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11.15. 새벽예배 - 종이 마주 달려나가(창세기 83)



창2415to27 - 종이 마주 달려나가(창83).pdf


20131115D (#01).mp3.zip




본   문 : 창세기 24장 15-27절


어제는 아브라함의 종이 드린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기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자기 중심적인 기도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구하는 기도를 더 기뻐하시며 그런 기도에 더 풍성하게 응답해 주십니다. 또 하나 하나님께서는 때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 응답의 증거를 달라고 구할 때라도 그것이 다른 이들의 유익과 하나님의 영광과 연결되어 있고 그것을 분별하고 또 이루기 위한 도구일 때는 증거를 구하는 것까지 응답해 주시며 그것 또한 기뻐하십니다.


저는 아브라함의 종이 기도를 드리면서 그렇게 당당할 수 있었고, 또 기도를 마친 후에 그렇게 확신 있게 행동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기도가 자기 편리나 욕망이 아니라 주인의 유익과 자신의 중요한 소임을 제대로 이루기 위한 기도라는 것에 대해서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기도가 그 어떤 기도보다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브라함의 종은 비록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부르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마음을 잘 헤아렸으며, 하나님의 마음에 자신의 기도와 소원을 맞출 줄 아는 속깊은 신앙을 가진 기도자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좋은 기도자가 되는 일에는 기도라는 행위 자체에 있어서도 바르게 행해야 하지만 실제로 기도를 드린 후에 그가 취하는 행동 또한 자신이 드린 기도와 방향이 같아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의 뜻을 구한 사람이 기도가 끝난 후에는 그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또 살아간다면 그 사람의 기도는 진실성이 없는 기도라고 밖에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기도를 할 때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드려 놓고 기도가 끝나고 나서는 돌아서서는 다른 방향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종은 자신이 물을 좀 달라고 청할 때, 자신에게도 물을 주고 또 낙타들에게도 물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사람이라고 알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가 채 끝나기도 전에 우물가로 한 처자를 보내신 것이죠. 기도가 너무 빨리 응답되는 것처럼 보일 때에는 그것이 진짜로 하나님의 응답일 때도 있지만 또 하나님의 시험일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그 두 가지 모두를 포함하는 경우도 있구요. 이번의 경우가 바로 후자와 같은 경우였습니다. 나중에 드러나게 되는 것이지만 그것은 종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완벽한 응답이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실제로 시험아닌 시험이 하나 포함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그저 만나는 처자에게 물을 달라고 했을 때의 반응만으로 기도가 응답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겠다고 기도드렸습니다. 그런데, 만약 종이 그렇게 우물가로 나오는 처자의 겉모습을 보고 스스로 이렇게 저렇게 평가를 내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실제로 종이 그런 반응을 보일 가능성은 충분했습니다. 10절을 보면 종이 낙타 열 필에 귀한 물건을 가득 싣고서 아브라함의 집을 떠나왔는데, 당시에 낙타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굉장히 귀한 부유함의 상징이 되는 짐승이었습니다. 요즘으로 비유하자면 에쿠스 정도 된다고 할까요? 주인도 아닌 종이 그런 짐승을 열 필이나 끌고 여행을 했고, 그 커다란 짐승에 귀한 물건들이 잔뜩 실려 있었다는 것은 당시 아브라함의 재력과 영향력이 얼마나 굉장했는지를 알게 해주고도 남습니다. 종이 아브라함을 생각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에 “우리 주인의 며느님이 되려면 적어도 이런 저런 조건이 되어야지. 겉모습은 이래야 하고 집안 재력은 이 정도는 되어야 하고…”라고 하면서 이런 저런 조건을 걸어 놓고 사람을 고를 수도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상식적인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종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냥 자신이 기도한 조건만을 실행에 옮깁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할 필요도 없이 물을 길어서 우물을 떠나는 처자에게 달려가서 물동이에서 물을 좀 얻어 먹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하나님께 요구한 그 증거가 확인되자 그 처자에게 220그램이나 되는 금 장식품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이것은 친절에 대한 보답이기도 했지만 이제 거의 그 여인을 하나님이 정해주신 주인의 며느리로 인정했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친절에 대한 선물 치고는 너무 과한 것이 사실이니까요. 이런 종의 모습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사람이 기도를 드린 후에 어떤 태도와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기도란 근본적으로 요구입니다. 우리는 능력도 부족하고 지혜도 부족하니, 비록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간구일지라도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 해결을 구하는 것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그 기도가 끝난 후에는 기도자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도란 내가 원하는 것만을 받겠다는 통보가 아니라 내가 이것을 원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겠다는 믿음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드린 후에는 우리의 욕심이나 고집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나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것에 조심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다면,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도했다면, 최선을 다해서 인간적인 수단이나 방법이 끼어드는 것을 막아야 하구요.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응답을 하나님의 응답인 줄 모르고 그냥 넘어갈 수도 있고, 반대로 하나님의 응답이 아닌데 하나님의 응답으로 착각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드렸는데도 자꾸 상황이 더 복잡해지고 혼란스러워지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기도를 드린 방향으로 움직여 가지 않기 때문일 때가 많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자신이 하나님께 요구한 모든 증거에 대한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게 바로 그거야!’라고 물고기가 미끼를 물듯이 덥썩 확정을 짓지 않습니다. 그 대신 그 처자에게 한 가지를 더 물어봅니다. 바로 그가 어느 집안 사람이며 어떤 혈통을 지녔는지를 확인한 것입니다. 그것을 확인한 후에야 종은 하나님께 머리를 숙여 경배하며 하나님께 감격 어린 감사를 드립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자신의 판단이 자기 주관에 빠진 판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자기가 하나님게 보여 달라고 요구한 증거가 모두 그대로 맞아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에 휩쓸려서 경솔하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직접 생각했던 가장 중요한 질문을 통해서 이것이 정말 하나님의 은혜인가, 하나님이 하신 일인가를 냉철하게 확인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확하셔도 인간은 틀릴 수가 있습니다. 특히 인간은 너무 좋은 것은 너무 좋기 때문에 그것에 현혹되고 유혹을 당하기가 쉽습니다. 기도자는 항상 이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내가 기도한 것과 지금 눈 앞에서 일어나는 일이 너무 딱 떨어지게 일치한다면 그것이 정말 하나님의 응답인가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어찌보면 냉정해 보이는 질문을 해야 합니다. 그냥 좋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어버린다면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수가 있고, 더 좋은 하나님의 응답을 지나쳐 버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자는 기도만 하는 사람이어서는 안됩니다. 기도자는 스스로 기도한 방향으로 삶의 방향을 맞추어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보여지는 너무 좋은 것들이 눈 앞에 나타날 때는 그것을 성급하게 취하기 전에 그것이 진실로 하나님께서 주신 응답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진짜 하나님의 응답을 얻고 또 누리는데 있어서 실수와 부작용을 피할 수가 있습니다. 항상 분별력 있고 확신있는 순종하는 기도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풍성한 기도 응답의 능력과 유익 가운데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