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12.13. 새벽예배 -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창세기 98)



창2724to40 -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창98).pdf






본   문 : 창세기 27장 24-40절


우리는 지금 이 예배당 안의 자기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일단은 이 지구가 팽이처럼 회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하면 시간당 1337킬로미터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 속도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게 전부인가 하면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 속도는 초당 29킬로미터나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가만히 있어도 한 시간에 1337킬로미터를, 또다시 초당 29킬로미터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아무리 용 빼는 재주가 있다고 하더라도 지구 안에 사는 사람 중에 이러한 움직임을 거스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 지구 바깥으로 나가면 내 맘대로 움직일 수 있겠느냐고 물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아닙니다. 지구가 포함되어 있는 태양계 자체가 더 거대한 은하계의 일부인데요. 이 태양계는 태양계가 속한 은하계를 중심으로 또다시 큰 원을 그리면서 돕니다. 그런데 이 속도가 무려 초당 220킬로미터나 됩니다. 그래서 태양계 안에 머물고 있는 한 어쩔 수 없이 속도로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아침부터 이렇게 머리 복잡한 말씀을 드리는 것은 이것보다 비교도 안되게 큰 이야기를 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지구가 아무리 크고 태양계가 아무리 크고 또 은하계가 아무리 넓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우주의 지극히 일부입니다. 그리고 그 우주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입니다. 또 그 우주는 하나님께서 섭리하시고 움직여 가십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과연 우리가 아니 아무리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인간이라도 한 번 정하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다면 인간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거스르는 일이 가능할까요?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당장은 무언가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 같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 같으니까요. 그러나 인간은 그래봤자 흐르는 강물 속에 물고기에 불과합니다. 물고기가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 같아도 결국 강물의 흐름 속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사람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 같아도 결국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움직이고 있을 뿐입니다. 


오늘 본문은 에서와 야곱이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축복을 받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아브라함 가문의 장자의 축복권을 둘러싸고 이삭의 가정은 정말 사분오열했고, 온갖 거짓과 비열한 지혜를 총동원 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의 결과가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더 사랑하는 자녀에게 복을 받게 하려고 아버지도 어머니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거슬러 행동했으며, 형도 동생도 거기 동조해서 장자의 축복을 받겠다고 똑같이 움직였습니다. 그 모든 일의 결과는 딱 두 번의 축복기도였습니다. 먼저 이삭이 에서인 줄 알고 야곱에게 해 준 축복은 이렇습니다.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다음은 뒤늦게 도착한 에서가 동생인 야곱에게 자신의 복을 빼앗긴 후에 애걸복걸하여 얻어낸 축복기도 입니다. 그 내용을 보면 절대로 복이라고 할 수도 없었을 뿐더러 이삭이 에서에게 빌어주기를 원했던 복도 그리고 에서가 이삭에게서 받고자 했던 축복도 아닙니다. “네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멀고 내리는 하늘에서 멀 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 버리리라” 


전체 이야기의 흐름을 보면 정말 뒤죽박죽 엉망진창입니다. 과정은 물론이고 결과도 그런 것 같습니다. 동생이 형의 축복을 받았고 형은 자기가 받아야 할 복을 잃어버리고 복도 아닌 복을 축복의 내용이라고 받아들여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실제로 야곱이 받았던 축복의 내용과 에서가 받았던 축복의 내용을 보면 놀랍게도 에서와 야곱이 리브가의 뱃속에 있을 때, 리브가가 하나님께 들었던 말씀이 그대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중간에 네 사람이 얽히고 섥혀서 일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은 것 같지만 결국 일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이삭의 말을 통해 그대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과정이야 어떻게 되었든 간에 결국 가야 할 축복이 가야할 사람에게 정확하게 돌아갔던 것입니다. 


이삭은 이런 상황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아우가 와서 속여 네 복을 빼앗았도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삭의 생각일 뿐 진실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진실은 야곱게에게 가야할 복은 야곱에게로 돌아갔고 에서에게로 가야할 복은 에서에게로 돌아가게 된 것.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그 안에서 이리 저리 좌충우돌 뒤죽박죽 가족을 속이고 미워했던 네 사람이 한 일은 무엇입니까? 그건 말 그대로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야 말로 헛고생한 것입니다. 헛될 뿐만 아니라 악한 노력만 기울인 것입니다. 


자신이 속아서 에서에게 주려던 복을 야곱에게 주고 난 후에 이삭은 에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아들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이삭은 에서를 위해서 더 이상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저 나머지 복도 아닌 복을 자신이 편애하는 에서를 위해 빌어주는 일 밖에 달리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실은 그것이 이삭이 언약을 물려받은 사람으로서 또 다시 다음 세대로 그 언약을 물려주기 위해서 당연히 해야만 했던 일이었습니다. 원래 이삭의 사고방식은 이랬습니다.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 참 우습죠. 이게 이삭의 사고방식이었으니 하나님의 복을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삭이 장자의 복을 빌어주었기 때문에 야곱이 복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삭은 단순히 대리자에 불과합니다. 복을 주고 안 주고는 하나님 소관입니다. 그리고 대리자는 그저 대리자가 되어야지 자신이 권한을 가지려고 하면 안됩니다. 자신에게 권한이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됩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이삭은 이 질문을, 그것도 하나님 앞에서 빨리 했어야 합니다. 그리고 빨리 바른 답을 얻어냈어야 합니다. “없다”는 답 말입니다.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 밖에 없다”는 답 말입니다. 


모든 인간의 문제는 맡은 것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대리자이면서 주인이 되려고 하고 심지어는 자신이 주인인 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런다고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닌데 말입니다. 쓸데 없는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수 없다는 사실이 변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괜히 고집부리고 자존심 내세워 봤자 자기만 고생입니다. 이삭을 보고, 그의 가족들을 보십시오. 어찌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헛수고만 하는 인생이 어찌 그 거대하고 견고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수가 있겠습니까? 정하신 뜻은 절대로 거스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성도의 인생이란 하나님의 뜻을 잘 헤아리고 최선을 다해서 그 틀 안에 머물며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과정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란 참 어리석어서 스스로 경험해 본 이후에야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으랴?”라고 질문하게 마련이지만 우리가 이 질문을 한 박자라도 빨리 하고 또 바른 대답을 따라서 움직일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고집스럽고 악한 헛수고가 만들어 내는 이런 저런 잡음들로부터 많이 자유로울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혹시 내가 하나님의 뜻이 아닌 줄 알면서도 여전히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이나 혹은 하나님의 뜻인 줄 알면서도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없는지 생각해 보시고, 그런 것들을 내려놓는 기도를 드려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내 인생의 흐름을 하나님의 흐름에 맞춰가셔서 하나님의 뜻 안에서 순적한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