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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12.11.새벽예배 - 이삭이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창세기 96)

창2634to2710 - 이삭이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창96).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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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창세기 26장 34-27장 10절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뉘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원래 에서와 야곱은 태어나기 이전부터 그 운명이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두 형제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부터 싸웠습니다. 서로 맏이가 되어 보겠다는 싸움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투쟁은 쓸데 없는 투쟁이었습니다. 에서는 어머니 배속에서 먼저 나오려는 경쟁에서 이겨서 맏이가 되었지만 결국 그는 그 승리 때문에 작은 자를 섬기는 자가 됩니다. 야곱은 지지 않으려고 뱃속에서부터 싸웠고 형의 발뒤꿈치를 잡고서 세상 밖으로 나오는 기괴한 탄생을 맞이했지만 그것이 원래 그의 자리였습니다. 그렇게 형의 뒤를 따라 나와서 형의 섬김을 받는 자가 되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서 야곱을 향해 가지고 있었던 계획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모든 일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원래 각자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고 서로 서로 거기에 순종하려고 애썼다면 두 사람의 인생역정이 그렇게 틀어지고 비틀릴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각자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순종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거부하고 또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 보려고 하다가 각자의 인생과 가족관계를 모두 망가뜨리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신앙생활을 하면서 점점 더 이것을 확실하게 배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을 따르는 삶이 가장 부작용이 적고 평온하며 가장 순적하게 성장해 가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최고의 삶이 된다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서도 내 맘대로 사는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고집인지 빨리들 알아 차리고 자신을 위해 준비된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깊고 평안한 흐름을 탔으면 정말 좋겠다는 소원을 품게 됩니다. 


에서는 결혼에 있어서도 참 분별이 없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눈에 드는 여인들을 골라서 아내로 삼았으니까요. 그래서 이 일은 이삭과 리브가에게 큰 근심거리가 되었습니다. 자녀를 신앙적으로 키우는 일보다 어려운 것이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왜 일이 그렇게 될 때까지 이삭을 그렇게 마음대로 하는 사람이 되도록 방치했는지 그저 두 사람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런데도, 이삭과 리브가 두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는 부모로서 계속해서 하지 말아야 할 실수를 하게 됩니다. 당시 자녀에게 복을 빌어주는 일은 하나님을 섬기는 부모들에게는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역할이었는데 두 사람은 이 일에서 또한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 감정이 흐르는 대로 행하고 맙니다. 


27장은 이 일의 시작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물론 이삭은 나이가 많아졌습니다. 당시 나이로 최소한 80은 넘었을테니까요. 그러니 눈도 어두워졌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단순히 이삭의 육체적인 상태를 설명하는 말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눈 이야기를 발견할 때마다 꼭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육체적인 눈 이야기가 아닐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어떤 사람의 눈에 대한 이야기, 그것도 눈이 어두워졌다는 것을 이야기할 때면 그것은 대부분의 경우 영적인 분별력이 흐려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삭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다음 이어지는 이야기가 그것을 증명합니다. “맏아들 에서를 불려 이르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이삭이 이르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니 그런즉 네 기구 곧 화살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축복하게 하라” 죽기 전에 아들을 축복하는 것이야 너무나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삭이 누구를 복 주겠다고, 그러니까 누구를 영적인 장자로 삼겠다고 하고 있습니까? 에서입니다. 야곱이 아니라 에서입니다. 이삭은 하나님께서 에서가 아니라 야곱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이 흘러 내려가게 하실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아무리 야곱보다는 에서를 더 좋아한다고 해도 에서가 아니라 야곱에게 장자의 복을 빌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삭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에서에게 복을 주기 위해서, 그것도 힘껏 마음을 다해서 복을 빌어주기 위해서 사냥을 해와서 자기의 힘을 북돋아 주고 마음을 만족하게 해 주면 그 힘과 마음으로 에서를 복 주겠다고 말합니다. 완전히 하나님의 뜻과는 반하는 결정입니다. 그러면서도 이삭은 마치 그것이 자신의 권리인 양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는 리브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리브가는 이삭이 에서에게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리브가의 입장에서는 큰 일이 났습니다. 리브가는 무엇보다도 두 아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리브가는 이 일을 바로 잡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에서가 돌아오기 전에 야곱을 에서처럼 가장해서 에서 대신에 축복받게 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물론 리브가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야곱을 굉장히 편애했습니다. 그래서 에서가 아니라 야곱에게 장자의 복이 흘러가도록 하려고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랬다면 더 심각한 문제였겠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저 하나님의 계획이 틀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랬다고 하더라도 리브가는 올바른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닙니다. 첫째, 그것이 어머니가 아들과 짜고서 아버지요 남편을 속이려고 했다는 점에서 그렇고, 둘째로는 자기의 힘으로 무리하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야곱이 이삭을 이은 영적인 장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리브가는 혹시 이삭이 에서를 축복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효력이 없다고 생각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지가 그것을 거스르는 인간의 행동에 우선하니까요. 그런데 리브가는 야곱을 향한 편애와 또 하나님의 계획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택하지 말아야 했을 방법을 선택하고 맙니다. 결국 이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뜻이 순적하게 이루어져 가는 것을 뒤틀리게 하고 두 형제를 결코 완전히 화해할 수 없는 사이로 만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서 가장 제대로 해야할 역할은 무엇보다도 자기에게 맡겨진 역할을 잘 이해하고 그 자리를 잘 지키는 일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그 속에서 이루어져 가는 모든 일들, 그리고 자신의 삶을 가장 온전하게 흘러가게 하는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생각보다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그 역할을 잘 수행하려면 항상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분별하고 또 분별한대로 따르는 순종이 꼭  필요한데, 우리에게는 항상 이것을 방해하는 강한 장애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첫번째 장애물은 바로 우리 자신의 욕망과 성향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영적인 시력을 나빠지게 하고 분별력이 흐려지게 하는 가장 강력한 장애물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눈 앞을 가리면 우리는 이내 분별력을 상실하게 되고 선택하지 말아야 할 것을 선택하면서도 그것이 가장 좋은 것인 줄로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욕망과 성향은 눈 먼 안내자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우리 삶은 방향과 질서를 잃어버리게 되며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두번째 장애물은 바로 지나친 충성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은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데 있어서 내가 해야할 역할이 있다면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고 거기 순종하는 것이 나의 수단과 능력으로 그것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루려고 하면 꼭 무리수를 두게 됩니다. 옳지 못한 방법을 끌어들이게 되고 또 사용하게 됩니다. 그러면 겉으로 보기에 일은 되어져 가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일은 결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끌어들인 인간적이거나 혹은 옳지 않은 방법들이 열매를 맺을 때가 되면 그 쓴 열매들 때문에 우리의 인생은 엉클어지고 고통스러워지며 하나님의 영광은 땅에 떨어지게 됩니다. 


무엇을 하든, 자신이 원하는 일일수록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가까운 일일수록 이 두가지를 조심해야 합니다. 자신의 취향과 욕망을 신뢰해서는 안되며, 지나친 충성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자기 힘과 수단으로 이루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 안에 살면서 그것을 이루어 가며 살아야 하는 우리들이 잊지 말고 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원리들입니다. 그 어떤 순간에도 영적인 눈이 어두워지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또 자신의 자리를 온전히 지키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며 순적하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