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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7.04.새벽예배 -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세기 12)


창0218to25- 돕는 베필을 지으리라(창12).pdf


20130704D (#01).mp3.zip




본   문 : 창세기 2장 18-25절



우리가 이미 지나온 창세기 1장 27절을 보면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본문은 그 구체적인 과정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오늘 말씀은 결혼식 주례를 위한 말씀으로 사랑받는 말씀입니다. 저도 주례를 할 때마다 거의 이 본문을 택하게 되는데, 그것은 이 본문만큼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 대해서, 그리고 부부의 관계에 대해서 풍성한 교훈을 주는 본문이 드물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 본문은 굉장히 아름답고 감격적입니다.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세심한 사랑이 표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처음 아담이 하와를 만났을 때의 그 감동과 기쁨이 그대로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일차적으로는 남자와 여자, 특히 부부지간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은 모든 인간관계의 원래 모습을 담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는 최초의 남자와 여자요 부부였을 뿐만 아니라, 함께 어울려 살도록 지음받은 최초의 두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의 처음 모습 안에는 우리 모두가 잃어버린 참된 인간 관계에 대한 원래 그림이 그려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오늘 본문은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아서 하와를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각각의 피조물들을 만드신 후에 ‘좋다’고 말씀하신 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사람들은 혼자서 자기 힘으로 모든 것을 알아서 하는 사람을 ‘능력자’라고 부릅니다.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특별한 사람으로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혼자서 사는 것, 혼자서 다 알아서 하는 것은 과히 좋은 것, 그리고 선한 것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혼자서 사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셔서 돕는 배필을 만드시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것은 별로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존심 상하는 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원래부터 인간은 혼자로 충분하게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서로 도와주고 또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야만 더 풍성하고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고, 또 그러한 관계 안에서 더 온전하고 풍성한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믿는 사람들은 서로 도움을 주고 또 도움을 받는 일을 상식과는 다르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특히 도움을 받는 일에 대해서는 더욱 더 그래야 합니다. 그것은 폐만 끼치는 일도 아니고 또 자존심 상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른 이들의 도움을 기쁘고 감사하게 받는 일 또한 그 사람을, 그리고 나를 더 아름답게 하는 일입니다. 단, 도움과 섬김을 받을 때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거나 그 일에 대해서 뻔뻔해 져서는 안됩니다. 이 두 가지만 조심하면 남을 도와주는 일은 물론이고 남의 도움을 받는 것 또한 우리의 아름다운 형상을 되찾아가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은 서로를 위한 ‘돕는 베필’의 역할을 해 주어야 합니다. 


두번째로 아담이 처음 하와를 보았을 때, 아담은 하와를 향해 ‘이는 내 뼈 중의 뼈와 살 중의 살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자기보다 더 소중한 자기 자신의 일부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서로를 위해서 갈비뼈를 뽑아준 사이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리는 다 아담의 후손이고 또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하나님의 형상을 함께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때때로 함께 어울려서 살아가다 보면 참 좋지 못한 모습도 볼 수 있고, 또 반대로 내가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대개는 다른 사람의 그런 모습만을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나 또한 나도 모르게 다른 이들을 힘들게 하고 아프게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서로에게서 그렇게 부족하고 또 상처를 주며 힘들게 하는 거친 형상만을 보아서는 안됩니다. 그럴 때일수록 우리가 함께 나누어 가지고 있는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보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래도 그 사람이 나처럼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귀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서로의 기쁨을 위해서 숨겨놓으신 선물들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세째로 25절을 보면,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라고 말하는데, 그들이 부끄러워 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두 사람 사이에 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람직한 관계는 그 사이에 부끄러움이 없는 관계입니다. 그러려면 둘 사이에 죄가 없어야 합니다. 최대한 죄를 없애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관계가 되어야 하며, 정직한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유익만을 생각한다거나 혹은 거짓과 편법, 그리고 불투명한 것들이 끼어들면 부끄러움이 생기게 되고, 그 부끄러움을 가리려는 또 다른 부정적인 모습이 생겨납니다. 처음에는 부끄러움으로 시작되지만 그것은 이내 거친 공격이나 반대편의 분노와 미움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만들고 또 그 안에 거하려면 우리는 스스로 부끄러워할 수 있는 일을 행하지 않도록 애써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관계는 항상 거리낌이 없는 자연스럽고 기쁨 넘치는 관계로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아담과 하와, 두 사람이 최초의 하나님의 백성들이었고 그래서 최초의 교회였다고 한다면 우리는 이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관계의 원리를 교회 안에서도 그대로 적용하려고 애써야 할 것입니다. 비록 우리 사이에는 두 사람 사이와는 달리 이미 죄가 끼어들어와 있고 그래서 그 노력이 굉장히 어렵겠지만, 우리 스스로가 기쁘고 즐거운 교회의 성도가 되려면, 함께 있어서 행복한 교회의 성도로 살아가려면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의 관계 속에 넣어놓으신 우리를 위한 교훈들과 원리들을 우리 공동체 안으로 옮기기 위해서 애써야 할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서로 도와야 합니다. 너는 너, 나는 나. 그래서는 안됩니다. 기꺼이 도움을 주어야 하며, 또 기쁘고 감사하게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또 우리는 언제나 서로 서로가 귀하디 귀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 애써야 하며, 힘들더라도 그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의 귀함을 인정하지 않을 때, 그 교회는 좋은 공동체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째, 부끄러워할 일을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직하고 투명하려고 애써야 하며, 무언가 거리낌이 생겨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서 피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이 세 가지를 행하고 또 잘 지켜낼 때, 우리 교회 안에는 태초에 아담과 하와 사이에 존재했던 그 아름답고 친밀한 관계 속에 있었던 기쁨을 닮은 기쁨이 점점 커져갈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세가지 원리에 잘 순종해서 모두가 행복하고 모두가 기뻐하는 그런 교회로 세워져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