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625to33 -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102).pdf
본문 : 요한복음 16장 25-33절
“이것을 비유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오늘 본문의 첫절인데요, 우리로 하여금 조금 어리둥절하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것을 비유로 너희에게 일렀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것’은 뭐고, 그것을 말씀하시기 위해서 사용하신 ‘비유’는 무엇일까요? 제자들이 비유로만으로도 알아들었다면 예수님께서는 다시 ‘이것’에 대해서 말씀해 주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그렇지만 제자들이 아직 비유로만은 알아들을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계속 하신 말씀들입니다. 그러니까 14장부터 시작해서 16장 마지막절까지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비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15장에 나오는 포도나무의 비유입니다. 실제로 포도나무 비유는 요한복음 14장부터 16장까지 내용의 중심입니다. 14장을 그림으로 정리해 주시기 위해서 포도나무 비유를 주셨고, 제자들이 그것을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에 덧붙여 주신 말씀이 비유 뒤에 이어진 16장 24절까지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포도나무 비유의 마지막 구절인 16절도 기도의 응답에 대한 약속이고 24절도 기도응답에 대한 약속으로 끝나고 있는 것입니다. 두 개가 똑같은 이야기이니까요. 그 전체를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성령 안에, 예수님 안에, 말씀 안에, 하나님 안에, 사랑 안에 거하는 것. 이것은 모두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흉내내서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 그러니까 예수님의 새 계명입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통해서 말씀 안으로, 성령님 안으로, 예수님 안으로 그리고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서 거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열매를 맺게 될 것이고 또 하나님께 구하는 대로 기도의 응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포도나무 비유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이고 그 비유가 우리에게 약속하는 복입니다. 물론 14장부터 16장을 읽어보면 그 모든 메시지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성령님이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성령님이 오셔서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깨닫게 해 주시며 믿는 자들의 영혼에 적용해 주셔야만 비로소 그 모든 일들이 가능해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비유의 의미를 제대로 분명하게 알려주셨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속으로만 품고 있었던 질문까지 다 헤아리시며 대답해 주시는 것을 보고 드디어 이런 고백을 합니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 정말 놀라운 고백입니다. 드디어 제자들이 모두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셨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고 그래서 이런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제자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노라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니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제자들이 믿음을 고백한 말은 너무나 훌륭합니다. 그러나, 그 말에 담긴 실제의 의미는 아직 온전하지 않았습니다. 아직은 주님이 원하시는 그 수준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 믿음은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한 상태였고, 그래서 어려움이 닥쳐오면 예수님을 버려두고 뿔뿔히 흩어질 수 밖에 없는 그런 종류의 믿음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듣기에는 기분이 나빴을지도 모르지만 그게 제자들의 믿음의 현주소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서 의심없이 무엇인가를 고백할 수 있을 때, 분명히 그것은 예수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그러나, 그 고백은 대부분 그 고백이 이루어진 시점에서는 완성되고 참된 믿음의 고백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 고백은 오늘 본문의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고백이기는 하지만, 아직 그 구세주를 믿는 믿음을 위해서 손해를 보거나 자신의 삶을 던져 넣을 수는 없는, 금방 예수님을 버려두고 도망쳐 버릴 수 밖에 없는 그런 작고 약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고백은 믿음의 출발점이지 완성이 아닙니다. 믿음은 그 고백으로부터 시작해서 계속해서 더 온전하고 확고한 믿음이 되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는 그 누구도 더 이상 성장하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성숙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믿음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저에게 예수를 믿는 믿음의 진짜 의미를 알려주신 미국의 존 파이퍼 목사님은 그 분 자신이 그 누구보다도 그런 믿음에 입각해서 살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믿음에 관해서 설교를 할 때면, 항상 자신도 계속해서 믿음의 싸움을 싸우고 있다는 말을 빼놓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 땅 위에서는 그 믿음의 완성이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고백을 듣고 제자들의 믿음이 믿음이기는 하지만 아직 턱없이 작고 연약한 믿음이어서 곧바로 예수님을 배신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주님께서 그 말씀을 하신 것은 오히려 제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평안을 누리게 해 주시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에게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세 번 주님을 부인할 것을 알려주신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경고이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제자들이 아직은 그럴 수 밖에 없는 수준의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성경은 인간에 대해서 결코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인간을 죄인으로 보고, 그래서 언제든지 불신앙으로 돌아설 수 있는 그런 존재로 봅니다. 그래서, 인간에 대한 현대적인 사고방식에 익숙한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이 성경을 읽으면 굉장히 불쾌해지고, 심지어는 성도들조차도 성경이 말하는 그대로의 인간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면 별로 좋아하지 않는 기색이 역력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거기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기대를 걸면서도 인간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는 절대로 완화시키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가 정말로 받아들이게 되면 그 때부터는 이것이 굉장히 유익합니다. 평상시에는 죄와 불신앙에 대해서 조심하면서 살게 되고, 또 죄를 짓고 실패했을 때는 그것 때문에 아얘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절감하고 다시 주님께 의지하는 삶으로 돌아갑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제자들의 배신에 대해서 말씀해 주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배반하게 되었을 때, 그것 때문에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더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게 해 주려고, 그렇게 해서 더 깊고 견고한, 그들의 고백에 걸맞는 신앙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 주기 위해서 제자들의 배반을 미리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어쩌면 성경을 통해서건, 설교를 통해서건 당장 우리 자신의 본모습을 보게 되는 것은 굉장히 아프고 힘든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는 나약해 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강해집니다. 그것이 나중에 찾아올 수 있는 자신에 대한 실망과 절망에 대한 예방주사의 역할을 해 주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세상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려면 항상 크고 작은 어려움과 고통들을 각오해야 합니다. 신앙 때문에 직접적인 박해를 받지 않더라도 적어도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는 한 번 사랑하고 한 번 더 참아야 하며, 한 번 더 손해를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부르심에 합당한 거룩한 성도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어려움들에 걸려넘어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믿음을 배반하고 주님을 배반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 일을 이미 예견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럴 수 있다는 이미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환란을 당할 때 뿐만 아니라, 때로는 그 환란 때문에 넘어지고 쓰러지게 되더라도 절망하지 말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겼으니 담대함을 잃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적인 실패와 범죄 때문에 포기하면 거기서 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대함을 잃어버리지 않으면 후에는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너희 힘으로 이기라고 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때로 우리를 넘어뜨리는 너무 힘세어 보이는 세상이지만 그 세상은 이미 예수님께서 이기신 세상입니다.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 이 세상은 그 힘을 거의 다 잃어버렸습니다. 아직도 강력하기는 하지만 이제 승리는 결정되어 있습니다. 그 승리는 뒤집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잊지 말고 우리에게 맡겨진 믿음의 싸움을 계속해야 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싸우기만 하면 마지막 승리는 우리의 것이 됩니다. 항상 내 힘이 아니라 승리하신 주님의 능력과 은혜에 의지하여 싸움을 계속한다면 승리는 반드시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승리는 내 힘으로 쟁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승리는 이미 우리 주님이 이루셨고 우리는 그 승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패배는 결코 완전한 패배가 될 수 없습니다. 때로 주님과 믿음을 배신하게 된다손 치더라도 우리가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한, 승리의 기회는 언제든지 우리 앞에 열려져 있습니다.
담대하십시오. 우리는 원래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질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이미 이기셨습니다.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우리에게 맡겨진 싸움을 그치지만 않는다면 주님의 승리는 분명히 우리의 승리가 될 것입니다.
실패와 범죄 때문에 주눅들지 마시고 주님을 바라보시며 담대하여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