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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7.31.새벽예배 -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창세기 28)




창0601to08 -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창28).pdf


20130731D (#01).mp3.zip




  문 : 창세기 6장 1-8절


사람은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서로 의논하셔서 세 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시기로 서로 합의하셔서 만드신 하나님의 최고의 작품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 즉, 하나님을 닮은 성품과 또 영혼을 지닌 피조물로 창조되었다는 것만큼 인간을 귀하게 만드는 것은 없습니다. 만약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지 않았다면, 인간은 조금 더 복잡한 동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귀하고 또 특별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을 귀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형상은 때로는 정말 없는 것처럼 망가져 버리거나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시기로 작정하시고는 우선은 흙으로 몸을 만들어 주셨고, 그 다음에는 그 코에 생기, 그러니까 하나님의 생명을 지닌 영혼, 다시 말해 성령님을 불어넣어 주심으로써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주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성령님 덕분에 하나님의 온전한 형상이 되었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동시에, ‘생기’라고 표현되는 성령님께서 주시는 생명은 우리에게 불어넣어진 것처럼 언제든지 또 빠져나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처음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따 먹고 죄를 지은 후, 사람은 그 상태로 머물러 있지 못했습니다. 더욱 더 타락해 갔습니다. 이것은 인간 스스로 자신을 지켜내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고, 그래서 자신을 지켜내는 일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그 첫번째 이야기가 우리가 이미 살펴본 가인의 후손의 이야기였다면 오늘 본문에는 그 두번째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땅을 심판하실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지만 또한 인간 타락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사람이 어떻게 해서 더욱 더 타락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있기 때문에, 거기에는 우리에게 아주 귀한 교훈이 담겨져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더 거룩해 지기 위해서, 혹은 우리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 줍니다. 


6장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많은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이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이 구절들에 나오는 사람이 누구인지 또 하나님의 아들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가 참 많지만 이렇게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합니다. 우선 ‘사람’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창세기 2장으로 가야 합니다. 2장 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을 때, 사람이 비로소 생령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생령이 되기 이전의 인간, 그러니까 아직 하나님께서 성령을 불어넣어주시기 이전의 자연적인 생명만을 가진 인간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노아가 태어날 당시 누가 이런 상태의 인간이었을까요? 그것은 가인의 후손들입니다. 가인 이후 죄를 짓고 악한 쪽으로만 갔던 가인의 후손들은 하나님께서 불어넣어주셨던 성령님을 임재를 모두 잃어버리고 다시 ‘사람’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된 가인의 후손들 중에서 딸들이 많이 태어났는데, 이들은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면 누가 하나님의 아들들일까요? 바로 셋의 계열에서 태어난 남자들입니다. 여전히 성령님의 임재를 잃어버리지 않고 살았던, 그래서 여전히 많은 부분 생령으로 남아 있었던 셋의 후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가인의 후손으로 태어난 여자들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아들들, 그래도 여전히 하나님을 인정하며 또 하나님을 섬겼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으며 자기 자신을 과신하며 믿는 자들과 결혼관계를 맺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사실 이 일이 하나님께서 120년이라는 말미를 주신 후에 땅에서 사람과 생명있는 모든 것들을 물로 심판하시기로 결정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이유는 다른데 있습니다. 


모든 심각한 일은 결과보다는 오히려 원인에 더 큰 문제, 그리고 진짜 문제가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 원인은 반드시 그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진짜 문제는 결혼을 했다는 것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을 하게 된 동기가 진짜 문제였습니다. 2절을 보면 그것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미적인 감각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것이니까요. 그렇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만을 볼 때, 그리고 그 아름다움만을 기준으로 해서 가치를 평가하고 또 그것을 선택할 때, 그것은 굉장이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본문이 문제삼고 있는 것은 결혼의 문제, 그러니까 가정을 이루는 문제입니다. 가정을 이루는 일은 한 사람을 평생의 동반자로 선택하는 일이며, 개인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게다가 노아시대에 가족이 가지는 중요성은 절대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가족 안에서 이루어졌으니까요.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들, 그러니까 그래도 하나님을 알고 믿으며 또 섬긴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 중요한 일을 그저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만을 보고서 선택하고 또 결정했습니다. 이것은 노아의 시대에는 이미 셋의 계열에 속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생각없이 그저 보기에 좋은 것만을 선택할만큼 분별력이 없어졌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모든 선택의 기준이 신앙이나 혹은 지켜야할 가치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가지 않고 본능을 기준으로 해서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가장 중요한 결혼의 문제를 그렇게 했다면,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을 정도였다면, 다른 일들은 생각해 보나 마나입니다. 얼마나 쉽게 아무런 생각 없이 눈이 요구하는 대로, 욕심이 바라는 대로 선택했겠습니까? 


이런 사람들의 시대, 이런 사람들의 사회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은 보나마나입니다. 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의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악할 뿐임을 보시고...” 왜 노아의 시대는 세상에 악이 꽉 차 있었을까요? 왜 그들이 생각하는 모든 계획은 악할 수 밖에 없었을까요? 그것은 그의 시대가 모든 일들을 욕심을 따라서만 결정하는 사람들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이미 하나님을 섬긴다는 사람들까지도 그런 방식으로 사는 그런 세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생령은 사라지고 육신만이 남은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사람들이 원하는 모든 것은 다 정당한 것이라고 생각되는 시대입니다. 다른 사람을 직접적으로 해치지만 않는다면 인간이 욕망하는 모든 것은 정당하고 또 선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우리들 또한 그런 세상 속에 고스란히 노출되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사고방식의 영향을 받으면서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인간의 욕망은 절대로 그것 자체로 선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그것 자체로 정당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이미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기에 좋은 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대로 선택하며 살았던 노아의 시대는 죄악이 땅에 가득 찬 시대였고 사람들이 계획하는 모든 것이 다 악한 시대였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한탄이었고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그 때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까지도 그런 방식으로 살았기 때문에 결국 노아의 가족만을 남기고 모든 인간들은 물로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더럽혀진 땅과 그 땅을 더럽힌 사람들을 물로 씻어버리실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제가 오늘날의 한국기독교를 바라보면서 가장 우려하는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지금 한국 기독교는 탐욕이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목회자도 장로도 그리고 성도들도... 교회 안에서나 개인의 삶에서나 욕심을 가지는 것이나 그 욕심을 채우면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경기도에 있는 어느 교회가 200억이 넘는 돈을 대출해서 교회를 지었다가 결국 그 교회건물을 경매로 내놓았다고 합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모두 다 탐욕 때문입니다. 큰 교회의 목사가 되고 싶은 탐욕, 큰 교회, 다 갖추어진 교회의 성도가 되고 싶은 욕심 때문입니다. 


욕심은 이루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실은 다스려야 할 대상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바른 것만을 욕망하는 감각을 잃어버린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진짜로 욕심을 부려야 하고 또 얻어야 할 바른 것들이 무엇인지는 배워야만 알 수 있는 그런 상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눈으로 보기에 좋은 것, 그리고 내 마음이 욕망하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사람의 딸들과 결혼했던 하나님의 아들들이 됩니다. 결국 자신과 이 세상에 하나님의 후회와 진노가 쌓이게 하는 장본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이 세상에 의미있고 가치있는 존재가 될 수 있고, 또 자신도 영광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을 조심해야 하며, 그 눈을 통해 들어오는 욕심을 은혜 안에서 잘 다스려 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잘 간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