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201to08 -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요한복음 78).pdf
날짜 : 2013년 2월 14일 목요일
본문 : 요한복음 12장 01-08절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보면 신고하라는 조치를 내렸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이제 드러나게 다니실 수가 없게 되었고,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 조차도 예수님을 만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걱정스럽게 삼삼오오 모여서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오실까를 궁금해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해 유월절을 예루살렘에서 보내셔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으로서 절기를 꼭 지켜야 하셨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유월절은 예수님께서 스스로 유월절의 어린양이 되시는 그런 유월절이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을 향해 조용한 발걸음을 옮겨 가시던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엿새 전에 다시 베다니로 가셨습니다. 거기서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너무 너무 반겨주었고, 예수님과 제자들을 위해서 큰 잔치까지 열어주었습니다. 아마도 이 잔치는 나사로의 가족들이 베푼 잔치였던 것 같습니다. 잔치 중에 마리아가 아주 값비싼 향유 한 병을 가지고 예수님 곁으로 왔습니다. 그리고는 그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그의 머리털로 닦아주었습니다. 아마도 마리아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감사를 그렇게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었을 것이고 또 그렇게라도 표현을 해야만 하는 그런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 향유는 아주 아주 값진 것이었습니다. 유다가 계산한 대로 얼추 잡아도 한 병에 노동자 한 사람의 일년치 품삯, 그러니까 그 당시의 기준으로 하면 4인 가족의 일년치 생활비가 되는 그런 큰 돈이었습니다. 마리아는 그 값진 것을 예수님의 발에다 쏟아부었습니다. 게다가 마리아는 자신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 주었습니다. 발을 닦아주는 것은 가장 낮은 종이 하는 일입니다. 게다가 머리털은 여인의 영광을 의미했습니다. 여인들은 결코 공중 앞에서 자신의 머리털을 풀어 해치지 않았습니다. 풀어해친 머리카락은 여인의 남편 밖에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그의 머리를 풀어서 예수님의 발을 씻어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인 마리아로서는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최고의 예우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만큼 마리아의 행동은 그 당시로서는 아주 파격적인 행동이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유다가 이 일에 브레이크를 겁니다. 유다는 그 특유의 계산능력으로 향유의 정확한 값까지 거론하면서 마리아를 나무랍니다.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무 당연한 말이었습니다. 그 귀한 것을 그런 식으로 낭비하느니 차라리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면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큰 도움을 받았을 것이 너무나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거기 모인 사람들도 마리아의 그런 행동을 과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고, 유다의 말을 듣고 그의 생각에 동의를 보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가 자신에게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데도 전혀 그것을 거부하거나 혹은 거기에 당황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행동에 대해서, 그리고 유다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를 가만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행동을 예수님의 장례식을 가장 영광스럽고 향기롭게 준비해 주는 그런 행동으로 받고 계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마리아는 지금 예수님의 죽음을 염두에 두고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얼마나 귀하고 높은 분이신지를 표현하기 위해서, 최고의 향유를 예수님의 지체들 중에서 가장 더럽고 낮은 발에 부었고, 자신의 영광으로 그 발을 씻어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해 주는, 미리 그 끔찍하고 비참한 장례를 준비해 주는 것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악한 말이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었던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마리아의 행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그저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예수님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표현한 것이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예수님의 죽음과 장례를 향기롭고 영광스럽게 준비하는 그런 행동으로 받아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제 예수님의 장례식이 준비된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모든 일들이 가지고 있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숨겨진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신앙의 이름으로 행하는 이런 저런 말들과 행동을 우리도 모르는 의미로 평가하시고 또 받아주실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신앙 안에서의 우리의 삶이 가지는 신비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알아차리는 우리의 말과 행동의 의미는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아는 부분보다 모르는 부분이 더 큰, 우리가 깨닫는 부분보다 그렇지 않은 부분이 더 중요한 그런 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말과 행동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우리의 말과 행동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행동을 그렇게 영광스럽고 향기로운 행동으로 받아주신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비록 우리의 행동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가치를 가지고 있고 또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다 알지 못할지라도 우리의 행동과 선택을 하나님 앞에서 향기롭고 정말 의미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원리가 되어 준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굉장히 큰 유익이 됩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행동을 그렇게 의미있고 영광스러운 행동으로 받아주셨을까요? 그것은 마리아가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었기 때문도 아니고 그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어주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 모든 행동 속에 예수님을 향한 진심이 들어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진심이란 예수님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발 하나를 씻기는 일에 정말 엄청난 낭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당시로서는 정말 비난받고 오해받기 딱 좋은 그런 행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마리아는 거기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지금 자기 자신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에 대해 신경쓸만한 여유가 없습니다. 마리아는 온통 예수님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가장 깊은 존경과 예수님을 무엇보다도 귀하게 여기는 마음, 그래서 마리아는 그 무엇이든, 심지어는 자기 자신조차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성경에서도 이런 마리아를 닮은 한 사람을 봅니다. 그는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은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날 너무 기뻐서 바지가 줄줄 흘러내리는지도 모르고 춤을 춥니다. 아니 알았어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 때문에 그러한 부끄러움은 그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내인 미갈까지 나서서 다윗을 비난했지만 정작 본인은 그 일에 대해서 전혀 문제를 느끼지 않았고 너무도 당당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는 경배행위였기 때문입니다.
때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을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일들을 해야만 하고, 또 그런 일들을 감당하는 일은 참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책임감보다 의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서의 나의 진심입니다.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을 정말로 기뻐하는 마음, 예수님을 깊이 사랑하는 마음, 그래서 어떻게든 두 분을 더 섬기고 더 높여드리고 싶은 간절한 소원입니다. 이런 마음, 이런 진심이 회복될 때 우리는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 것을 무엇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으로, 아무리 열심히 드리고 섬겨도 그것이 전혀 의식되거나 혹은 아까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 섬김과 드림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린다고 하더라도 기뻐하며 즐거워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바로 그런 우리의 진심을 무엇보다 향기로운 제물로 받으시고, 그것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큰 가치와 의미로 받아주실 것입니다.
아마 우리가 이런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가서 깜짝 놀라게 될 것입니다. 내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수많은 일들이 하나님을 얼마나 크게 영광스럽게 해 드렸는지를 깨닫고 놀라게 될 것이고, 그것 때문에 나에게 주어질 하늘의 영광의 크기에 또 한 번 정말 까무라치게 놀라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이렇게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귀하게 여기는 성도들을 찾으십니다. 그들 틈에서 안식하시며 그들과 함께 거하시며 함께 기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사람들은 몰라도, 사람들은 오해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진심을 알고 받아주시며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가치와 크기로 그 마음을 받아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의 신앙이, 그리고 신앙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진심이 되게 하십시다. 그 안에서 나를 잃어버릴 정도로 기쁘고 즐거운 진심이 되게 하십니다. 그러면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이고, 우리의 영원한 영광이 될 것입니다.
항상 작은 일에도 큰 진심을 더하셔서 하나님을 향한 기쁜 헌신을 드려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