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예배

2013.09.01.주일오전 - 오직 예수와 자기들 뿐이었더라(마가복음 41)



막0901to13 - 오직 예수와 자기들 뿐이었더라(마가41).pdf


20130901SM (#01).mp3.zip




설교본문 : 마가복음 9장 01-13절



언젠가 굉장히 힘든 마음으로 가스펠 가수인 송정미씨의 찬양 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마음이 힘들고 낙심해 있을 때,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하는 것보다 더 좋은 치료약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 날도 어김 없이 하나님께서는 찬양 중에 저에게 큰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 은혜는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경험한 적이 없었던 크고 놀라운 은혜였습니다. 집회 중간에 지금은 찬송가 288장이 된 찬송가 204장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서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 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1절과 2절을 부르고 3절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주 안에 기쁨 누리므로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 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리로다” 눈을 감고 묵상하면서 찬송하는데, 갑자기 찬송가의 가사가 눈 앞의 현실이 되었습니다. 갑자기 마음이 평안해 졌습니다. 정말 마음의 풍랑이 잔잔해진 것입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갑자기 제 마음 속에 끊없는 우주의 그림이 펼쳐지는데, 거기는 정말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 자신마저도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온 우주를 하나님만이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제가 경험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었고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이신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저는 제가 힘들다고 끙끙거리며 낙심해 하는 그런 문제들도 하나님께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하나님은 정말 크고 광대한 분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때 느꼈던 그 기쁨과 그 영광이 얼마나 놀랍고 또 좋던지 저는 그 때 그 순간이 끝나지 않도록 붙들수만 있다면 꼭 붙들고 싶었습니다. 


커다란 은혜의 순간을 만나게 될 때, 사람은 누구나 같은 마음을 품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은혜의 순간이 끝나지 않고 계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품게 되는 것이죠. 너무 너무 좋으니까요. 그래서 그런 순간이 계속되게 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기도원을 찾아다니고 무슨 특별한 집회가 있다고 하면 빠짐없이 참석하기도 합니다. 산 위에서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지켜보았던 세 사람의 제자들도 똑같았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목격한 제자들은 그야말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릴 정도의 황홀함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그 순간을 영원히 머물게 하고 싶어졌죠. 베드로의 이야기는 그러한 그들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갑작스런 은혜에 베드로가 정말 정신이 없기는 없었나 봅니다.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다고, 그래서 여기 머물자고 해 놓고서 정작 자신들이 머물 집은 빼먹고 집 세 채만 짓자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구름이 몰려와 세 사람을 덮었습니다. 구름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구름이 세 사람을 덮었다는 것은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세 사람을 둘러 쌌다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이들을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넣으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런 경험을 한다면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아마도 ‘이제 됐다. 이렇게 영광스러운 가운데 여기 영원히 살든지 이대로 하늘로 올라가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아마 제자들도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잔뜩 그런 기대로 부풀어 올랐겠죠.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에 둘러싸여있는 그들에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귀에 갑자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나머지 공부는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으로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영광스럽게 변화되신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여전히 예수님을 ‘랍비’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들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둘러싸시고 직접 “저 예수는 내 아들이다. 너희는 예수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난 후 그들을 둘러쌌던 영광은 온데 간데 없어졌습니다. 이제 제 정신으로 돌아온 세 사람에게 보이는 것은 그들의 눈 앞에 여전히 서 계신 예수님 한 분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 사람에게 아주 특별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특별히 무디고 고집 센 사람들이었고, 너무 심하게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에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세 사람에게 그 누구도 경험할 수 없는 엄청난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찬란한 빛을 휘감고 영광 중에 계신 예수님을 보았고, 그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시는 것도 보았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직접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 가운데 들어가기도 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허락하신 것은 하늘영광에 대한 경험이었습니다. 세 사람은 하늘의 영광을 보기도 하고 직접 경험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하늘의 영광을 맛보는 은혜를 누린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이 이 땅 위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기쁘고 황홀한 경험일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 은혜 자체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지만 그 은혜를 경험하게 되면 거기 집착하게 되고 거기 매달려 그것만을 위해서 살게 되기가 쉽습니다. 이것에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위험이었습니다. 우리들도 제자들처럼 이 땅 위에서 하늘의 영광을 맛보는 은혜를 꼭 받아야 합니다. 저는 소망하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하늘영광을 맛보는 은혜를 얻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여러분도 함께 소망하며 꼭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모두 그 은혜를 꼭 받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하늘영광을 맛보게 하시고 또 소망하게 하시는 것은 그것 자체에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특별한 은혜인만큼 아주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 영광을 바라보는 소망과 기쁨을 통해서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살아갈 힘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늘영광은 너무 좋은 것이기 때문에 올바른 사용법에 따라서 제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항상 부작용이 생깁니다. 그 부작용을 막는 방법이 바로 하늘의 영광을 이 땅의 삶과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면 거기서 영원히 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다 시피 그냥 그 나라에 영원히 거하게 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히 거하되 영광을 누리며 거해야 합니다. 그 영광스러운 나라에서 영광없이 지낸다는 것은 그렇게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테니까요. 그렇다면 우리가 하늘나라에서 누리게 될 영광은 무엇으로 결정될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이 땅에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갔던 우리의 삶으로 결정됩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하늘나라를 빼면 이 땅 밖에 남지 않으니까요. 제가 깨달은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기서 살게 하시는 100년도 안되는 시간은 하늘나라에서 누릴 영원한 영광을 준비하라고 주신 기회라는 것을 말입니다. 하늘나라의 영광에 대한 소망은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줍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을 대하는 자세와 마음을 완전히 달라지게 만들어 줍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이 땅에서의 자기 인생의 참된 가치와 의미를 잘 모르고 살아가는 이유는 그들에게 하늘나라가 분명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의 영광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의 마음 속에 하늘의 영광을 맛보아 아는 이 은혜가 부어진다면 분명히 사는 모습이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늘나라를 위해서 이 땅 위에서의 삶을 투자하게 될 것이고, 그래서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려고 애쓰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전에는 누리지 못했던 소망과 기쁨 가운데 확신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냥 예수님을 흉내내며 살라고 한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한다면 그것이 아무리 가치있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굉장히 지기 어려운 짐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늘 영광을 얻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또 그 하늘 영광이 얼마나 좋은 것이라는 것을 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훨씬 더 쉽게 지고 갈 수 있는 짐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세 사람의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영광과 하늘에서 누리게될 영광을 미리 맛보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 짐을 가볍게, 그리고 기꺼이 지고 가게 해 주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영광을 맛보게 해 주시는 것은 땅에서의 삶을 온전히 살 수 있게 해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땅에서의 삶을 온전하게 살아가야 하늘의 영광을 받아누릴 수  있게 되니까요. 결코 땅 따로 하늘 따로가 아닙니다. 하늘과 땅은 이렇게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늘영광의 소망은 이 땅에서의 의미없는 삶을 영원히 가치있는 것으로 만들어 주며, 땅에서의 삶은 하늘에서의 영원한 삶을 영광스럽게 만들어 줍니다. 항상 이 원리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어떤 곳을 향해서 가려고 할 때, 목적지만 안다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까지 가는 길을 알아야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영광이 우리가 도착해야할 마지막 목적지가 되어야 한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떻게 하면 그 영광을 향해 갈 수 있을지 그 길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은혜로운 분이신지 “너희들은 이 땅에서 하늘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말하시고는 “그런데 나머지는 너희가 알아서 해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정말 감사하게도 오늘 본문 속에 그 방법까지도 포함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자들을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넣어놓으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이 음성이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맛보고 있는 그들에게 들려졌다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들 또한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음성은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중요한 음성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하신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은 일단은 그 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고, 믿고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신앙에 있어서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말씀은 듣는 것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니라 믿고 순종해야 하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들은 이후의 일입니다.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 가운데서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 중 많은 분들이 방향없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믿기는 믿는데,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또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열심을 냅니다. 그 이유는 가장 우선되어야 하고 또 항상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를 잊어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속에 우리 믿음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 속에 그 목적을 향해 가야할 길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에 귀를 잘 기울이지 않고, 그 말씀을 신앙의 기준으로 삼지 않습니다. 그러니 가기는 가는데 확신도 없이 가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숨겨진 보물을 찾으러 가는 사람이 지도도 가지지 않고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영광에 대한 소망이 크면 클수록 그 사람에게는 말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말씀 앞에서 겸손히 귀를 기울이는 것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하늘을 바라본다는 것은 결국 그만큼 땅 위에서의 삶을 가볍게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서 무책임해지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종말이 온다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산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우리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목적지를 잊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들을 때 어떤 길로 가야 할지 그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의 목적지가 올바른 목적지인지 점검하시고, 내가 가는 길이 바른 길인지를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이 가리키는 올바른 목적지를 향해, 말씀이 보여주는 바른 길을 따라서 믿음의 여행을 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이제 하나님의 음성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제자들을 둘러싼 구름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문득 제자들은 정신을 차렸습니다. 성경은 그 때의 광경을 이렇게 전해 줍니다.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 뿐이었더라.” 한 차례 엄청난 폭풍같은 은혜가 지나갔습니다. 마치 하늘나라가 땅 위에 이루어진 것 같았고, 그 나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음성도 직접 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놀라운 것들을 다 거두어 가신 후에, 제자들의 눈 앞에 예수님만을 놓아두셨습니다. 다시 초라하게 때가 탄 옷을 입고 계신 예수님만 보이게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질병 때문에 목숨을 걸고 세 번이나 기도했을 때, 그 세번째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나의 은혜가 너에게 충분하다” 하나님께서 어떤 것만을 허락하시고 다른 것들을 주지 않으시는 것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영광스럽고 은혜스러운 모든 광경들을 다 거두어 가시고 그들의 눈 앞에 예수님만 있게 하셨던 이유는 앞으로 제자들이 예수님을 흉내내며 하늘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데에는 예수님만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입니다. 


선한목자 교회를 섬기시는 유기성 목사님은 요즘 한국 교회에 아주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 분이 날이면 날마다 입만 여시면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24시간 예수를 바라보자”라는 것입니다. 이 단순한 말 한 마디가 그렇게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유기성 목사님은 목사가 되어서도 굉장한 욕심과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군목으로 일하던 어느 날 생명까지도 보장받을 수 없는 큰 수술 앞에서 그러한 자신을 죄를 회개하게 되었고, 결국 자신이 바라보아야 할 것은 예수님 한 분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분의 삶과 사역이 완전히 달라지게 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고 합니다. 그 깨달음에 따라서 스스로 24시간 정말 예수님만 바라보려고 애쓴 결과 욕심도, 미움도, 원망과 불평도 사라지게 되었고, 목회 현장에서 만나는 모든 성도들 또한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은혜가 너무 좋아서 그 뒤로 이 목사님은 그 이야기만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보아도 너무 심할 정도로 지금도 그 이야기만 하고 계십니다. 그렇지만, 그 분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를 믿고서 승리하며 살아가는 삶에는 예수님만을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하며 또 그것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또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찌 그것을 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찌 그것을 외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 또한 그랬습니다. 제가 예수님만 바라보기로 작정한 연유는 조금 달랐지만 결론은 같았습니다. 저는 정말 예수님 한 분 만 바라보고,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지 않는 한, 저의 삶도 사역도 전혀 답이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그렇게 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 때부터 사는 것도, 사역하는 것도 정말 예수님께만 눈길을 두고, 예수님으로만 만족하면서 하려고 애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러면서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예전에 그렇게 하지 않을 때는 얼마나 힘들고 화가 날 때가 많았는지 모릅니다. 낙심과 절망, 불안함도 있었구요. 그러니 제 사역도 여기 저기 삐걱거리고 소리를 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힘은 힘대로 들면서도 말이죠. 그렇지만 이 일이 진행되어져 갈수록 제 안에서는 이런 것들이 조금씩 조금씩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완전하지는 않아서 자꾸 못되고 부정적인 마음이 고개를 들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다시 주님을 생각하며 주님한 분 만으로 만족하려고 하면 다시 제 자리를 찾곤 합니다. 요즘 저는 문득 문득 제 마음과 생각을 괴롭히는 분노나 혹은 파괴적인 생각들이 찾아올 때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 내가 지금 예수님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구나!”하고 말입니다. 그리고서 더 예수님을 제대로 바라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결국 저는 그런 부정적인 것들 덕분에 오히려 예수님을 더 온전히 바라보는 연습을 하는 셈입니다. 예수님만을 바라보기로 작정하니까 결국 이런 좋지 않은 것들까지도 저를 도와주는 것 같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릅니다. 


사실 제가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만으로 만족하기로 하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그것이 굉장히 막연했습니다. 그렇게 해 달라고, 그렇게 하겠다고 기도는 했지만, 그리고 예수님을 생각하는 시간도 늘어나고 그래서 삶과 사역의 변화가 조금씩 생겨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뭔가 구체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성경을 묵상하다가 그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계속 그냥 지나치던 돌이 알고보니 금덩어리였다는 것을 비로소 발견했다고 할까요? 항상 지나치던 구절이 그 답을 주었는데요. 그 구절은 바로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나오는 말씀이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어떻게 사도 바울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신뢰 안에서만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코끼리가 미련해 보이지만 실은 정말 영리한 동물이 코끼리입니다. 코끼리는 다리를 건너갈 때, 항상 한쪽 다리를 올려놓고 힘껏 쿵쿵거려 본다고 합니다. 그런 후에야 그 다리를 건넌다고 합니다. 이것은 코끼리에게 다리의 안전을 평가하는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다는 말이고, 코끼리는 그 기준이 만족되었을 때에야 그 다리를 건너간다는 뜻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어떤 부분에서건 우리에게 만족을 주는 대상만을 믿고 신뢰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예수님만으로 만족하면서 살아간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자들 앞에 예수님 한 분만 남겨 놓으신 것은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 때는 깨닫지 못하겠지만 앞으로는 깨닫고 그 길을 갈 것을 생각하시고서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데 뭐 대단하고 엄청난 것들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는 그저 믿음 안에서 나의 삶과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일들에 최선을 다하면 나머지는 예수님께서 알아서 채워주시고 책임져 주신다는 믿음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그런 믿음이 있으면 정말로 그런 충분하고 만족스런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걱정도 근심도, 불만이나 불평도 사라져 가는 그런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그 힘으로 우리는 훨씬 더 수월하게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늘영광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 믿음으로 사는 우리들에게는 더 이상 내 힘으로 내가 내 인생을 책임져야 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마음에는 하늘의 영광을 가득 품고, 귀는 주님의 말씀을 향해 열어 놓으며, 눈으로는 주님만 바라보며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을 흉내내면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비결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우리의 구원을 최고로 영광스럽게 만들어 주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이제 이렇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마음에는 하늘영광을 품고, 귀는 예수님의 말씀을 향해 기울이시며 눈으로는 예수님만 바라보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면 족하다는 믿음, 예수님이 나를 위한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어주신다는 믿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 땅에서의 삶도 만족하고 든든해질 것이고, 다함이 없는 하늘의 영광도 우리를 위한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이 방법을 따라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서 하늘의 영원한 영광에 이르는 복을 누리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