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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10.24. 새벽예배 -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창세기 70)


창2101to07 -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창70).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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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창세기 21장 01-07절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인내란 것이 종종 오해될 때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볼 때 인내란 그저 어려운 일을 참고 견디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인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신념과 의지이지요. 그렇지만 신앙 안에서 인내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성도들이 인내라는 것을 그저 오래참고 기다리는 것이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에 인내의 부작용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참는 것 자체를 의미있고 가치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저 참고 견디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그러다 보니 그 과정에서 성도들이 굉장히 커다란 마음의 상처를 입어왔습니다. 확실한 이유도 모른 채로 그저 ‘성도는 참아야 한다’고 하니 어떻게 견디기는 견디어 왔는데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없이 그런 일을 그저 견디어 냈으니까요. 신앙적인 의미에서 인내란 믿음의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말씀에 대한 신뢰에서 나오는 열매가 바로 인내입니다. 물론 인내는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내는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인내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의 열매일 때, 그 인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커다란 상처가 없이도 정말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훌쩍 뛰어넘게 만들어 줍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항하셨으므로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에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여러분은 이 두 구절 속에서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사라를 돌보신 것도, 사라에게 특별한 일을 행하신 것도, 그래서 사라를 임신하게 하신 것도, 그리고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아준 것도 모두가 다 현재의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은 그저 아무렇게나 어느날 갑자기 끼어든 우연이 아닙니다. 이 모든 일들은 전부가 다 이미 하나님께서 과거에 분명하게 말씀해 주신 것들이 다 그대로 현실화된 것들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일어나고 있는 놀라운 일들은 과거에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들이 만들어 낸 열매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단순히 아브라함이 100살 때 자녀를 얻는 기적을 경험했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이 사건을 여기 기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하나님께서 한치의 오차도 없이 하나님의 때에 이루셨다는 것을 이야기 해 주기 위해서 이 이야기를 여기에 기록해 놓으신 것입니다. 


첫번째 약속을 주셨을 때부터 그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무려 2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이 25년은 다른 25년하고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20살 때 약속해 주셨다면 그 25년은 길기는 해도 기다리기가 그렇게 힘들지 않은 25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첫번째로 그 약속이 주어진 것이 아브라함이 75살 때, 그리고 사라가 65살 때였습니다. 그러니까 그저 자연적으로만 보면 점점 더 자녀를 낳을 가능성이 희박해져 가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고도 계속 뜸을 드리셨습니다. 우리 기준으로 하면 아얘 밥이 타서 숯이 되고 솟까지 타 없어질 때까지 뜸을 드리셨습니다. 언제까지 그러셨죠? 아브라함과 사라가 자녀생산에 있어서는 완전히 무능해질 때까지, 그 누구도, 심지어는 하나님의 약속을 들은 두 사람 조차도 자신들이 아이를 낳는 일에 대해서 피식거리고 웃을 정도가 될 때까지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 약속이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불가능해 질 때까지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첫번째는 아브라함과 사라가 진짜로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믿는가를 보시려고, 그리고 그 기간동안에 두 사람의 믿음이 더욱 견고해져 갈 수 있게 하시려고 그러셨던 것이 분명합니다. 만약 두 사람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을 견고하게 신뢰할 수 있다면 그 긴 세월, 자신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점점 더 희박해져 가는 그 세월동안도 큰 흔들림과 조금함, 그리고 낙심함이 없이 잘 견디어 낼 것입니다. 하나님은 두 사람이 그렇게 다듬어져 가기를 기대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이 일에 있어서 많이 실패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실패가 바로 오늘 본문 직전에 기록되어 있는 아비멜렉 사건이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사라를 통해 자녀를 주실 것이라는 것을 두 사람이 진짜로 믿었다면, 그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자신들을 해칠 수 있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을 것이며 그래서 그런 거짓말을 해서 죄를 저지르고 물의를 일으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두번째로는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능력을 가장 명확하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래도 사람에게 가능성이 있을 때와 사람에게는 전혀 희망이 없는 경우는 전혀 다른 경우이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 이런 식으로 약속을 이루어 주신 것은 아브라함 자신보다는 오히려 오늘날 성경을 통해서 이 이야기를 읽는 우리들에게 훨씬 더 큰 유익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25년간 수많은 굴곡을 겪으면서 배운 하나님과 믿음에 대한 진리를 우리는 이렇게 쉽게 배울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이것을 기록하시면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시면서 너희들 눈에 보기에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는 일일지라도, 또 그 성취가 불투명해 보이는 일일지라도 그것이 내 약속이 분명하다면 너희는 나를 믿고 또 나의 약속을 믿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있다면 너희는 그 어떤 역경 속에서도 나를 믿는 믿음으로 상처보다는 유익을 많이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분명히 아브라함은 그 동안 잘 기다려 왔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순간 순간 믿음을 잃어버렸을 때, 그는 절망에 빠지기도 했고 스스로 자포자기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가진 자로서의 온전한 모습을 잃어버리고 심하게 흔들릴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아브라함이 흔들릴 때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흔들림이 없으셨습니다. 부족한 아브라함을 기다려 주시고 또 다시 세우셔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시점까지 이끌어 오셨습니다. 아직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는 여정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아브라함을 아브라함되게 한 것은 아브라함 자신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헌신이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갔던 것입니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가 우리 신앙의 기초와 기둥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해도 때로 우리는 흔들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이리 저리 휘청거리며 믿음 없는 모습을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라도 하나님은 변치 않으십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룰 때까지, 그리고 우리에게 주신 성경의 약속들을 이룰 때까지 흔들림이 없으십니다. 우리가 믿음이 흔들리고 낙심에 빠지며 불안과 두려움에 빠질 때, 그 때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우리의 믿음을 다시 추스려야 합니다. 신앙적인 위기의 순간마다 아브라함을 아브라함으로 만들어 가셨던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헌신을 생각하며, 오늘도 그러한 신실하심과 헌신이 나를 향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태어난 아들의 이름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웃음이라는 뜻의 이삭이라고 붙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사라는 그 이삭을 품에 않고 얼굴에 밝은 웃음을 활짝 피우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시리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결국에는 웃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주시는 날은 반드시 오게 마련이고, 그 때가 되면 부족하고 연약해도 그 약속을 붙들고 살았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웃음으로 활짝 웃게 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성도에게는 항상 해피앤딩만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것을 확실하게 믿지 못해서 하나님께서 웃게 하시는 순간까지 수많은 불안함과 낙심을 경험하였고 또 범죄할 수 밖에 없었지만 아브라함의 자손인 우리는 아브라함보다 더 나은 믿음으로 그가 저질렀던 실수와 과오를 반복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믿음으로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믿음 안에서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분명히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순간은 하나님의 때에 우리를 찾아올 것이며, 그 때가 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삭을 품에 안고 가장 기쁘게 웃을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을 잘 챙기셔서 그 곳까지 가는 과정 또한 기쁘고 확신넘치는 과정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