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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10.11.새벽예배 - 농담으로 여겼더라(창세기 63)


창1912to14 - 농담으로 여겼더라(창63).pdf


20131011D (#01).mp3.zip




  문 : 창세기 19장 12-14절



천사들의 개입으로 겨우 목숨을 건진 롯은 천사들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이제 소돔성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 멸망당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소돔성이 멸망당하게 되는 이유는 ‘그들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소돔성 사람들의 죄악때문에 누군가가 부르짖는 소리가 너무 커서 그것 때문에 소돔성은 멸망당할 위기에 처해진 것입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땅에 죄가 만연해지고 또 그 죄가 깊어지면, 비록 모든 사람들이 다 그 죄의 영향으로 타락해 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죄악 때문에 심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항상 탄식하면서 울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잘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죄악 때문에 부르짖는 또 하나의 피조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사람들이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땅’입니다. 성경은 땅이 사람들의 죄악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고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래서 울부짖는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울부짖음이 극에 달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지키시기 위해서라도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을 쫓아낸다고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인간 뿐만이 아니라 그 인간들이 살아가는 땅도 하나님의 소중한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원래 땅과 인간은 비교할 수 없는 피조물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으며 땅은 그 인간이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무대로 지음받았으니까요.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엔가는 하나님 보시이게 그 무대보다도 그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는 사람들이 더 가치없게 여겨지는 순간이 오게 되고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 무대라도 건지시기 위해서 그 무대 위에서 사람들을 몰아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이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다 이 무대 위에서 저마다의 역할을 맡아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라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 모든 드라마의 연출자가 하나님이심을 알고서 연기하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서 또 인정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무대의 배우가 아니라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만 다릅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좋은 연기를 기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연출에 맞게 아름답고 훌륭한 연기를 펼칠 수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캐스팅을 받아서 하나님의 역사 중 한 구석을 담당하고 있음을 알고, 그 부르심에 따라서 충실하게 연기를 하는 우리들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연출자로 인정하며 연기하는 우리들에게 맡기신 가장 중요한 역할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연출자로 인정하지 않고 무대의 주인으로 행세하는 사람들, 그래서 그 무대를 죄라는 어두운 색깔로 물들여 가는 그런 사람들과 함께 연기를 하는 우리들에게 맡기신 가장 중요한 역할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무대가 완전히 어두운 색채로 뒤덮히지 않도록, 그 무대가 빛이 없는 암흑세상이 되지 않도록 계속해서 밝은 색을 칠하며, 또 여기 저기 작은 등불을 밝혀놓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게 해서 이 무대가 땅과 사람들의 부르짖음으로 가득차지 않도록 하는 일이 아닐까요? 


물론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세상의 종말은 오게 되어 있고, 그 종말은 이 세상을 채우는 죄보다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와 더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사회라는 좀 더 좁은 무대를 놓고 보면, 적어도 그 사회의 운명은 그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것과 좀 더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만큼은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상식과 법, 그리고 타인들을 위한 배려라는 일반은총의 영역 속에서,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소명에 대한 순종이라는 특별은총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서 좋은 연기를 펼칠 때 하나님께서 그 사회를 바라보시는 얼굴도 밝은 빛을 띠게 될 것이고, 그래서 그런 사회를 더 선대하실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 사회 안에는 그만큼 부르짖는 사람들도 적을 것이고, 땅의 신음소리도 작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뜻과 소명을 입고서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아는 우리들은 최선을 다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 한국사회, 좁게는 대구, 더 좁게는 이웃이라는 무대 속에서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마이너스를 메꾸는 플러스의 역할을 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들 또한 안전하고 밝은 삶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그 역할을 해내지 못하면 우리가 연기하는 이 무대는 점점 빛이 사라져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소돔성의 운명을 알려주면서 천사들은 상황이 긴급하니 가족이란 가족은 다 성 밖으로 내보내라고 했습니다. 미래의 사위들이라도 있다면 전부 다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롯은 미래의 사위들에게도 찾아가서 곧 있으면 하나님께서 이 성을 멸망시킬 것이니 빨리 이곳에서 떠나야 한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러한 롯의 경고의 메세지에 대한 사위들의 반응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물론 롯의 이야기는 믿기가 쉽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너무나 풍요롭게 누구나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오늘 당장 망할 것이라는 이야기이니 말입니다. 그렇지만 그렇더라도 그 어떤 재고의 여지도 없이 그저 농담으로 여기고 웃어 넘겼다는 것은 그들에게 롯이 어떤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아마도 소돔 사람들은 롯이 하나님과 연관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소돔을 구해준 사건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었고, 롯은 그 아브라함과 함께 지내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테니까요. 그런데, 사위가 될 사람들 조차도 롯이 전하는 그 긴급한 이야기를 그저 농담으로 치부해 버렸다는 것은 그가 소돔성읍 안에서 전혀 하나님과 연관된 사람으로서는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것은 롯이 그들과 함께 어울려 살면서 하나님께서 롯에게 맡기신 역할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고 그래서 그 역할을 제대로 연기해 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사람의 말을 대하는 태도는 곧 그들이 그 사람 자체를 대하는 무게가 어느정도인지를 보여주는 가장 정확한 척도 중의 하나입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이 아무리 떠들어 대도 거기에 귀를 기울여 경청하고 무게있는 반응을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일에 대해서 세상 탓을 합니다만, 실은 일이 이렇게 된 것은 거의 모두가 다 우리들의 탓입니다. 우리가 그들과 어울려 살아가면서 그들 속에서 다른 모습의 무게있는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는 삶의 뒷바침이 없는 우리의 말을 그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귀에 우리들의 말이 들려지지 않는다는 것은 굉장히 심각한 현상입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들려주는 말 속에는 바른 방향에 대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복음도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말이 들려지지 않을 때, 그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전하는 복음도 들려지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롯처럼 아무리 긴급하게 복음을 외쳐도 그들의 귀에는 농담으로 밖에 들려지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싫어도 항상 세상을 향해 무언가를 말하게 되어 있습니다. 귀에 들려지는 말로 그렇게 하기 전에 우리의 삶으로, 우리가 이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펼치는 연기를 통해서 그들에게 메세지를 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말로 전하는 메세지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의미있는 이야기가 되려면 우선 우리의 삶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그들의 귀에 무게있게 들려져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이야기가 그들의 귀에 농담으로 들려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은혜 안에서 믿는 자로서 이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다른 연기를 펼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캐스팅을 받은 연기자로서 무대를 밝고 빛나는 곳으로 만드는 멋진 연기를 펼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입으로 내놓는 대사 한 줄 한 줄이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도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