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0101to05 -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2(사도행전2).pdf
본문 : 사도행전 1장 1-5절
지난 금요일에는 한 사람의 다른 한 사람을 향한 사랑과 헌신 위에 성령님께서 역사하실 때, 얼마나 놀랍고 위대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묵상해 보았습니다. 누가는 데오빌로라는 개인을 위해서 어찌보면 낭비스러운 일을 했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헌신에 역사했을 때, 데오빌로 한 사람뿐만 아니라 오고 오는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얼마나 큰 유익을 누리고 말씀의 능력을 경험했는지 짐작할 수 조차 없을 정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함께 하시고 역사하신다는 말 속에는 이런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나는 작아도 좋습니다. 나는 무능해도 좋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별 볼일 없어 보여도 좋습니다. 그 일이 성령님의 감동하심에 대한 순종이라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무능한 내가 하는 그 작은 일을 통해서 전능하게 일하십니다. 그래서 저 아프리카 오지,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하나님과 소수의 사람들을 위해서 행하는 작은 몸짓들이 이 땅 위에 하늘나라를 넓혀가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항상 이 부분을 헤아리고 이런 역사하심을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에게 이런 믿음이 있을 때, 끝까지 좌절하지 않고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1절과 2절에서 누가복음에 대해서 소개한 누가는 3절로 넘어가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께서 죽지 않으시기를 바랬던 어떤 사람들의 착각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은 계속해서 비어있었으며 예수님은 계속해서 수많은 사람들 앞에 나타나셨고 40일씩이나 그들과 함께 지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딱 이 두 가지만 계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도들 앞에 계속해서 나타나시고 또 계속해서 그들에게 하늘나라의 일을 가르치셨습니다. 주님께서 40일 동안 이 두 가지 일만을 하셨던 것은 이것이 앞으로 성령충만함을 덧입고 살아가야할 성도들에게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부활을 완전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게 해 주셨습니다. 도저히 거부할 수 없게, 믿지 않을래야 믿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믿음을 지키고 복음을 전파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면 절대로 안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부활이야 말로 성도들의 믿음의 핵심이며 또 복음의 핵심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죄는 깨뜨려진 것이 아닙니다. 죽음은 극복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이 세상은 하나님이 아니라 여전히 악한 영이 다스리는 세상이라는 뜻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성도들의 부활도 없습니다. 첫 열매가 없는 추수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처음 성도들에게 부활의 확신을 주시고 부활의 영광을 보여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것만 바라보며 살게 해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것이 앞으로 성도가 성도의 삶을 살아가게 해 주는 소망이며 믿음의 능력의 원천이 될 것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도에게 가슴벅찬 부활의 확신과 소망이 없다면 그 성도는 결코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성도의 눈에 부활하신 영광스러운 주님의 모습이 보이고, 나도 그 부활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생생한 기대와 소망이 충만하지 못하다면 성도는 결국에는 이 세상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저 부활을 믿는 일로만은 부족합니다. 부활이 나의 가장 큰 소망과 확신이 되어야 하고, 그 부활도 그냥 부활이 아니라 반드시 영광스러운 부활이 되어야만 한다는 절실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소망과 확신, 그리고 이런 절박한 심정이 없을 때 부활은 우리에게 아무런 능력이 되지 못합니다. 부활은 그 어떤 것도 꺾지 못하는 죽음을 이기는 가장 강한 능력임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서 내 근심, 내 두려움 조차 해결해 주지 못하는 죽은 소망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내 눈 앞에 서계신 부활하신 주님이 더 또렷해지게 해 달라고,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는 내 눈이 흐려지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묵상해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과 나의 영광스러운 부활을 묵상하고 또 묵상해야 합니다. 마음 속에 영광스러운 부활에 참여하는 나의 모습을 품고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부활은 능력이 됩니다.
두번째로 주님은 그 40일 동안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가르치셨습니다. 이미 3년 동안이나 해 오신 일이지만 또 그렇게 하셨습니다. 주님 보시기에 제자들이 하늘나라의 일을 분명하게 아는 것은 그들이 부활의 확신과 소망을 품는 일만큼이나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을 보면 이 내용이 성령에 대한 약속을 주시는 4절 이전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서 우리는 하늘나라의 일을 가르쳐 주시는 일이 성령세례를 주시는 일보다 앞서서 되어져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성령님께서 임하신 이후에 일어난 첫번 사건은 예루살렘 교회의 대대적인 영적 부흥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러한 부흥의 불씨가 되었던 것은 바로 베드로의 설교였습니다. 베드로가 무엇을 설교했을까요? 바로 하나님 나라의 일입니다. 이전에 주님께서 그에게 가르치셨던 하나님 나라의 일에 대해서 설교했습니다. 성령충만한 베드로가 이것을 선포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왔던 것입니다.
저는 참된 영적인 부흥을 위해서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성령충만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위해서 기도해 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묵상하다가 그것보다 더 앞서서 갖추어 져야할 아주 중요한 것 한가지를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성령충만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에 제대로 젖어드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성령충만함을 허락하시기 전에 하늘나라의 일을 40일 동안이나 집중적으로 가르치셨다는 사실이 제게 그것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먼저 40일 동안의 예수님의 가르침이 있었고 그렇게 말씀에 젖어있는 사람들에게 성령님께서 임하셨을 때, 그들을 통해서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생각해 보니 이것은 성경이나 기독교 역사 속에서 일어난 모든 부흥이 일어난 순서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영적인 부흥이 일어날 때는 항상 성령님의 강한 임재가 있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이 강하게 선포되고 사람들이 그것을 듣는 일이 먼저 있었습니다. 요시아 시대에도 그랬고, 에스라 시대에도 그랬습니다. 오랫동안 말씀을 듣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또 설교되었고, 그것이 영적인 부흥으로 이어졌습니다. 18세기 미국의 영적 대각성의 시기에도 참으로 의미있는 부흥은 그렇게 일어났습니다. 심지어는 종교개혁 조차도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린 소수의 사람들을 통해 일어났던 일이었습니다.
부흥이라는 것은 결국 어떤 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의 기준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이키는 것임을 생각해 보면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 같습니다. 만약 말씀이 충분히 주어지기 전에 성령충만을 주시면 사람들은 돌아가야할 방향을 잃어버리고 자기 열정에 북받쳐서 자기 마음대로 믿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귀한 영적인 부흥은 열매가 없는 무의미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먼저 충분한 말씀을 주시고,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을 충만하게 부어주셔서 그들에게, 그리고 그들을 통해 참된 부흥, 열매있는 부흥을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그들 스스로가 영적으로 완전히 되살아나서 능력있고 충만한 믿음으로 살아가며 수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이런 참된 부흥이 일어나야 한다는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마음 속에 꼭 그런 부흥을 지켜보고 싶다는 열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이 곳에 보내신 것이 바로 이 일 때문이며, 그래서 이것이 저의 소명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럴 뿐만이 아니라 이것이야 말로 우리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가장 간절한 소원이라는 것도 확신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 살아가든지 온전히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능력있고 소망넘치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가장 원하실 것이 분명하니까요.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넓어지는 것을 보고 싶어하실 것이 분명하니까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우리 주님의 소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 안에, 우리 교회 안에 참된 영적인 부흥을 일으키시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품고 계신 가장 간절한 소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것을 아는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도 당연히 이 소원을 품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의 마음을 그렇게 애타게 하고 있다면 이것이 우리의 마음도 그렇게 만들도록 해야만 합니다. 다른 기대를 가지고 다른 것을 원하기 전에 우리는 바로 이것을 소원하고 또 소원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그 일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내 마음이 주님의 마음과 멀리 떨어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자꾸 그 일에 관심을 가지고 내 소원을 주님의 소원에 일치시켜 가야 합니다. 내 마음이 주님의 마음처럼 뜨거워질 때까지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 교회에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기를 원하십니까? 모든 성도들이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며, 믿음의 능력으로 죄와 세상을 넉넉히 이기며, 모두가 다 그 영혼에 기쁨과 소망이 충만한 그런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많은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별처럼 빛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리고,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 자신이 이런 성도가 되어 살아가는 행복을 진정으로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이것과 관련해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것을 위한 길이 이미 우리 눈 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가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지만 가려고 하기만 한다면 반드시 열리는 그런 확실한 길이 우리 눈 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답부터 말씀드리면 그것은 바로 성령충만입니다. 우리가 성령충만하기를 진실로 소원하고 또 성령님의 충만하신 임재를 위해서 준비한다면 주님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성령님을 충만하게 부어 주실 것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주시고, 우리 영혼을 부흥케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능력있는 성도, 기쁨 넘치는 성도, 또 가장 행복한 성도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 복, 성령충만의 복에 대해서 말씀하시기 전에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을 계속해서 바라보도록 하셨고, 그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주셨습니다. 눈 앞에는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만 보이게 하셨고, 마음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만 들어있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분명 성령충만을 위한 준비였습니다. 주님께서 성령으로 충만하게 해 주실 때, 그 복을 제대로 그리고 능력있게 누리게 하시기 위해서, 그 복을 통해 이 세상의 복의 통로가 되게 하시기 위해서 시키신 준비였습니다.
우리가 진실로 성령충만을 원한다면, 그리고 또 성령충만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그리고 주님께서 성령충만하심을 주신 후, 그 복을 놓치지 않고 살기를 원한다면 오늘 우리에게도 그럴 준비가 필요합니다. 첫째,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니, 그 분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은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죄와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살아나셔서도 지금도 성도들과 함께 계십니다. 그 분의 모습이 생생하게 여겨질 때까지 우리는 우리 마음의 눈으로 그 분을 보고 또 보아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 하늘의 영광을 누리는 것이 나의 최고의 목표가 될 때까지 부활하신 영광의 주님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 눈은 세상을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것을 더 크고 중요하게 여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부활은 힘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나에게 아무런 능력도 되어주지 못합니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채우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우선 예배 때마다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설교라는 질그릇 안에 담아 주시는 가장 값진 보배인 하나님의 진리를 찾아 반드시 여러분의 것으로 삼으셔야 합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영혼을 기쁘게 할 때까지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하루에 한 절씩이라도 꼭꼭 씹어 읽고, 읽을 때마다 거기에 마음을 합하고 믿음을 더해 조금씩 조금씩 말씀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말씀과 진리로 꽉 채워진 성도로 빚어져 가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준비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성령충만함이 부어지고 그 능력과 복이 계속되어지려면 부활에 대한 확실하고 가슴벅찬 소망과 우리 속을 가득 채운 충만한 말씀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 눈과 마음을 새롭게 하셔서 부활하신 주님만 바라보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우기를 결단하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누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