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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12.24. 새벽예배 -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창세기 103)



창2917to30 -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창103).pdf


12131224D (#01).mp3.zip




본   문 : 창세기 29장 17-30절


그리스도의 사랑에 힘입지 않은 순전히 인간적인 사랑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인 즉 인간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이란 없다는 말씀입니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무조건적인 사랑 같지만 이것 또한 자기가 낳은 자기 자식이기 때문에 그렇게 사랑하는 것이지 거기에 뭐 숭고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자녀를 사랑한 일은 상급이 없습니다.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고, 자녀를 사랑하면서 가장 행복하고 풍성한 기쁨을 누리는 것은 다름 아니라 부모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남녀간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런 이유가 없는 사랑은 없습니다. 무언가 내가 상대방에게 이끌리고 또 상대방을 사랑하게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스럽게 느낄 이유가 있기 때문에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게 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드리나 마나이지만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게 된 것에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야곱이 라헬을 사랑스럽게 여기게 할만한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에 라헬을 사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16절과 1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라반에게 두 딸이 있으니 언니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라반에게는 딸이 하나 밖에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딸이 둘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야곱은 레아가 아니라 라헬을 사랑했습니다. 이것은 야곱이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어쩌다가 보니 라헬을 사랑하게 되었고 결혼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어떤 분들은 레아가 지독하게 시력이 나빠서 야곱이 레아를 싫어했다고 하시는데 그게 아닙니다. 우리 말로 시력이 약하다고 해석된 말은 원래 눈빛이 부드럽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눈빛이 부드럽기는 했지만 눈이 반짝 반짝 빛나지 않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이런 여인들을 미인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하니 분명히 레아가 곱고 아리따운 라헬보다 당시 기준에서 아름답지는 않았고 오늘 본문은 그것 때문에 야곱이 레아가 아니라 라헬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그저 눈에 보이는 겉모습이었지만 그래서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게 된 데에는 너무나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야곱이 그의 마음을 온통 빼앗을 만큼, 그를 얻기 위해서 14년이라는 세월을, 그것도 알면서 속을 만큼 적어도 야곱이 보기에는 라헬이 충분히 아름다웠던 것입니다. 사실 모든 사랑의 이유는 ‘아름다움’입니다. 그것이 겉으로 나타나는 아름다움이건 아니면 마음으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건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 사랑스러워지게 하는 ‘아름다움’을 느껴야 비로소 그 대상을 사랑하게 됩니다. 


지난 새벽기도회 시간에 야곱이 라헬을 사랑한 사랑을 보면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앙은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사랑이 될 때, 그 때부터 참 신앙이 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때, 우리의 신앙은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것이 될 수 있고, 또 무엇을 하면서도 무엇을 한다고 내세우지 않으며 또 하나님을 위해서 아무리 많은 것을 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부족하기만한 그런 마음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어떻게 하면 사랑할 수 있게 될까요? 우리는 우리 신앙을 기쁨이 되게 하고 자발적인 섬김과 순종이 되게 하면서도 절대로 율법주의에 빠지지 않게 해 줄 단서를 야곱의 라헬을 향한 사랑에서 발견한 것처럼, 하나님을 진짜로 마음 설레게 사랑할 수 있게 될 수 있는 비결 또한 야곱에게서 배울 수 있습니다. 


야곱이 언제 무엇 때문에 라헬을 그렇게 사랑하게 되었죠? 레아가 아니라 라헬을 그렇게 말 그대로 미친 듯이 사랑하게 되었죠? 그것은 야곱이 라헬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그만큼 사랑스럽게 여기게 되었을 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사랑하게 되는 것도 똑같습니다. 우리는 그냥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스러워 할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을 정도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모른 채로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아름다운 분이신지를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그저 하나님을 사랑하려고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억지를 부리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절대로 억지로 안된다는 것을 모르고 그저 사랑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 하나님보다 아름다운 분은 없습니다. 어떤 면에서건 모든 아름다움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가 누군가를 진실로 사랑하게 되는 것은 그저 겉으로 보기에 아름답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속, 그러니까 성품  속에 들어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고 거기 반하게 될 때, 그 때부터 그 사람을 진짜로 사랑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게 되는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을 바라보며 그 모든 것들 속에 깃들어 있는 아름다움이 실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해 하나님께서 그 속에 넣어 놓으신 것들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래서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을 알게 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진짜 아름다움은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경험하여 알게 될 때, 그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참된 아름다움을 알게 되고 그래서 하나님을 진짜로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반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면 신앙 자체가 우리를 흥분시킬 정도가 됩니다. 그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행복하게 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은 우리 입에 가장 맛있는 음식이 만족을 주고 기쁨을 주는 것처럼 하나님의 선하심은 우리 마음에 가장 큰 기쁨과 만족을 주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신앙생활을 통해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맛보아 아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성품에 진실로 반했다고 고백하며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 영혼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또 그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게 될 때, 그 일을 반복하게 될 때 우리는 가장 깊고 확실하게 하나님의 아름다우심과 사랑스러우심을 발견할 수 있게 되고, 그렇게 하나님께 사로잡힌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성경을 묵상하는 일이 꼭 필요하고 또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지속적으로 생각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항상 삶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경험하기 위해서 힘쓰시기 바랍니다. 항상 성경을 묵상하고 또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분이신지를 새록 새록 발견해 가시고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행복한 신앙생활을 계속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반한 하나님의 연인이 되어서 기쁘고 설레는 신앙을 소유하는 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