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일0218to23- 지금은 마지막 때라(요일9).pdf
본 문 : 요한일서 2장 18-23절
성도들 중에는 과연 세상의 종말은 언제 오는가? 그 종말을 준비하는 태도는 어떠해야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과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거의 모든 기독교 이단들이 종말론과 관련되어 있고 그런 이단들마다 사람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는 것은 예수를 믿는데 있어서 사람들이 종말에 대해서 얼마나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종말에 대한 메세지를 중심에 놓고 등장하는 주장들은 모두가 다 이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성경은 때와 시기에 대한 것은 하나님만이 알고 계시는 문제이고, 더 나아가서 사람들은 아얘 그 시기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성도는 종말의 정확한 시기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성도 개인에게 중요한 것은 우주의 종말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종말, 그러니까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죽기 전에 종말이 찾아온다면 그 종말이 그 사람에게 마지막 순간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이 죽은 후에 종말이 찾아온다면 그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 사람의 죽음의 순간이 종말이 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종말이 언제인가를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이 땅에서의 인생을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잘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러면서도 우리가 꼭 인식해야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마지막 때’라는 것입니다. 성경이 마지막 때라고 부르는 시기는 정해진 종말, 주님의 재림의 날을 향해 다가가는 시대를 말합니다. 주님의 초림과 재림, 더 짧게는 주님의 부활과 재림 사이의 기간을 말합니다. 주님의 초림과 부활이 있었고 이제는 재림만 남기고 있기 때문에 주님의 부활 이후의 시대는 모두가 다 주님의 다시오심, 그러니까 종말을 기다리면서 살아가는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구속사의 마지막 완성만을 남기고 있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에 어울리는 삶과 신앙의 태도는 재림하시는 주님을 만나볼 준비를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벅찬 소망과 예민한 긴장이 모두 필요합니다.
어떤 주장이 이단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것은 일반 성도들에게는 상당히 까다롭고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뿐만 아니라 처음 교회의 성도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지만 이단의 분별이 어려운 이유는 그게 원래부터 어렵기 때문이 아닙니다. 가장 간단하고 명확한 기준을 모르거나 혹은 기준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기준이란 다름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대개의 이단들이 다 종말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단들은 결국 그 마지막 날의 주인이신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둘 중의 한 가지의 형태를 지닙니다. 첫번째는 재림의 정확한 시기와 장소를 이야기한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누군가가 자신을 재림하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회를 빌어서 한 가지 덧붙여서 설명을 드리면 사실 누군가가 자신이 하나님이나 성령님이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주장입니다. 성령 하나님과 성부 하나님께서는 결코 인간이 되지 않으신다는 점에서 이런 주장을 하는 이단들은 사실 이단 축에도 들지 못합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단들에 부화뇌동한다는 것은 그 사람들이 자신이 믿는 하나님에 대해서 완전히 무지하다는 것을 드러낼 뿐입니다. 인간이 되신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조차도 이제는 다시 이 땅에 인간으로 오시지 않습니다. 처음 오셨을 때, 인간이 되셔서 하셔야 할 일을 완전하게 이루셨기 때문에 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성령님에게 사람들을 구원하고 또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일을 맡기셨습니다. 그러니 어떤 사람이 내가 그리스도다라고 말한다는 것 자체가 자신이 가짜라는 것을 드러내는 셈인데, 성도들이 이 단순한 원리조차 모르고 있으니 정말 통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단이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방법, 그러니까 적그리스도 노릇을 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교주가 스스로를 예수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 것과 나머지 한 가지는 예수님의 말씀을 부정하고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요한의 편지를 받는 교회에서 문제가 된 것은 두번째 경우였습니다. 당시에는 사도들이 시퍼렇게 살아있고, 성도들 중에서도 예수님을 본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직 없었지만, 슬슬 예수님의 가르침을 바꾸고 왜곡시키는 사람들이 등장했던 것입니다. 요한은 이것도 적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그것도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가 꼭 알아야 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는 믿으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들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거부할 수는 절대로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그 분의 말씀과 인격과 그 분 자신은 완전히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둘 다를 거부하든지 둘 다를 받아들이든지 해야 합니다. 그 밖에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들과 다른 이야기를 하면 그것은 무조건 적그리스도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진리를 확실하게 아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남의 이야기에 넘어가는 것은 물론이고 만약 우리가 개인적으로라도 예수님의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왜곡시킨다면 그것은 개인적으로 자기 스스로에게 적그리스도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큰 틀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담은 그릇이 바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성품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거짓을 이야기하거나 바르지 않은 것을 요구하거나 애매하고 감추어진 부분이나, 비밀스럽게 그 집단에 속한 사람들에게만 알려진 그런 진리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정직하고 의로워야 하며 삶과 신앙의 일치에 대해서 이야기 해야 하며, 항상 하나님의 영광이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어기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을 예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상식을 넘어설 때가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탈상식적이거나 비상식적이지 않습니다. 모든 좋은 것들이 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은 선하고 좋은 것, 조화롭고 아름다운 것, 건설적이고 덕스러운 것, 우리 자신과 가족, 그리고 이웃의 삶을 더 유익하게 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20절의 말씀이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부으심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는 예수님께 성령님을 선물로 받습니다. 성령님께서 하시는 역할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는 것이며, 그 거듭남이 우리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삶까지도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으로 믿는 사람들은 그 속에 이미 진리와 진리 아닌 것을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양심을 새롭게 하시고, 새롭게 된 양심을 통해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새롭게 된 양심에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는 어떤 것이 그리스도께 속한 것인지 어떤 것은 그렇지 않은지를 거의 다 분별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문제는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난 이후에도 여전히 세속적인 가치관과 사람들의 기준에 의해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버릇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무언가를 평가하고 판단할 때, 거듭나지 못한 옛날 기준을 사용하려 든다는 것입니다. 편안함과 자기 유익을 기준으로 삼고, 말씀과 진리보다는 결과와 효과를 기준으로 삼아서 평가하고 선택합니다. 참된 가치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분별력은 힘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점점 희미해지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중심을 떠나서 다른 것을 중심으로 삼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표현대로 결국 ‘적그리스도적인 신앙’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마지막 때를 살고 있습니다. 구속사적으로 볼 때, 주님의 부활과 재림 사이를 사는, 그리스도 중심의 결정적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는 특히 적그리스도를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적그리스도가 뭐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정면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도 적그리스도이지만 예수님의 가르침과 다른 것을 가르치는 것도 적그리스도입니다. 이단에 빠지는 것도 적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지만 예수님의 가르침과 다른 것을 따르는 것도 적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과 신앙이 이렇게 되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막는 방법은 우리가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예수님의 가르침과 성품에 집중하는 것과 이미 성령님으로 인해서 새롭게 된 우리 양심의 소리에 정직하게 귀를 기울이면서 살아가는 것 밖에 없습니다. 무언가를 평가하고 판단할 때, 여러분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상식이나 세속적인 기준이 아니라 이 두 가지 기준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의 말씀과 우리 속의 양심이라는 기준을 모두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계속 그 연습을 하시고, 그 분별대로 따라 사는 연습을 계속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안전할 것입니다. 또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나 정직하게 말씀과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여서 참된 진리를 통해 예수님을 더욱 더 확실하게 붙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