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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7.01.새벽예배 -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창세기9)


창0129to0203-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창9).pdf


20130701D (#01).mp3.zip




     문 : 창세기 1장 29-2장 3절


    하나님께서 여섯째 날에 하신 일은 땅 위의 동물들과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사람에게 하나님을 대신하여서 이 세상을 다스리도록 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 세상을 다르시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세상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고 돌보는 일은 인간에게 맡겨진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라고 하니까 굉장히  거창하게 들리실지도 모르지만, 실제 생활 속에서 우리에게 맡겨진 ‘세상’은 내 삶의 자리 바로 그 곳입니다. 직장이 될 수도 있고, 가정이 될 수도 있고, 교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안에서 나에게 주어진 자리가 바로 나에게 맡겨진 세상이며, 거기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살며 거기서 맡겨진 책임을 최선을 다해 감당하고 또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의 유익을 최선을 다해서 섬기는 것, 이것이 참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리가 이 땅위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아 존재하며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귀하고 아름답게 사람을 만드시고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일을 맡기신 다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여섯째 날 마지막으로 하신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항상 음식을 먹으면서 살아가고 있어서 음식을 먹으며 살아가는 일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실제로 곰곰히 생각해 보면 사실 우리가 음식을 먹어야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진 것은 사실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아무 것도 먹지 않아도 존재하고 또 살아갈 수 있게 만드실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동물들과 사람을 이렇게 만드신 것은 그래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물들과 사람이 똑같은 원리로 살아가게 만들어 졌지만, 오늘은 사람의 경우만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먹어야만 살 수 있다’. 거꾸로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이것은 사람의 생명은 식물을 먹는 일에 철저하게 의존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우리들을 위한 아주 중요한 메시지가 숨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은 비록 모든 피조물들 중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귀하게 지음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절대로 혼자만으로 충분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자기 바깥에서 공급되는 음식물이 없으면 생명이 지속될 수가 없습니다.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사람이 먹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은 사람으로 하여금 항상 자신이 무언가에 의지해서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또 기억하게 하시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주신 생명의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 생명도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생명이 유지되는 것 또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만들어 놓으시고 또 음식으로 허락하신 것들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무언가를 먹는다는 것 자체가 은혜이지만, 동시에 사람은 무언가를 먹으면서 항상 자신이 혼자서는 존재하고 살 수 없는 피조물이라는 것을 기억하도록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인간을 인간의 자리에 머물러 있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안전장치였던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밥을 먹고 그렇게 해서 힘을 얻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우리에게 주신 것으로 인해서 감사하곤 하지만,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그럴 때마다 내가 무언가에 의지하지 않으면 생명조차도 유지할 수 없는 그런 상태에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굉장히 겸손해 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섭취하는 음식이란 실은 우리 자신이 아닌 또 다른 생명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무언가를 먹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실은  항상 우리의 생명을 또다른 생명에 의지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피조물들 앞에서 굉장히 겸허하게 만들어 줍니다. 


    여섯째 날까지의 창조를 마치신 후, 하나님께서는 일곱째 날에는 쉼을 가지셨습니다. 안식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실 하나님은 쉬실 필요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 분은 피곤해지거나 재충전이 필요하지 않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 날에 쉼을 가지셨을까요? 저는 이것이 하나님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라 우리들, 그러니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지만 결코 하나님이 아닌 불완전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것을 막고 그래서 스스로 교만해 지는 것을 막기 위한 날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이라고 부르는 것은 인간이 자기 바깥에 세상에 자신의 능력을 사용함으로써 결과를 만들어 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이라는 것은 인간을 교만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일하고 그 결과를 손에 쥐는 일을 계속해서 반복하면, 그 모든 재료와 능력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다는 것을 잊고 마치 자신의 능력으로만 그 모든 것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스스로가 하루를 쉬시고 그 날을 사람들에게 쉬는 날로 정해주심으로써 그 반복 되는 고리를 끊고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게 해 놓으셨습니다. 그 날에 쉼을 가지면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셨던 것은 그와 같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윌리엄 윌버포스라는 영국의 노예해방을 이루었던 사람은 그 어떤 것보다 주일을 주일답게 지키는 일을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그 이유는 주일이 자신을 자신으로 돌아가게 하고, 이 세상을 세상으로 돌려놓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신없이 한주간을 살다보면 자신이 너무 커지든지 또 너무 작아집니다. 그리고  이 세상은 커져만 갑니다. 원래의 크기보다 터무니 없이 부풀려지거나 혹은 쭈글어 들고 맙니다. 그런데 주일날 예배를 드리면서 자신과 이 세상을 하나님 앞에 놓으면 나는 나의 크기로 되돌아가고, 이 세상은 이 세상의 원래 크기로 되돌아 갑니다. 그러면 다시 원점에서, 올바른 자리에서 삶을 살고 또 맡겨진 사명을 감당할 힘을 얻게 되었기 때문에 그는 주일을 주일답게 지키는 일을 그렇게 소중하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우리말 성경에서 ‘안식하다’라고 번역된 말은 그대로 번역하면 ‘그치다’, ‘멈추다’라는 뜻이 됩니다. 그러니까 참된 안식은 ‘멈춤’이 되는 셈입니다. 그리고 멈추지 않으면 안식이라고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기에 우리가 주일을 주일답게 지키고,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크기로, 세상은 세상의 크기로,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크기로 되돌아가게 하는 비결이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의 안식일을 참으로 복되고 거룩한 날이 되게 만드는 비결이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주일에도 이런 저런 일을 합니다. 교회를 이룬 지체로서 교회를 섬겨야 하니까요. 그러나, 이런 일들은 결코 다른 일처럼 해서는 안됩니다. 성과를 내기 위해서,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 그리고 자기 스스로의 만족을 얻기 위해서 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 모든 일들은 ‘멈추어 선 일’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목적으로, 그리고 교회의 다른 지체들을 유익하게 하기 위한 목적에서 행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는 일들이 어떤 일이건 그 일은 ‘멈춰선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일을 하면서도 나와 이 세상, 그리고 하나님을 원래의 크기,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안식일인 주일을 거룩하고 복된 날로 누릴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피조물들입니다. 결코 혼자만으로 충분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당여한 소리를 왜 하느냐구요? 그렇죠?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가장 많이 잊어버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음식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는 생명을 주신 것과 안식일을 주신 것은 우리가 피조물의 자리에서 겸손하게 그렇지만 가장 온전한 삶을 살아가게 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 두 가지는 우리에게 필요와 안식을 누리게 하시기 위해 주신 복된 것들이지만 동시에 우리 영혼을 위한 안전장치이기도 한 것입니다. 


    음식물을 대하실 때마다 겸손과 겸허를 배우시고, 주일을 지낼 때마다 나 자신과 세상을 하나님 앞에서 제 크기와 제 자리로 돌려보내는 회복을 경험하시는 복을 누리며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신 세상에서 아름다운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