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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12.17.새벽예배 - 내게 무슨 재미가 있으랴(창세기 99)


창2741to2809 - 내게 무슨 재미가 있으랴(창99).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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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창세기 27장 41-28장 09절


사람들이 악을 행하고 죄를 짓는 이유는 자신이 선택한 악과 자신이 행한 죄가 자신의 삶에 선하고 좋은 열매,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과 적어도 계산이 없다면 그 누구도 선하고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해서 악을 행하고 죄를 짓는 선택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를 이런 착각에 빠지게 하는 것은 우리가 많은 열매와 좋은 열매가 같은 것이라고 믿게 하는 사탄의 속임수입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서 많은 열매와 좋은 열매는 전혀 다릅니다. 물론 많은 열매가 좋은 열매가 될 때도 있지만 이 두 가지는 일치하지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 그리고 만약 이 두 가지가 일치하지 않을 때는 열매가 많이 맺혀지는 것보다는 적게 맺혀지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좋지 않은 열매가 많이 맺혀지게 되면 그 많은 것들이 결국에는 우리의 삶과 우리 주변을 힘들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뿌린 대로 거둔다’는 가장 단순한 법칙을 잊어서는 안되며, 이 법칙에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좋은 씨앗을 뿌려야 좋은 열매가 맺혀진다는 것, 선한 씨앗을 뿌려야 선한 열매가 맺힌다는 단순한 법칙을 따라야 합니다. 그게 진짜 지혜로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법칙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자신의 인생을 길게 보면서 그리고 확실한 길을 따라 가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하나님의 성품상 악한 씨앗에서 좋은 열매가 맺혀지는 것을 보고만 계시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아주 큰 틀에서 보면 결국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고 그래서 악을 선하게 사용하시기도 하지만 이미 그 과정 중에서 악을 선택한 사람은 물론이고 그 주변의 사람들도 그 악 때문에 몸살을 앓고 난 이후가 될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떤 사람이 씨앗으로 선택한 악은 적어도 그 사람의 영혼과 성품에 악하고 어두운 흔적을 남겨 놓는데 실은 이것이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악이 남기는 가장 좋지 않은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은 이제 이삭과 리브가, 그리고 두 아이들이 이런 저런 악한 씨앗을 뿌린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8장 3-5절을 보면 이삭은 야곱을 불러 가나안 여인들 중에서 배필을 고르지 말 것을 당부하면서 삼촌인 라반의 집으로 보내기 전에 다시 한 번 축복한 내용들이 나오는데, 이삭이 야곱을 불러 공식적으로 이런 복을 빌어주었다는 것은 결국 이삭이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뜻, 그러니까 첫째가 아니라 둘째에게 영적인 장자권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어차피 이렇게 될 일인데 애초부터 이렇게 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이삭과 리브가는 야곱과 에서가 태어났을 때부터 비록 장자와 차자의 순서가 분명하지만 두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잘 전달해서 두 아이들이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형은 동생을 축복하고 동생은 형에게 고마워 하는 마음과 미안해 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양육했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서 더 사랑하는 아들들을 하나씩 골라서 그들을 편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에게 장자의 복을 주기 위해서 애썼고, 결국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하지 말아야 할 선택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자기가 원하는 열매가 맺힐 줄 알았고, 그것이 좋은 열매가 될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습니다. 결국 얻은 것은 없습니다. 이삭은 하나님께 두 손을 들고 야곱에게 장자의 복을 제대로 빌어줍니다. 그 과정에서 얻은 열매라고는 형이 동생을 죽이겠다고 분노에 가득 찬 결심을 하게 만든 것이고, 그래서 동생은 그런 형을 피해서 언제 돌아오게 될지 모를 기약 없는 피신여행을 떠나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이삭과 리브가가 뿌린 씨앗이 만들어 낸 쓴 열매의 전부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에서는 분명히 부모가 싫어하는 줄 알면서도, 특히 엄마가 굉장히 싫어하는 줄 알면서도 굳이 가나안 여인들을 아내로 맡아들였습니다. 만약 이삭과 리브가가 에서와 야곱을 공평하게 사랑했고 또 자신들의 양육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고 애쓰는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었어도 에서가 이런 식으로 자신의 베필을 정했을까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28장 6절 이하를 보면 에서가 약간 철이 들어서 특히 리브가가 자신이 가나안 여인과 결혼한 일 때문에 얼마나 속이 상해 하는 줄 알고는 다시 가나안 여인이 아닌 이스마엘 자손의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과연 이것이 리브가를 기쁘게 하고 이삭을 기쁘게 했을까요? 그랬을 리가 없습니다. 두 사람은 평생을 일부일처제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장남이 아내를 셋 씩이나 맞아 들인 일을 보고서 기뻐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게다가 우리가 이삭을 살펴 보면 이삭이 세 번째 아내를 얻은 동기가 진짜로 아내가 더 필요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저 자신의 결혼으로 만들어낸 어머니의 실망을 다시 되돌려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싶었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엄마의 편애가 만들어낸 또 다른 쓴 열매입니다. 에서는 다 자란 어른이 되어서도 어머니의 사랑에 배가 고파서 그런 행동을 하는 미성숙한 사람으로 남아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동생은 형을 속이고, 형은 동생을 죽이겠다는 결심을 하게하고, 동생은 그 형을 피해 도망가고, 형은 어머니의 사랑에 배가 고픈 미성숙한 어른이 되고, 또 부모는 도망간 아들을 그리워 해야 하고, 또 형이 동생을 따라가서 죽이지나 않을까 항상 살얼음판을 걸어야 하고… 이 모든 것 들 중에서 선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들 네 사람이 뿌린 씨앗 중에서 그 어느 것 하나 선한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삭은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되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뿌렸던 악한 씨앗들이 쓰디쓴 열매로 이삭 가족의 삶에 이미 파고 들었으니까요. 


하나님이 살아계신 한, 뿌린대로 거둔다는 법칙은 절대로 변할 수가 없습니다. 악한 씨앗을 뿌리면 쓴 열매가, 선한 씨앗을 뿌리면 단 열매로 되돌아 오는 것은 아무리 해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적어도 성도라면 이런 하나님과 이런 하나님의 법칙에 순종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삶인 줄을 알고 또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당장 힘이 들고 손해를 보는 것 같이 여겨지더라도 씨앗 만큼은 좋은 놈, 선한 놈으로 잘 골라 뿌리시기 바랍니다. 그 씨앗들에게 반드시 맺혀지게 될 선하고 단 열매들을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항상  선한 씨앗, 좋은 씨앗을 뿌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되돌아 오는 열매들로 평안하고 풍성한 삶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