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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오후

2013.11.24. 주일오후 - 두아디라 교회에 보낸 편지 1(11월 전교인 기도회)



계0218to29 - 두아디라 교회에 보낸 편지(1).pdf


20131124SE (#01).mp3.zip




본문 : 요한계시록 2장 18-29절



오늘 주님의 편지를 통해서 칭찬과 책망, 그리고 격려를 받는 교회는 두아디라 교회입니다. 주님은 먼저 두아디라 교회를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 보다 많도다” 이 구절만 보아서는 두아디라 교회가 대외적으로 많은 일을 했던 교회처럼 느껴집니다. 물론 그랬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19절 앞부분에 나오는 사업이라는 말은 원래 ‘일들 혹은 행위들’을 말합니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두 단어가 전혀 다르지만, 원문에서 보면 앞쪽에서 ‘사업’으로 번역된 말과 뒤쪽에서 ‘행위들’이라고 번역된 말이 완전히 같은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두아디라 교회를 칭찬하셨던 이유는 그 교회가 하는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하는 일이야 많을 수도 있고, 또 적을 수도 있지만 주님 보시기에 그 교회 안에 사랑, 믿음, 섬김, 그리고 인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주로 무슨 일을 해야하는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해야하는가에 관심을 집중합니다. 그래서 여러가지 일을 하고 큰 일을 하는 사람들을 높게 평가합니다. 심지어는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인가 그렇지 않은 교회인가를 판단할 때도 그 교회가 대외적으로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가 또 눈에 보이는 얼마나 큰 업적을 남겼는가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그러다 보니 큰 교회와 일 많이 하는 교회가 곧 좋은 교회라는 공식이 성도들에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가지고 계신 기준은 좀 다릅니다. 사람들은 주로 겉으로 보이는 그릇이 어떤 그릇이냐, 그 그릇에 어떤 장식품이 붙어있느냐 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주님은 그 그릇에 무엇이 담겨있느냐 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며 그것을 기준으로 교회와 성도들을 평가하십니다. 그러니까 무슨 일을 하고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가가 아니라 그 일을 어떤 마음과 태도를 담아서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아디라 교회가 일을 많이 한 교회인지 그렇지 않은 교회인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교회 안에는 사랑이 있었고, 믿음이 있었고 섬김이 있었고 인내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두아디라 교회가 많은 일을 한 교회든 그렇지 않은 교회이든 간에 그 모든 일들 속에 사랑과 믿음, 섬김과 인내와 같은 영적인 미덕들 만큼은 풍성하게 담아냈던 것입니다. 물론 일도 해야 합니다. 교회는 항상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맡긴 일을 해야 하며, 성도는 교회라는 모임 자체와 또 그 교회가 세상에 대해서 행하는 일들을 통해서 세상을 섬겨야 하니까요. 그러나 그 일이 많은 일이든 적은 일이든,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성도와 교회는 그 안에서 주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두아디라 교회처럼 그 모든 행위 안에 사랑을 담아야 하며, 믿음을 담아야 하고 또 섬김과 인내를 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개인과 교회에 어떤 일들을 맡기시는 것은 그 일에 우리를 부려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일들 속에서 하나님의 사람들만이 맺을 수 있는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들을 맺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맡은 역할이 무엇이든, 그리고 큰 일을 하든 작은 일을 하든 우리는 항상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그 모든 일들을 해야 합니다. 그 모든 일들이 성령의 열매를 담아내는 그릇이 되게 해야 합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그런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일만 하는 교회가 아니라 그 일들 속에 믿음과 사랑, 섬김과 인내를 담아낼 줄 아는 그런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고 기쁘게 해 드렸습니다. 저는 본문을 묵상하면서 주님으로 하여금 두아디라 교회를 칭찬하시도록 만들었던 네 가지 열매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주님이 그 교회를 그 네 가지 때문에 칭찬했다면 우리들도 교회를 섬기든 혹은 사람들을 섬기든 간에 이 네가지 미덕을 우리 삶 속에 녹여넣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그러면 주님이 처음으로 칭찬했던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칭찬했던 것은요? 그것은 ‘사랑’입니다. 믿음과 사랑! 주님이 이 두 가지를 칭찬하셨던 이유는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을 향해서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들어서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바로 성도들의 믿음이라는 사실을 굉장히 자주 생각하게 하시고 또 깨닫게 해 주십니다. 제가 설교를 하든 기도를 하든 혹은 목회에 대해서 생각을 하든 주님은 저에게 “그런데 너는 정말로 나를 신뢰하면서 그 일을 하는 게냐?”하고 물으시는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일 먼저 챙기게 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설교도 믿음으로 하려고 애쓰고 기도를 해도 믿음으로 하려고 애씁니다. 제가 무엇을 하려고 하든 적어도 제 생각에 ‘믿음’이라는 울타리를 넘어가지 않으려고 예민하게 애씁니다. 이것은 사실 예전에 제가 제 생각대로 결정하고 무언가를 할 때보다는 하는 일이 굉장히 많이 줄어들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과정을 통해서 굉장히 은혜로운 경험을 많이 하게 됩니다. 첫째는 주님이 그렇게 하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확신을 얻게 됩니다. 그렇게 할 때, 이상하게도 제 마음이 평안해 지고 기뻐지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그렇게 하게 될 때, 그런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결과를 얻게 하십니다. 그런 결과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맞으니 앞으로는 사는 것도 믿음으로 살고 교회를 섬기는 것도 믿음으로 해라’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려주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 그래서 우리 마음의 평안과 가장 좋은 결과로 갚아 주시는 것은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가 개인적인 삶에서나 혹은 교회를 섬길 때나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실만한 결정을 내리고 또 그것을 따라 행할 때, 주님은 그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결정하고 또 그렇게 행한 일들은 모두 다 하나님께서 챙겨주십니다. 가장 선하고 좋은 결과로 되돌려 주십니다. 사실 이것을 믿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내가 이렇게 저렇게 끙끙대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 안에서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가장 좋은 것으로 되돌려 주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렇게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렸고, 또 하나님께서 그런 믿음을 칭찬하신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가장 좋은 것일 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일을 할 때도, 또 삶을 살 때도 내가 어떻게 하면 나의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까 하는 것만 고민하면 됩니다. 정말 나머지는 선하신 하나님께 다 떠 넘겨 버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만 잘 챙기면 됩니다. 무언가 결정할 일이 있을 때, 고민할 일이 있을 때, 항상 ‘내가 지금 이 결정을, 그리고 이 고민을 믿음 안에서 하고 있는가?’를 먼저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울타리 안에서 결정을 내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 결정과 고민이 여러분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 되게 하신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길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주님이 두 번째로 칭찬하셨던 것은 사랑이었습니다. 믿음이 하나님을 향하는 마음의 태도라면 사랑은 사람들을 향한 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믿음과 사랑이 함께 갈 때, 그것을 기뻐하십니다. 제가 믿음 좋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 보았는데, 믿음 좋다는 사람들의 가장 큰 약점은 사람을 별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저 하나님만 생각한 나머지 굉장히 차갑고 냉정할 때가 많습니다. 옆에서는 상처를 받고 피를 철철 흘리고 있어도 그저 하나님의 뜻이면 다 됩니다. 그것에 대해서 별 미안함도 안스러움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볼 때, 건강한 믿음은 항상 사람을 향한 사랑을 동반합니다. 아마 주님도 그것을 알려 주시려고 본문에서 믿음 보다도 사랑을 먼저 앞세우신지도 모르겠습니다. 믿음만 생각하느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놓치지 말라고 말입니다. 사람을 향한 사랑이 없는 믿음은 때로는 사람들을 향한 폭력이 되기 쉽습니다.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합리화하게 되니까 말이죠. 믿음이 이렇게 일그러지지 않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사람들을 향한 사랑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항상 챙겨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결정과 행동 속에 사람을 향한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결정과 행동 속에 사람들을 향한 사랑이 녹아들어가 있을 때, 그것을 보시고 기뻐하시며 칭찬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다음으로 칭찬하시는 것은 바로 섬김과 인내입니다. 섬김과 인내는 그것 자체로도 미덕이지만 사실 이 두 가지는 사랑과 믿음에서 나오는 열매이기도 합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섬기지 못합니다. 섬기기는 하겠지만 참되게 섬기지 못합니다. 그저 억지춘향이 됩니다. 억지로 섬기는 것도 가치가 없지는 않지만 그런 섬김은 기쁨이 아니라 고통이며 특권이 아니라 의무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섬김이란 나 자신이라는 틀을 넘어서서 다른 이들의 유익을 위해서 일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나 자신이라는 틀을 기꺼이 그리고 쉽게 넘어가게 만들어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존심도 내려놓고 불편함과 힘드는 것도 감수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섬김이라는 말이 불편하고 특별한 것이 아니라 기쁘고 자발적인 것으로 여겨지려면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게 되는 변화가 우리 속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은 두아디라 교회의 인내를 칭찬했습니다. 인내는 성경적으로 볼 때, 믿음의 열매입니다. 누가 끝까지 참고 견디느냐 하면 바로 하나님을 정말로 믿는 사람입니다. 믿음 때문에 생겨나는 고난이나 혹은 개인적인 어려움, 그리고 어떤 사람을 참고 견디는 인내까지 모든 인내가 다 믿음에서 나옵니다. 억지로 참으려고 한다고 해서 참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억지로 참으면 참기는 참겠지만 얻는 것도 없이 화병만 얻습니다. 마음에 상처만 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인내하면 화병이 나지 않습니다. 상처가 있기는 있어도 그 과정 속에서 믿음이 그 사람을 치유해 줍니다. 믿음은 지금 당장이 아니라 항상 그 일의 끝을 바라보게 하는데, 그 일의 끝에는 항상 나를 사랑하시는 선하신 나의 아버지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또 믿음은 그 하나님은 감당치 못할 시험은 주지 않으시고 또 시험을 주실 때는 항상 피할 길을 주신다는 사실을 붙들게 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우리에게 인내할 수 있는 능력을 주고 또 그 믿음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게 하는 능력을 줍니다. 믿음 자체가 믿음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사랑을 겸한 믿음이 있을 때, 그리고 그 사랑이 섬김과 인내로 열매 맺혀 질 때, 그것을 기뻐하시며 칭찬해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두아디라 교회를 칭찬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 하나님께서 두아디라 교회를 더 크게 기뻐하셨던 이유는 사랑과 믿음, 섬김과 인내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두아디라 교회라는 나무에서는 시간이 흐를 수록 이 네 가지 성령의 열매가 더욱 더 풍성하고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교회든지 짧은 기간 동안은 아주 바람직한 모습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을 계속 유지하고 또 더 풍성하고 견고하게 만들어 간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실제로 현실교회 속에서는 그런 실례를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성도들이나 목회자들마저도 어떤 교회가 끊임없이 더 풍성해져 가고 더 성숙되어져 갈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 믿으려고 들지 않습니다. 그저 적당하게 커다란 문제만 없으면 그게 좋은 교회거니 하고 그 정도에서 만족하려고 합니다. 물론 교회에 커다란 문제가 없다는 것, 평안하다는 것 자체는 그것만으로도 커다란 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주님이 그 정도로 기뻐하실까요? 정말 주님의 몸된 교회가 그저 문제만 없는 그 정도로 만족해 하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적당한 수준에 머물면서 그저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교회와 성도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해 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머리되신 예수님과 어울리는 수준으로 성숙해 가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그리고 우리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실만한 영적인 열매를 맺는데 계속해서 성장하고 풍성해 질 수 있을까요?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계속해서 우리가 그렇게 회복되어지고 세워져 갈 수 있을까요? 네. 그렇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그렇게 믿고 그렇게 소원한다면, 우리 영혼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그렇게 헌신한다면 분명히 그렇게 될 것입니다.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야 말로 주님께서 무엇보다도 소원하시는 것이고 또 기뻐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겉으로 드러나는 일을 많이 할 수도 있고, 또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내가 중요해 보이는 일을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일들 속에 사람들을 향한 사랑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녹여넣고 있느냐 하는 것이고, 그 믿음으로 섬기며 인내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가 이런 열매들을 많이 맺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 열매가 더욱 더 풍성하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이제 이러한 주님의 소망이 우리의 소망이 되게 해야 합니다. 주님만 교회에 대해서 이런 꿈을 꾸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도 같은 꿈을 꾸며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 날이 가면 갈수록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런 열매가 더욱 더 풍성한 교회가 되는 꿈을 꾸어봅시다. 그런 광현교회의 모습, 그런 나의 모습을 마음 속에 그려봅시다. 그리고 두아디라 교회에 주셨던 주님의 칭찬을 기대해 봅시다. 우리가 마지막 주님을 뵈올 때,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라는 칭찬을 받는다면 얼마나 영광스럽고 또 행복하겠습니까? 우리 모두 이 칭찬을 기대하면서 영적인 열매를 맺는데 있어서 더 풍성하고 더 성숙한 교회로 세워져 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