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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8.08. 새벽예배 -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창세기 34)



창0820to22 -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창34).pdf


20130808D (#01).mp3.zip




  문 : 창세기 8장 20-22절



노아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120년 이라는 세월을 방주를 만드는 일에 쏟아부어 그 동안 다른 사람들의 무시와 멸시라는 극심한 영적인 스트레스를 견디어 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방주에 들어갔다고 해서 모든 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습니다. 노아는 그 방주 안의 모든 사람들과 또 짐승들을 하나님께서 다시 땅으로 나와 살게 해 주실 때까지 잘 돌보고 안전하게 보호해 주어야 하는 책임이 주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그 짐과 스트레스에서 해방될 수 있는 날이 찾아왔습니다. 방주를 만들기 시작한지 121년이 지난 다음, 홍수가 시작된지 1년 10일이 지난 다음에 그 날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는 방주의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이미 이 세상이 노아와 동물들을 온전히 양육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이제 노아는 바깥으로 나왔습니다. 그 동안의 모든 책임과 마음의 무거움을 벗어버리고 홀가분하게 태양이 밝게 빛나는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요즘 텔레비젼에서는 정글이나 오지에서 야영을 하고 생존하는 것을 방영하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출연한 사람들이 귀국을 하게 되면 거의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거나 목욕탕을 가는 일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뭔가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환경에서 놓여 자유롭게 되면 제일 먼저 자신이 가장 하고 싶어하던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일이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그것이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인지상정이죠. 이제야 말로 노아는 자유였습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노아가 했던 일은 그 어떤 일도 아닌 하나님께 제단을 쌓아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는 일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제사는 율법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제일 먼저 땅을 밟으면 나에게 제사를 지내라고 하신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땅을 밟자마자 제일 먼저 돌을 모아서 제단을 쌓았고 하나님께 제사를 지냈다는 것은 이 일이 노아가 배에 있으면서 하지 못했던 일들 중에서 가장 하고 싶어했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제사는 오늘날로 하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방주 안에 있으면서 다른 그 어떤 일보다도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에게는 가장 중요한 의무입니다. 삶으로 드리는 예배든지, 시간을 정해서 드리는 예배든지 예배는 사람에게 맡겨진 가장 중요한 소임입니다. 그런데, 노아는 제사를 드리는 일을 의무를 넘어서서 자신이 가장 즐거워 하는 일, 가장 하고 싶어 하는 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예배드리고자 하는 욕구가 1년 넘게 억눌려 있었던 것이고, 그래서 방주에서 나오자 마자 제단을 쌓고 제물을 잡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렇게 제단을 쌓고 또 제물을 드리는 노아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얼마나 흥분되고 즐거웠을까요? 


원래 사람 안에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고자 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욕망이 죄 때문에 다른 곳을 향하게 되고, 또 한 번도 참된 예배를 드린 경험이 없어서 그 만족과 기쁨을 알지 못하게 되어서, 또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섬기는 즐거움에 빠져 있어서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희미해져 버렸습니다. 만약 어떤 성도가 자신은 예배를 드리거나 드리지 않거나 별로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 성도는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이기가 쉽습니다. 무슨 이유에서건 나의 영혼이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하는 욕구를 상실해 버린 것이죠. 그러나, 이런 상태로는 전혀 기쁨을 알 수 없고, 만족을 누릴 수 없으며, 가슴벅찬 은혜를 얻을 수도 없습니다. 이러한 복들은 사람이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드릴 때만 알 수 있고 또 누릴 수 있는 복들이기 때문입니다. 


예배에 대한 소원이 없다는 것, 예배에 대한 갈증이 없다는 것, 예배를 드릴 때 아무런 흥분도 기쁨도 없다는 것. 이것은 정상적인 영혼의 상태가 아닙니다. 건강한 영혼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즐거워 합니다. 그래서 예배드리는 것을 기다리며, 또 예배 드리기를 원합니다. 그 이유와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하더라도 예배에 대한 갈증과 열정, 그리고 예배에 대한 기대는 분명히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영혼을 기쁘게 하고 충만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며 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서도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제사를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번제로 드려진 제물이 타는 냄새를 향기롭게 받아주셨습니다. 노아의 제사가 결코 의무에서 형식적으로 드려진 것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그 제사에는 하나님을 향한 노아의 마음이 담겨져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린 노아의 제사는 노아에게도 큰 기쁨이고 위로가 되었지만 하나님께도 큰 기쁨이 되고 위로가 되었습니다. 노아의 제물이 올려드리는 연기를 향기롭게 받으신 하나님은 이렇게 생각하셨습니다.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속하는 바가 어려서 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는 멸하지 아니하리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이러한 생각 속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 동안 하나님의 마음이 편하셨을리가 없습니다. 손수 자신이 아름답다고 하신 모든 것들과 또 자기 형상대로 지음받은 모든 사람들을 물로 심판하셨으니까요. 이런 하나님께 노아와 노아의 마음을 담은 기쁜 제사가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면 외람된 표현일까요? 


저는 노아의 마음을 다한 제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렸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크게 위로해 드렸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아는 성경의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피조물을 통해 기쁨을 얻으시고, 위로도 얻으시는 하나님, 저는 이런 하나님이 너무 좋습니다. 이런 하나님 속에서 우리의 감정도 연약함도 설 자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진실로 이해할 수가 없으실 것입니다. 


노아의 마음이 전부 담긴 제사는 온 세상을 위한 화목제였습니다. 그 제사를 받으신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온 세상을 물로 멸하시는 일은 하지 않으시겠다고 뜻을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노아의 제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몸을 제물 삼아 힘들지만 기쁘게 드리셨던 우리를 위한 화목제를 닮아 있습니다. 노아의 제사가 예수님의 화목제를 닮아 있다면,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도 충분히 그런 살아있는 제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을 기뻐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즐거워 하며 마음을 담아서 예배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그 예배를 화목제로 향기롭게 받으시고 그 만큼의 은혜를 세상과 사람을 향해 내려주실 것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들 속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예배자들을 찾으시는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서 기쁨을 얻으시고, 불신의 세상에서 위로를 얻으시며, 그래서 다시 한 번 세상을 향해 기회를 주시려고 말입니다. 


예배가 우리가 가장 바라고 기뻐하는 일이 될 때, 그 예배는 우리에게도 가장 기쁘고 즐거운 일이 될 뿐 아니라 하나님께도 기쁨이 되고 위로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배는 이 세상과 또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는 통로가 되어질 것입니다. 


예배자로서 꼭 노아의 마음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예배를 향한 갈증과 기대, 그리고 흥분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그런 예배자를 찾고 기다리십니다. 우리 모두 오늘을 사는 노아가 되어서 우리 자신과 온 세상을 위한 화목제를 드리는 참된 예배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