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현교회 설교,강의/금요기도회

2013.02.15. 금요기도회 - 약속한 것을 기다리라 1(사도행전 1)

행0101to05 -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1(사도행전 1).pdf


20130215FE (#1).mp3.zip




본문 : 사도행전 1장 1-5절



오늘부터 금요기도회 때에는 사도행전을 함께 묵상하며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 사도행전의 말씀을 함께 살피는 동안 우리에게 풍성한 은혜를 주시고 큰 감동과 강한 도전을 허락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사도행전은 참된 교회 그리고 교회다운 교회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성도들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지고 읽고 연구하며 또 묵상해온 아주 아주 값진 책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도행전에는 처음 교회의 역사가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처음 것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 생겨난 것을 이상적으로 보고 처음 것을 원형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도행전은 처음 교회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 나오는 교회의 모습이 다 이상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초대교회에도 큰 문제들이 많았고 수많은 영적인 도전들이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처음 교회는 이런 것들을 잘 해결하고 그러한 도전들을 잘 극복했다는 것입니다. 성도 개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또 종과 주인,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갈등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의 교회를 이루었으며 서로 협력하여 복음의 진보를 이루어 갔습니다. 그런 점에서 사도행전은 이상적인 책이라기 보다는 현실적인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중심에는 사도들이 있습니다. 사도들의 행적을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 사도행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책을 사도행전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서 이 책의 주인공은 사도들이 아닙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사도들을 사도들로 세우신 예수님이시고, 그 사도들을 통해 일하시는 성령님이십니다. 그리고 이 책은 대부분 실제로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의 일들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의 직접적인 주인공은 예수님이 아니라 성령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은 1장 4절과 5절 그리고 1장 8절이 핵심구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을 보내주시겠다는 약속, 그리고 그 성령님을 통해서 이루실 일에 대한 약속, 그리고 결국 그 모든 그 약속이 성취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 이 사도행전이 쓰여진 목적이며 또 그 중심기둥이 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도행전을 설교하고 함께 묵상하는 내내 ‘성령님’이라는 이 거룩한 단어를 마음에 담아놓아야 합니다. 그리고서 그 분에 관한 그리고 그 분을 통해 이루어지는 약속들이 얼마나 정확하고 위대하게 성취되는지를 지켜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약속들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며 또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신하면서 그 모든 위대하고 놀라운 약속들이 오늘날 우리 광현교회, 그리고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도 그대로 성취되어져 가기를 소원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이 사도행전을 읽어 나가야 합니다. 제가 이 책을 설교하고 또 함께 묵상하기로 결정했던 것은 이런  뜨거운 소원 때문이었습니다. 2000년전 초대교회에서 일어났던 그 놀라운 부흥과 회복, 그리고 그 권능과 구원이 오늘날 우리 광현교회,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기를 소원하는 마음이 저로 하여금 이 책을 집어들게 했고, 또 설교하게 만들었습니다. 누가로 하여금 이 책을 기록하게 하셨던 성령님께서 이 책을 설교하는 내내 우리 모두들 가운데 강하게 역사해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그 부흥을 소망하고, 그 구원을 갈망하며 성령님의 일하심을 간절히 기대하게 해 주시고 또 목격하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의 첫 구절 속에서 가장 먼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이 사도행전이 데오빌로라는 사람에게 써서 보낸 어떤 책의 후속편이라는 것입니다. 누가는 이렇게 말하면서 사도행전을 시작합니다.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여기 ‘먼저 쓴 글’이라고 소개되어 있는 것은 바로 누가복음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의 후편인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모두 누가가 데오빌로라는 사람을 위해서 기록한 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합하면 그 분량이 신약성경의 약 4분의 1가량 됩니다. 굉장한 분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가는 누가복음을 기록하기 위해서 2년이라는 긴 세월을 예수님께서 사셨던 팔레스타인 전 지역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하면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들을 수집했고, 그것을 기록하였습니다. 사도행전은 자신이 직접 긴 세월동안 바울과 함께 여행한 여행의 기록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 두 권의 책은 누가의 오랜 시간동안의 노력과 헌신이 녹아들어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신앙을 돕기 위해서 무려 110장이나 되는 기독교의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긴 시간과 큰 노력을 들여서 말입니다. 너무 과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 시간에 복음을 전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는 것이 훨씬 더 의미있고 효과적이니까요. 그런데 누가는 효율보다는 비효율을 택했습니다. 여러사람을 섬기는 일보다는 한 사람의 신앙을 돕는 일을 선택했습니다. 누가 보아도 낭비죠. 그런데, 지금 그 낭비의 결과가 신약성경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복음서들 중에서도 예수님의 생애가 거의 시간순으로 기록되어 있는 유일한 책이고, 나머지 하나는 신약성경에서 유일하게 초대교회의 시작과 성장과정을 기록하고 있는 책입니다. 실제로 신약의 서신서들을 해석하고 연구하는데 있어서 이 사도행전이 없다면 커다란 혼란이 생길 것입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그 분량만큼이나 신약성경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두 권의 책이 애초에는 한 사람의 또 다른 한 사람, 이제 막 예수를 믿기 시작한 초신자를 위한 사랑과 헌신 때문에 쓰여진 책들이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성령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두 책도 성령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래서 똑같은 성령님의 감동하심 속에서 이 책들을 읽는 성도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예수님을 더 온전히 믿고 사랑하게 되며, 성령충만에 대한 소망을 품게 되고, 또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더 뜨겁게 헌신하게 되는 은혜와 유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령님의 감동은 처음부터 거창하게 시작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처음 성령님께서는 한 사람의 성도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다른 한 사람의 성도를 깊이 사랑하게 하셨고, 그래서 그에게 복음을 제대로 전해주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로 하여금 지나온 복음의 역사를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 두 권의 위대한 책이 탄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 사람의 한 사람을 향한 선한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이 만들어 낸 과한 낭비같은 행동... 그러나 이것은 결코 작은 것도 아니었고 또 과도한 낭비도 아니었습니다. 그 작은 마음이 만들어 낸 한 사람을 향한 헌신은 성령님의 감동하심 속에서 시작되었고 성령님의 감동하심 속에서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작은 마음과 그 작은 마음이 만들어낸 헌신은 그 무엇보다도 귀중하고 위대한 헌신이 되었고, 그 이후 셀 수 없이 많은 영혼들을 살리고 변화시키는 가장 가치있고 능력있는 선택이 되었던 것입니다. 


한 사람의 다른 사람을 향한 깊은 사랑속에도 성령님의 충만한 감동은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만들어 낸 낭비같아 보이는 헌신 속에서도 성령님은 강하게 일하십니다. 물론 우리가 늘상 그런 종류의 선택을 할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그런 사랑이 만들어 내는 낭비들을 무의미하고 가치없는 것으로 여기며, 늘상 효율과 당장의 효과만을 기준으로 해서 살아간다면 그것은 성령님의 역사를 가로막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데오빌로라는 사람이 이 두 권의 책에서 어떤 도움과 어떤 유익을 얻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만약 데오빌로 자신이 그다지 큰 유익을 누리지 못했다고 해도 문제될 것은 전혀 없습니다. 성령님께서는 누가의 데오빌로를 향한 개인적인 헌신 속에서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교회와 성도들을 위한 위대한 계획을 진행해가고 계셨고 또 지금도 그 은혜로운 계획을 이루어 가고 계시니까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간다고 말하는 것은 그저 그 분이 계시며 이런 저런 일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며 산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일들 속에서 행하실 결정적인 역할을 믿는고서 거기 소망을 두며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나의 작은 선택, 나의 작은 행동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놀랍고 위대한 일을 행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고 기대하며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우리는 금요 기도회로 모였습니다. 오늘도 말씀을 듣고 기도드릴 것입니다. 여기 이 대구, 어쩌면 우리 외에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이 작은 건물 안에서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을 키워가며 또 몸부림치며 기도드리는 것이 무슨 커다란 의미가 있겠습니까? 객관적으로 생각하면 이런 일들 속에는 별다른 의미도 능력도 없다고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진실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나비 한 마리의 날개짓으로도 태풍을 만드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무에서 온 세상을 만들어 내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이 도시 한 구석에서 이루는 작은 믿음의 진전, 또 우리가 드리는 그저 허공을 울리다가 흩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하늘을 향한 외침들로도 온세상을 바꾸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분명 지금도 어디선가 그 작은 것들을 사용하셔서 온세상이 다 달려들어도 결코 이루지 못하는 일들을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우리는 언제나 눈에 보이는 차원보다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숨겨져 있는 헤아릴 수 없이 큰 부분을 생각해야 합니다. 


서울 마포의 양화진에 가면 선교사 묘역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아주 오래된 선교사의 묘지들도 있는데, 인간적으로 보면 참 가슴아픈 묘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선교사 일가족의 묘역일 것입니다. 한 가족 네 명이 한국에 와서 모두 사망했는데, 부모들도 젊은 나이에 죽었지만 특히 그 부부의 어린자녀 둘은 태어난지 얼마 못되어, 또 아주 어린 나이에 병을 얻어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또 어떤 묘지는 선교를 위한 뜻을 품고 한국으로 오다가 배 안에서 돌아가신 안타까운 사연을 지닌 선교사의 묘지도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이들의 선교는 실패한 듯보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묘지들을 보면서 그런 분들이야 말로 이 땅에 뿌려진 가장 거룩하고 순결한 선교의 씨앗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 분들의 죽음, 그 거룩한 낭비가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 기독교도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거룩한 낭비, 하나님의 거룩한 낭비가 오늘 우리의 신앙으로 꽃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때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과 결심을 갖게 되고, 그런 마음으로 작은 일들을 행할 때가 있습니다. 어찌보면 그런 행동 하나 하나는 그리 위대한 일도 아니고 또 누가 알아주는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다른 열매조차 없어 보이는 그런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이 아니라 그런 행동들을 통해서 일하시고 당신의 목적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하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믿음을 두고, 기대를 걸어야 합니다. 때로 그 행동은 성도들에게 작은 사랑을 베푸는 일이 될 수도 있고, 기도를 한 번 해 주는 일이 될수도 있고, 심지어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교회를 청소하거나 남들이 꺼리는 험한 일을 나서서 하는 그런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낭비같아 보이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느껴지는 그런 일들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좋습니다. 작을수록, 의미나 열매가 없어보이는 일일수록 그리고 낭비같아 보이는 일일수록 더 좋습니다. 그런 일을 기꺼이 감당하려는 마음은 성령님께서 주시는 선한 감동이며 우리가 그 감동하심에 순종한다면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해서 분명히 하나님의 일을 더 신나게 그리고 더 능력있게 행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전혀 알 수 없는 큰 일을, 우리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행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그런 거룩한 어리석음과 거룩한 낭비를 좋아하십니다. 그런 것들을 하늘나라의 씨앗으로 삼는 일들을 기뻐하십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낭비 중의 최고의 낭비, 그리고 가장 큰 어리석음인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닮아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것은 그런 일들을 의미 없다고, 하챦다고 그리고 낭비라고 생각하게 하는 이런 믿음 없는 생각들입니다. 이런 생각들이 공격해 올 때, 선한 마음을 주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시라는 사실과 누가의 한 사람을 위한 헌신이 오늘 우리에게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라는 위대한 책을 남겨 주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 선한 마음, 작은 것들을 소중하고 가치있게 여기는 마음을 꼭 붙드시고 거기 사랑을 담아 최선을 다하십시오. 우리 마음 속에 성령님이 역사하시고 우리가 하는 그 작고 거룩한 낭비에 성령님께서 역사하신다면 우리의 작은 몸부림들도 분명 누가의 헌신처럼 귀하고 놀랍게 사용될 것입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이 세상에 우리가 성령님 안에서 행한 일치고 무의미하고 열매없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성령님은 헛되이 선한 마음을 주시지 않습니다. 항상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이 향하게 하시는 그 작아보이고 또 낭비같아 보이는 일들에 최선을 다하셔서 성령님께서 일하실 자리를 내어드리는 누가를 닮은 인생을 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제목]

  1. 우리가 사도행전을 묵상하고 공부하는 동안 우리에게도 성령충만함이 주어지도록. 성령님께서 강한 도전과 변화의 역사를 일으키시도록 
  2. 성령님께서 주시는 선한 마음에 순종하며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도록
  3. 우리 자신을 보지 말고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기대하며 거룩한 일을 위해서 낭비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