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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9.12.새벽예배 - 한 가닥도 가지지 아니하리라(창세기 50)


창1417to24 - 한 가닥도 가지지 아니하리라(창50).pdf


20130912D (#01).mp3.zip




  문 : 창세기 14장 27-24절


A와 B 두 사람이 한 가지 문제로 내가 맞다 네가 틀리다 말다툼을 벌이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그 문제에 대해서는 A가 아니라 B가 알고 있는 것이 맞는 답이었습니다. 그리고, B도 자신이 정답을 알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참을 말다툼을 벌이던 B는 어느 순간 갑자기 “그래. 듣고 보니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내가 미안하다.”하고 말하면서 말다툼을 그만두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두 사람 중에서 누가 자존심이 센 사람일까요? 말다툼에서 이긴 사람일까요, 아니면 자신이 맞는 줄 알면서도 승부를 양보한 사람일까요? 흔히 B보다는 A가 더 자존심이 센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승부욕도 강하고 끝까지 자신을 굽히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나, 진짜로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A가 아니라 B입니다. 왜냐하면 B는 그 정도의 일로 끝까지 다툼을 벌이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자존심이란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진짜로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은 작은 문제나 작은 이익에 연연해 하지 않습니다. 그 정도의 일에 매달리고 집착하는 것이야말로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짜로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은 자신이 작아지기 전에, 자신이 쫌스럽게 느껴지기 전에 그렇게 크고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일들이나 혹은 이익에 대해서는 슬쩍 눈을 감거나 혹은 훌쩍 뛰어넘어 버립니다.  


아브람은 삼백 십 팔명의 군사로 대군을 이긴 후에,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정말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단 한 사람이 그 지역 전체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으니까요. 하나님이 한 사람을 통해서 하실 수 있는 일이 얼마나 큰지를 엿보게 해 주는 예라고 할 거 것입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브람은 신비의 인물인 살렘의 왕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을 만났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얻은 것 중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누가 요구하거나 정해진 율법이 있기도 이전이었는데 말입니다. 이것은 아브람이 지금 자신이 가지고 돌아가는 모든 것들이 자신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깨달았고 또 그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 모든 일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정확하게 고백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누군가 작은 힘으로 커다란 전쟁에서 어마 어마한 승리를 거두었다면 그 사람은 그 승리에 도취되어 한껏 부풀어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하나님의 제사장을 만나 자신의 공을 치하받기 보다는 겸손히 하나님께 얻은 것의 십일조를 드립니다. 이것은 이제 아브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그가 경험하는 모든 일의 근본이며 또 전제가 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멜기세덱과 함께 아브람을 환영하러 나왔던 소돔왕은 사람만 돌려주고 전리품들은 다 아브람이 가져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야 말로 생명의 은인에게 은혜를 갚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이것을 일고의 여지도 없이 단호하게 거부합니다. 대개 이런 경우에 그런 제안을 거절하는 것은 전리품 뿐만이 아니라 구해온 사람들까지 다 차지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풍습으로 보면 전쟁에서 이긴 사람은 전리품 뿐만이 아니라 포로에 대한 권리도 그에게 속하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아브람이 소돔왕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는 정반대였습니다. 사람들 뿐만 아니라, 전쟁을 통해 얻은 것까지도 다 내어 줍니다. 찾아온 모든 것을 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단지 전리품으로 원한 것은 정말 별 것이 아닌 것들이었습니다. 바로 이제까지 돌아오면서 자신의 부하들이 먹은 음식과 자신을 도와 전쟁을 벌인 아넬, 에스골 그리고 마므레의 몫만 달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부자여도, 아니 부자이면 부자일수록 더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본능입니다. 돈의 힘과, 권력의 힘을 맛본 사람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하여 더 큰 재산과 더 큰 권력을 가지고 싶어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아브람은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목숨걸고 찾아온 모든 것을 그냥 돌려주었습니다. 주겠다고 해도 마다하고 말입니다. 아브람은 이미 부자였지만 전쟁의 승리로 갑자기 더 많은 부를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 같으면 더 달라고 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주겠다는 것은 다 받아 챙길 것입니다. 그것은 재산 뿐만 아니라 그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넓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니까요. 그러나 아브람은 그 모든 것을 마다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굉장히 소심하게 아주 작은 것, 요즘말로 하면 전쟁에 들어간 최소한의 경비만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나서 아브람은 전리품을 모두 주겠다는 소돔 왕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 실이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람이 소돔 왕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나중에 자신이 소돔 왕 덕분에 부자가 되었다는 소문이 날까 그것이 싫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재물의 유혹만큼 강한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도 유일하게 하나님의 적수로 맘몬, 그러니까 재물을 지목하셨을 정도이니까요. 아무리 자존심이 있다고 해도 재물의 유혹을 떨쳐 버리는 일은 간단치가 않습니다. 수많은 권력자가, 그 꼿꼿한 자존심에도 불구하고 뇌물 앞에서는 속물이 되어 쿵쿵 넘어지는 것을 보면 그 유혹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놀랍게도 이 유혹을 마치 옷에 뭍은 머리카락 떨어내듯이 그렇게 떨쳐 버렸습니다. 부자인 아브람이 돈이 좋은 줄 몰랐을리가 없었을텐데 말입니다. 그것은 그가 믿는 자로서 가지고 있어야 할 자존심이 무엇인지를 잘 알았고 그것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믿는 자로서의 자존심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그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그언 유혹을 쉽게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해서 유혹을 이기고 자존심을 지켜낼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가 다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복의 근원이시라는 것을 믿게 되었고,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만이 진짜 복이 된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믿는 자로서 지켜야할 자존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자존심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이 자존심을 지키는 힘은 우리 자신의 생각이나 심지어는 의지에서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이 나의 복의 근원이 되어주신다는 것을 진짜로 믿는 믿음, 그리고 하나님께서 정당한 통로를 통해서 주시는 것만이 진짜 복이라는 사실을 진짜로 믿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그런 믿음이 있을 때, 불의한 세상이 주는 달콤함에 혹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선한 양심을 버리거나, 분명히 옳은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세상이 주는 편리함과 화려함 때문에 옳은 길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항상 하나님께서 나의 복을 책임지고 계시며, 또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만이 진짜 복된 것임을 믿으시고 불의한 세상을 향해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신발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않겠다”고 당당하게 외치며 사는 세상을 이기는 자존심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