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425to31 -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요한95).pdf
본문 : 요한복음 14장 25-31절
14장은 전체적으로 예수님께서 자신의 떠나심 때문에 근심하고 두려워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확신을 주시기 위해서 해 주신 말씀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반드시 이루실 약속에 대한 말씀이었고, 또 사실에 대한 증언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던지는 위로와 격려의 이야기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힘내! 다 잘 될거야!”, “넌 할 수 있어!”, “내가 함께 있쟎아!”, “난 널 믿어!” 등등... 이런 것들이 사람들이, 그리고 이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와 격려입니다. 엄밀하게 말씀드려서 이런 말들은 듣기는 좋고 때로는 격려가 되지만 거기에는 그저 근거없는 추측과 희망만 있을 뿐 확신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힘은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다고 정말 다 잘 될까요? 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다 할 수 있습니까? 분명히 함께 해 주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이 정말 나의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있을까요? 아니죠. 아닙니다. 제가 비관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은 심리적인 도움은 될 지언정 실제적인 능력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에서 발견하는 은혜로운 말씀들은 단지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는 ‘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리고 확실한 보장이 되고 실제적인 능력이 되는 말씀들입니다. 요한복음 14장의 말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약속이고 또 사실에 대한 말씀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확실한 보장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하늘의 거처, 기도 응답, 성령님의 함께 하심... 이런 것들 모두 약속의 말씀이고 사실에 대한 설명입니다. 단순히 예수님 없이 살아가야 할 제자들이나 우리들을 위로하시기 위해서 하신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라 정말 하늘이 무너져도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너무나도 확실한 보장된 말씀들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들을 믿으면 이 말씀이 현실이 됩니다. 이 말씀들의 실제적인 유익과 능력을 얻게 됩니다. 오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말씀도 어제 말씀에 이어지는 성령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 게 주시는 실제적인 유익들과 능력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선 우리는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유익과 능력을 살펴보기 전에 주님의 말씀을 따라 성령님 자신에 대해서 올바르게 생각하는 일부터 해 보겠습니다. 주님은 성령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성령님은 우리를 돕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 때 우리 옆에서 우리에게 현실적인 도움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성령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보내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보내신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보내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의 대리자이셨듯이 성령님은 예수님의 대리자로 오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셨듯이 성령님은 이 땅에 오셔서 예수님의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예수님과 동떨어진 분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성령님은 항상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일, 그리스도를 영광스럽게 하시는 일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하나님을 드러내고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셨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성령님이 제자들과 우리들을 위해서 하실 일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령님께서 우리들에게 해 주시는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고, 생각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자들의 삶, 그리고 성도들의 삶 속에서 행하시는 성령님의 가장 중요한 역할입니다. 그것 자체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씀, 그래서 기억도 잘 나지 않는 말씀들을 깨닫게 해 주시고 또 항상 기억나게 하시는 일. 그것이 성령님께서 주시는 가장 큰 실제적인 유익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의 말씀 속에 우리가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갈 때 필요한 모든 것들이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지식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씀 속에는 실제적인 능력도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제대로 깨닫고 거기에 우리의 믿음을 더하면 우리는 그 능력을 덧입게 됩니다. 만약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시지 않고 또 기억나게 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말씀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말씀들의 실제적인 유익들도 누리지 못합니다.
주님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여러분, 이 평안이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주님께서 주시는 이 평안,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은 이 평안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바로 성령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주시는 것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또 생각나게 하셔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근심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것은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또 생각나게 해 주실 때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깨닫고 생각나게 하는 일만으로는 이런 평강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그 뒤에 덧붙여 주신 29절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께서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대해서, 실제로 당시에는 아무런 소용도 없는 말씀들을 해 주신 이유는 그 말씀 속에서 미리 말씀되어진 일들이 실제로 현실 속에서 일어나게 될 때, “아! 그 때 그 말씀이 진짜구나. 주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구나!”하고 그 말씀을 믿고, 또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평강,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 근심과 걱정을 몰아내는 평강은 바로 그 믿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아마 성도들은 거의 모두가 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일을 좋아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깨달음이 그저 깨달음으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로, 그리고 사실로 확인되어지는데도 그저 거기서 끝납니다. 그러니 들을 때 뿐입니다. 별로 능력이 되질 못합니다. 왜 들려주십니까? 왜 들려주신 것을 깨닫게 해 주시고, 또 생각나게 해 주십니까?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믿고 또 그 말씀을 하신 예수님과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직 되어지지도 않은 일을 훤히 알고 있고, 알아듣지도 못한 말씀을 깨닫게 될 줄로 알고서 주셨다면 미래는 누구의 손에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으면 두려움과 근심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 이렇게 말씀을 이어가셨습니다. “이 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아니하리니 이 세상의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그는 네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로라” 제자들이 대제사장의 하인들이 와서 예수님을 잡아가고, 로마의 군병들이 예수님을 때리고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요? 하나님이 아니라 이 세상의 임금, 그러니까 사탄이 승리한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좌절하고 또 두려움에 사로 잡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은 분명히 사탄이 예수님에게 행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졌기 때문에, 사탄에게 그럴 권리나 힘이 있어서 생겨난 일이 아닙니다. 그 일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것입니다. 그것은 사탄의 강압이 아니라 예수님의 선택입니다. 주님이 주님의 죽으심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계속해서 말씀하신 것에는 바로 나중에 주님이 고난을 받고 죽게 되어질 때, 그 일을 그런 시각에서 바라보라고, 오히려 모든 일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믿는 믿음의 재료로 사용하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나중에 성령님께서 오시고 그 분이 그 모든 것들을 깨닫게 하시고 생각나게 하실 때,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게 하시려고, 그래서 그 믿음이 평안의 이유가 되게 하시려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성령님의 일이기도 하지만, 또한 원래 예수님의 일이기도 하셨습니다. 두 분은 그렇게 우리들에게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 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리며 두려움과 걱정없이 주님을 섬기는 삶을 살게 하시기를 원하시며 그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평강은 믿음에서 옵니다.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생각나게 하실 때, 그리고 우리가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주신 하나님을 믿게 될 때, 주님의 평강, 이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은 평강을 얻게 됩니다. 항상 성령님께 의지하여 말씀을 깨달으시고, 그렇게 깨달은 말씀에 믿음을 더하심으로써 흔들리지 않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주님의 평강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