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9.05.새벽예배 - 소돔까지 이르렀더라(창세기46)



창1301to13 - 소돔까지 이르렀더라(창46).pdf


20130905D (#01).mp3.zip




  문 : 창세기 13장 01-13절


좋지 않은 일로 인해 생겨나는 시험도 힘든 시험이지만 정말 알아차리기 쉽지 않고 또 이겨내기 어려운 시험은 좋은 일들이나 좋은 것들이 주는 시험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눈 앞에 있는 좋은 것이나 좋은 기회를 무조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굉장히 위험한 유혹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좋지 않은 것들을 제대로 다루는 영적인 실력도 필요하지만 좋은 것들, 정확하게 표현해서 좋아 보이는 것들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영적인 실력은 더더욱 필요합니다. 


아브람은 바로가 준 재산을 가지고 애굽을 떠났습니다. 그리고는 그가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들어와서 제단을 쌓고 처음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던 곳으로 돌아왔습니다. 그곳이 바로 벧엘과 아이의 사이였습니다. 애굽에서 받아가지고 온 것도 많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곳에 정착한 아브람에게 계속해서 약속대로 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라고 말할 정도로 재산이 크게 불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더불어 롯에게도 복을 주셔서 롯의 재산도 굉장히 늘어났습니다. 당시의 가장 중요한 재산은 양이나 소 같은 가축이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늘어나자 그 지역의 목초지가 아브람과 롯의 모든 짐승들을 먹이기에는 부족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꾸 아브람의 종들과 롯의 종들 사이에는 마찰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아브람은 조카 롯과 헤어지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둘 중 하나는 거기 남고 나머지 하나는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아브람은 롯을 언덕으로 데리고 올라가서 조카에게 마음껏 택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롯은 기름진 땅을 골랐습니다. 그곳은 요단들이었고, 성경은 그곳이 마치 에덴동산처럼 아름다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렇게 해서 아브람과 조카 롯은 헤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이 이야기를 읽어보면, 롯이 요단들을 선택한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지혜롭고 당연한 선택처럼 보여집니다. 풍성한 곳, 아름다운 곳을 그렇지 않은 곳보다 좋아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인지상정이니까요. 그러나, 롯은 요단들을 선택하는 과정에서도 그랬고, 그 곳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도 몇가지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됩니다. 


첫째, 그가 요단들을 선택한 것은 단순히 아름답고 풍요로웠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요단들이 에덴같고 또 애굽 같았다고 표현할 정도로 요단들은 풍요롭고 아름다웠습니다. 이것만 놓고 보면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10절에 보면, 롯이 선택한 곳에는 소돔과 고모라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롯은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롯은 눈에 보이는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을 바라보느라고 그 속에 숨겨진 죄악의 유혹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롯이 요단들로 이사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멸망당하는 것을 보면 이미 이 시점에서 그 두 성은 심각하게 타락해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롯은 두가지 모두를 보았어야 합니다. 요단의 풍요로움과 소돔과 고모라의 타락을 함께 보았어야 합니다. 그리고 냉정하게 판단했어야 합니다. 과연 내가 작은 아버지와 헤어져서 혼자 떨어져 갔을 때, 그 성들에서 흘러나오는 죄악으로 오염된 공기의 영향을 받고 죄를 짓게 되지 않을까, 내가 그런 유혹을 이길만큼의 영적인 실력이 있을까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롯은 그저 붕어가 낚시바늘 끝에 달린 미끼를 물듯이 이것 저것 생각하지 않고 요단들을 덥썩 물고 말았습니다. 요단들의 화려함에 눈이 멀어 그 속에 숨겨진 소돔과 고모라를 보지 못했던 롯은 이제 자기 자신마저도 볼 수 없게 되어 감당할 수 없는 미끼를 물었던 것입니다.  


대개 사람은 눈에 보이는 대로 선택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가 낭패를 보는 가장 커다란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육신의 눈으로는 모든 것을 볼 수가 없고, 겉모습으로 밖에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실수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선택하게 될 때, 항상 깊이 생각하고 기도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대개 죄악의 위험은 화려함 뒤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잘 보이지 않지만, 만약 이 위험을 보지 못하면 나중에 그 죄악의 덫에 걸려서 낭패를 보기가 쉽습니다.


두번째로, 롯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화려하게 포장된 죄악에 이끌리어 멸망의 자리로 나아갔습니다. 롯이 요단들을 택한 이유는 그곳이 양떼와 소떼를 먹이기에 좋은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양떼와 소떼를 먹이는 일에 전념해야죠. 그런데, 롯은 이 처음 목적을 잃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12절은 롯이 평지 성읍들을 전전하다가 소돔에 정착하게 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양떼들을 먹이기 위해서 요단들을 택했던 롯이 어떻게 해서 소돔까지 가게 되었을까요? 그는 왜 들판이 아닌 도시로 가게 되었을까요? 성경은 그가 “점점” 옮겨 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롯이 단 번에 소돔성으로 간 것은 아닙니다. 또 그가 처음부터 소돔을 향해 길을 떠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금씩 조금씩 소돔으로 가까이 가게 되었습니다. 소돔의 화려함에 이끌리어 조금씩 조금씩 옮겨가다 보니 결국은 소돔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죄에 유혹에서 안전한 사람이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유혹에 약한 곳을 가지고 있고 그곳이 건드려 지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게 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죄는 그 모양이라도 취하지 말라고 했던 것입니다. 죄악이 위험한 이유는 그것이 조금씩 조금씩 우리의 삶을 장악해 오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요단들의 한 구석에 있어서 잘 보이지 않듯이 죄악도 처음에는 여간해서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단 우리가 발을 떼어서 그 세상으로 들여놓게 되면, 죄악은 서서히 우리를 끌어들이게 됩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죄악에 사로 잡혀 그 속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악은 가장 작을 때에 떠나야 하며, 죄악이라고 느껴지면 관심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롯은 바로 이 일에 실패했고 그래서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거슬러 올라가 보면 다 그가 숨겨진 죄악을 보지 못한 채로 겉으로 보기에 좋은 대로 선택한 그 선택 때문에 생겨난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중간에라도 그러한 삶의 원리를 떠나지 못하고 계속 고집했기 때문에 생겨난 마지막 열매였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삶을 잘 살펴서, 겉으로 보기에 좋아보이는 것들 속에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숨겨진 죄악이나 죄의 유혹이 없는가 주의 해야 합니다. 혹시 요단들 속에 소돔과 고모라가 숨겨져 있는지 잘 살펴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삶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도 주의깊게 살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점점 소돔과 고모라를 향해 가고 있다면 멈춰서거나 그 방향을 돌려야 합니다. 그래야 죄의 파괴적인 결과가 우리 삶을 괴롭게 하고 또 무너뜨리는 일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더 위험한 시험은 좋을 때 찾아오고 또 더 큰 유혹은 좋은 것을 통해서 다가옵니다. 항상 경성하여 성을 지키는 파수꾼 처럼 자신의 삶을 지키시고, 구석 구석 성을 살피는 야경꾼처럼 여러분 삶의 구석 구석을 잘 살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결코 좋은 것 때문에 무너지고 영적이 낭패를 당하는 일이 없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