ‘포기’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는 기도가 되려면 우리는 이 두 가지 적과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를 이기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흔들리지 않는 신뢰가 가져다 주는 인내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께 아뢰는 형식을 가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는 본질적으로 믿음의 표현이고 신뢰의 고백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기도의 내용 뿐만 아니라 내가 믿는,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래야 계속 기도할 수 있고 낙심하지 않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제 특별기도회는 끝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기도드려야 합니다. 수많은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기도를 명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의 인내 또한 요구하십니다. 그 인내를 가능하게 하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도 요구하십니다. 기도드리다가 오히려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기도드리는 내내 믿음을 잘 챙겨야 합니다. 기도에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믿음이 기도하게 하고, 또 기도가 믿음을 든든히 세우는 복을 누리시고, 하나님께서 속히 응답하실 때에, 그 응답하심의 은혜를 놓치지 않는 능력있는 기도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께서 찾으시는 그 믿음의 기도자들이 되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